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으로’에 담긴 감동
‘곁으로’에 담긴 감동
  •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2.01.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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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출석하는 교회 전면에 걸린 기분 좋은 새해 표어를 보았다. ‘곁으로’였다. 시(詩)의 제목 같기도 하고, 성경구절 같기도 했다.

이리저리 생각을 더듬어보았지만 딱히 짚이는 게 없었다. 그래도 표어를 본 순간 마음이 촉촉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교회들은 성장과 확장 그리고 교회중심의 생활을 강조하는 것들이 내걸렸을 텐데, 이 교회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곁으로’라고 써 붙여놓았다. 무엇보다도 따뜻한 온기가 가슴에 담겼다.

담임목사는 설교를 통해서 ‘곁으로’를 새해 표어로 정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새해에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살며시 다가서자’고 했다.

물론 ‘예수님 곁으로’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교회이기 때문에 당연히 빠질 수 없는 내용이다. 그래도 강조점은 ‘이웃의 곁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예배를 마친 다음 날, 담임목사에게 ‘어찌 그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표어를 생각하게 되었냐’고 물었다. 요즘 같이 삭막한 시대에 누군가의 곁으로 가겠다는 생각 자체가 결단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내는 일이 급선무인 마당에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려는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인 표어’를 내건 배경이 궁금했다. 신학대학의 후배인 담임목사는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한 시인의 책을 소개했다. 김응교 시인의 ‘곁으로’라는 책이었다.

바로 책을 구입했다. 책을 펼치자마자 시인의 따뜻한 호흡이 느껴졌다. 책은 여러 문인들의 작품을 열거하면서 그 작품이 이 땅에 드러나게 된 사연들을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소개했다.

시인은 ‘아픔의 진앙지(震央地)로 찾아가는 순간’을 곁으로 가는 것이라고 썼다. 또 ‘곁으로 간다는 것은 아픔 곁에 있다는 뜻이지 아픔 자체가 되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 해야 할 일과 그 일이 가지는 한계를 섬세하게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학기행 형식으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그는 ‘시대의 곁에, 이웃의 곁에, 아픔의 곁에, 눈물의 곁에 서자’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품에 모든 것을 끌어들이려고만 한다. 다른 사람의 곁에 다가가서 위로가 되거나 기쁨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부패한 자본주의가 만든 불행한 인간상이다.

여러 사람들이 겪고 있는 정서적인 어려움도 다른 사람의 곁으로 다가가려는 겸손함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극대화하려는 오만에서 비롯되었다. ‘곁으로’ 가려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해야 한다. 낮추고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아픔의 진앙지에 다가서려는 담대함도 필요하다.

2022년의 표어로 ‘곁으로’를 내건 교회의 다짐을 응원하며, 나의 삶도 ‘다가섬’으로 채워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