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1.12.0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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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 3일은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UN이 1992년 12월 3일을 공식적으로 지정하면서부터 올해로 딱 30번째다.

30번째 세계 장애인의 날, 대한민국 장애인들은 여전히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 칼바람 부는 거리에서, 기울어가는 컨테이너를 거점으로 목숨을 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가족에 의한 가족의 살인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바꾸어내기 위해 그 부모들이 목숨을 건 단식농성에 돌입한 상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중심으로 장애인 단체들은 문재인 정부 임기 1년을 앞둔 지난 3월 16일,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거주시설의 완전한 폐지를 위해 장애인권리보장법과 탈시설지원법 제정 공약을 지키라는 요구를 가지고,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을 시작해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기준으로 262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전장연의 이 농성은 이 양대 법안을 중심으로 장애계의 이슈를 주도하며 농성장을 거점으로 각종 요구들을 모아내며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투쟁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비바람이 불면 찢겨나가던 천막이 단단한 철제 컨테이너가 되고, 그 컨테이너 위에 전동휠체어가 오를 수 있도록 경사로를 휘감아 올린 망루가 만들어지면서, 그만큼 투쟁의 대오는 더 크고 단단해져 가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이하 한뇌협)도 우리 뇌병변장애인들의 절박한 요구들을 담아 이 투쟁에 함께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뇌병변장애인들은 등록된 수치로만 25만여 명으로 전체 등록 장애인의 10%에 달하며, 아직 지체장애로 등록되어 있는 뇌병변장애인들을 감안하면 3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들 뇌병변장애인들은 노동, 소득, 교육, 의료, 의사소통, 문화체육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여전히 차별과 배제의 상황에 놓여있다.

현재의 장애인복지 전달체계는 등록된 장애인에게만, 그것도 폐지된 장애등급제를 대신하고 있는 종합조사표에 의해서만 서비스의 수급자격이 주어지고 있다. 우리가 요구한 장애등급제 폐지의 의미는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필요한 만큼 주어지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지만, 현재의 장애등급의 단순화와 서비스종합조사표는 오히려 더 세밀하게 서비스의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서비스 제한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가 우리 뇌병변장애인이다.

재활에서 자립생활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시설에서 지역사회로의 탈시설 운동을 선봉에서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뇌병변장애인들임에도, 아직 우리는 그 투쟁의 성과들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양대 법안이 우리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이번에도 현장의 최선봉에서 함께하고 있다.

그렇게 262일을 이어 온 투쟁의 성과가 이제 조금씩 열매를 맺으려 하고 있다. 2007년 서명한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의 선택의정서가 15년만에 비준을 앞두고 있고, 여야의 국회의원들이 앞 다투어 장애인권리보장법과 그에 따른 장애서비스법(장애인복지법 전면개정)을 발의하고 있고, 일부 세력의 저항이 있긴 하지만, 탈시설지원법도 발의되어 국회 논의중에 있다.

더구나 2022년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양대선거를 앞둔 해이기에 유권자들의 요구에 어느 때보다 민감한 시기여서 CRPD 선택의정서 비준과 발의된 법안들의 통과에 대한 희망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희망에 취해 투쟁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통과되는 법안에 어떤 내용이 담기고, 어떤 내용이 배제되며, 이 법안이 어떻게 우리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을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법안 통과 이후에도 이 양대 법안이 담아내지 못하는 우리 뇌병변장애인들을 비롯한 사각지대 장애인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찾아내고 개선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임에도 아직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권리 수준은 부끄러울 정도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성과보다도 앞으로 헤쳐나갈 투쟁의 과정이 더 험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거나 죽은 것을 살려내는 것이 아니다. 살아 움직이고 있지만, 인지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해내고 그것이 가진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우리의 투쟁은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끄집어내 세상이 이해할 수 있도록 외치는 것이어야 한다.

30주년 세계 장애인의 날, 우리는 지금까지의 투쟁의 성과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30년 투쟁의 의미를 재정립하여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투쟁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 본 성명서/논평은 웰페어이슈의 편집 방향과 무관하며, 모든 책임은 성명서/논평을 작성한 정보 제공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