피해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
피해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
  • 박성현 (416재단 나눔사업1 팀장)
  • 승인 2021.12.05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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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참사가 한바탕 휘몰아치고 나면, 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이상 우리와 함께하지 못하는 별과 바람이 된 희생자, 아직 몸을 찾지 못한 미수습자, 그들의 형제자매 혹은 부모인 가족인 살아남은 희생자인 피해자. 우리 사회에서 용인하는 건 거기까지입니다.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보면 피해자의 정의는 거기까지다.
<가 4.16세월호참사 당시 세월호에 승선한 사람 중 희생자 외의 사람, 나. 희생자의 배우자·직계존속·형제자매, 다. 가목에 해당하는 사람의 배우자·직계존속·형제자매, 라. 그 밖에 4.16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희생자 또는 가목에 해당하는 사람과 나목, 다목에 준하는 관계가 있는 경우 등 제 5조에 따른 4.16세월호참사 배상 및 보상 심의위원회에서 인정한 사람>

당신도 거기에 동의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안산 재난현장에 있으면서, 저는 수많은 피해자가 되지 못한 피해자들을 보았습니다.
안산은 진도와 함께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곳이지만, 2014년 한해 겨우 지방세를 감면받았고, 당시 여러 상황을 고려한 주차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것 외에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2014년 아이들을 찾아 장례를 치룬지 3일 남짓 지난 집으로 방문을 다녔습니다. 이름은 [통합심리지원단]이었고, 지역을 잘 알고 있는 통장님과 국립서울병원 정신보건 간호사, 지역을 지켜왔던 10개 기관의 사회복지사들이 한팀이 되어 무거운 슬픔이 가득찬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열 가구 중 한 두 가구 겨우 문을 열어주시면 다행이었습니다. 그 과정에 동행했던 통장님들이 이내 곧 참여가 어렵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머리도 너무 아프고, 속이 좋지 않아요.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슬퍼서 말이야”

알고 보면 그들도 그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 왔던 이웃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통장님께 인사를 건네던 아이였을 것이고, 누군가는 함께 밥한끼를 했을 관계였을 겁니다. 실제로 지금도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을 돕는 일이라면, 한달음에 달려오는 통장님이 있습니다. 떠난 아이보다 조금 어린 아이를 둔, 그 아이의 가족과 언니, 동생하며 지낸 통장님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7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라지만, 관련 이야기를 할 때면 아직도 눈시울을 붉히며, 이제는 동네를 떠난 그 집 이야기를 합니다.

“유난스럽게 넌 아직도 그러니...”

별이 된 아이를 친구로 둔 청년이 학교에서 들은 이야기를 제게 전해왔습니다.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고, 그 친구가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SNS를 통해 듣는 세월호 참사 관련 부모님들의 활동 소식을 들으면, 달려가 함께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혹여 그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면, 자신을 보고 그 친구 생각에 혹여 가슴 아프실까 싶어 두려워 망설여진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이내 곧 찬바람 부는 촛불 광장과 캡사이신 물대포가 가득한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답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그 청년을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복지현장 실습생들이 당시 제가 일하고 있던 <안산 복지관 네트워크 우리함께> 사무실로 견학을 왔습니다. 몇 개 기관이 왔었는데, 우리 이야기의 마지막은 꼭 한 두 사람 혹은 더 많은 청년의 들썩이는 어깨를 다독이며 끝났습니다. 세상을 떠난 단원고등학교 선생님의 제자이거나, 별이 된 아이들의 친구였습니다.

‘친구들’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 동네 학원, 동아리... 수많은 인연을 맺어온 친구들은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는 피해자였습니다. 동네 곳곳에서 부모들이 청년들을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니,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래도 피해지역 동네에 우리함께 같은 공간을 꾸리던 활동가분이 그 친구들 몇몇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을 진행한 예는 있습니다만,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그들을 피해자로 정의하지 않기 떄문입니다. 그들과 어떻게 살아가고, 그들의 상처입은 마음을 어떻게 위로하고, 공감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는 준비한 제도와 문화가 아직도 없습니다.

당신이 만나는 그 또래 청년은 그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다시 돌이켜 봅니다.

우리 주변에는 과연 <피해자가 되지 못한 피해자인 사람들>이 없을까요? 코로나19 이후, 바이러스에 대한 경계가 서로에 대한 경계를 높이는 것으로 바뀐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회에 살면서, 코로나19 후유장애를 앓고 있을 외로운 피해자는 없을까요?

‘왜 너희 엄마가 코로나19 일수도 있는데 말하지 않았냐?’고 물으며 엄마가 너와 함께 놀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피해자이지만, 사회의 시선으로 인해 피해자로 나설 수 없는 사람들은 없는지, 사회가 정한 기준이 피해자가 아니라서 깊은 상처와 피해를 입었지만, 어떤 위로와 회복과정을 제도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사회가 어떤 준비가 되어 있지않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와 태도는 존재합니다. 사회적 참사로 상처 입었을 사람들에 대한 폄훼나 힐난을 주의하는 태도가 여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재난 사회 속에 살고있는, 당신의 안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