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장애인의 병원진료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여성장애인의 병원진료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2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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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교장 <br>​​​​​​​(화성시야학)
이경희 교장
(화성시야학)

여성장애인의 병원 진료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건강검진을 받을 때 대부분 사람은 어떤 검진을 받을지에 대해 고민하지만, 나는 가장 먼저 “내가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일까?”를 고민한다. 40대 중반 이후부터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안내문을 몇 번이나 받았다. 처음에는 가까운 동네 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고, 기초적인 검사 후 유방암 검사를 하려고 진료실 앞에 가자 의료진이 “일어설 수 있으시죠?”라고 물어보는데, 나는 “아니요. 저는 일어설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우리 병원은 앉아서 검사할 수 있는 장비가 없어서 검사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 나와야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전화로 검진이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았지만, 모두 장애인에게 맞는 장비는 없다는 답변만 거듭했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건강검진은 미루게 되었고, 50대가 넘은 지금까지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의 차별은 건강검진만이 아니다. 임신하고 검진을 위해 산부인과에 가는 것은 엄마로서, 모든 여성이 겪는 일이지만, 여성장애인은 수십 배의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체중을 재려고 할 때도 비장애인 위주로 만들어진 체중계를 사용하다 보니 팔의 힘으로만 체중계에 오르내려야 했고, 이 과정은 아이가 커갈수록 더 힘겨워지는데, 그럴 때마다 겪는 스트레스와 힘겨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거기다 병원에 장애인 화장실이 1층에만 있어서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마다 1층을 오르내리거나 남편의 도움을 받아 비장애인 화장실에 가야 했는데, 임신한 나를 안고 변기에 옮겨 앉혀야 해서 매번 곤욕을 겪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검사를 위해 탈의실을 가려고 하는 데 장애인이 이용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어 검사복을 갈아입지 못하고 검사대에 올라가 옷을 벗어야 했다. 그런데 검사대도 비장애인 위주로 만들어져 있어 장애인인 나는 올라가기도 버거웠고, 필요한 자세를 취하거나 움직이는 것이 큰 고통이었다. 옆에서 도와주려는 간호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고, 진료를 받아야 하는 나는 비지땀을 흘리며 온 팔의 힘을 동원해 진료를 받아야 했다.

이렇게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장애인은 당혹감과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진료를 받을 때마다, 검사를 받을 때마다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과 치러야 할 고난은 모두 당사자인 ‘장애인’의 몫이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병원시설

병원은 아프고 불편함을 느끼는 모든 사람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물리적인 환경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병원이 이러한 물리적 환경을 갖추지 않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이를 다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적어도 병원은 어떤 불편함을 가진 사람이든 진료를 받는 데 차별을 겪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병원은 치료를 받으러 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왜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환자여야 하는 것일까?

건강검진뿐 아니라 다른 이유로 병원을 이용할 때도 전화를 해서 장애인이고 휠체어를 이용한다고 말하고, 편의시설과 의료장비가 갖춰져 있는지 물어본 뒤 다 갖춰져 있다고 해서 막상 가보면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시설만 있고,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죄송하다는 말뿐이다. 나는 이렇게 진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올해만 해도 몇 차례나 된다….

의료진들은 장애인의 건강검진이 필수라고 말하지만, 정작 의료 환경이 변화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장애인의 건강검진 수검률 역시 비장애인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 장애인의 유질환률 역시 비장애인보다 1.4배 높다. 나는 이렇게 장애인이 이용하지 못하게 만들어진 병원의 시설과 구조가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도 엄연히 국민이고, 시민이며, 건강할 권리와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병원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지 않다. 특히 여성장애인은 산부인과 진료, 아이를 양육하며 받아야 하는 육아 건강 진료, 치과 진료, 이비인후과 진료, 소아청소년과 진료 등 병원의 진료를 받아야 할 때 불편한 시설과 장비로 인해 돌아가야 하거나 다른 사람의 손을 계속 빌려야 하는 등 불편함과 힘겨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또 진료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 줄 수 없을 때도 많았고, 아이들 역시 엄마와 떨어져 진료를 받으러 가는 모습에 가슴이 아플 때도 많았다.

언제쯤 우리 사회는 누구든, 어떤 유형의 사람이든 모두 편안하게 병원 진료를 볼 수 있게 될까? 언제쯤이면 아플 때, 필요할 때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누구나, 어디서나 갈 수 있어야 한다.”

사회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변화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장애 발생률도 선천적인 경우보다 사고로 인한 중도 장애인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인식의 변화 속도는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불편함과 차별을 두고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헌법 제34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2항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3항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5항 신체장애인 및 질병, 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헌법 제36조 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나는 이렇게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과 복지의 증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료와 보건 관련 시설들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국가에서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자체별로 장애인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종합적인 병원이 마련되어 장애인이 의료서비스를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편의가 제공되어야 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의료장비들을 병원에서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병원에 갔다가 진료를 못 받고 나오는 일이 없도록, 아이를 키우는 장애인 부모도 언제나 병원을 찾아가 함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책임을 지고 개선해야 한다. 이는 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 전 수원에 있는 병원에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병원에 연락해서 “장애인인데, 건강검진이 가능한가요? 휠체어를 이용하는 데 검사가 가능한 장비가 있나요?”라고 물으니 되어있다고 하기에 예약했다. 부디 이번에는 검사를 받고 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