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형제자매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
비장애형제자매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1.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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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작가 (발달장애인 형제의 가족)
이상훈 작가
(발달장애인
형제의 가족)

“저의 형이 장애가 있어요. 지적장애예요.”

첫 소개팅 자리에서 내가 했던 말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형의 장애를 단 한 번도 먼저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에게도 형의 장애를 이야기했을 때 어쩔 줄 모르며 당혹스러워하는 표정과 그 뒤에 따라오는 어색한 침묵이 아무리 겪어도 썩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나름의 불문율을 깨면서까지 그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만남이 지속되었을 때 형의 존재로 더 깊은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서 무례할 수 있는 상대의 고백을 들었던 그녀는 나에게 대답했다. “저는 장애인 형의 동생을 만나러 온 게 아니라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그 사람의 말이 나를 때렸다.

비장애형제자매 자조모임을 하며 다른 모임원들에게도 연인과 만날 때 장애형제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첫 만남때 이야기함’, ‘연인관계가 발전되어 상대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때 이야기함’, ‘결혼을 하기 전 연인관계에서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음’ 등의 의견이 있었다. 상대를 만날 때 결혼을 전제로 하는 연애를 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대답이 갈렸다. 이렇듯 우리는 삶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놓였을 때 늘 장애형제자매를 고려하고 있다.

형의 이야기를 듣고도 어떤 동정이나 당황함 없이 나를 봐줬던 그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기보다는 편견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장애와 전혀 관련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 내어준 품은 참 따듯했다. 사회복지사를 꿈꿨던 나와는 전혀 다른 전공인 그녀는 주기적으로 형과 함께 데이트하며 2박 3일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형과 여자친구가 함께하는 시간에 긴장을 한 건 오히려 나였다. 형의 신변처리, 예측하기 힘든 돌발행동 등을 걱정했지만 오히려 긴장한 나를 달래며 담담히 그 상황들을 함께 해줬다.

5년의 연애가 끝나갈 무렵 우리는 결혼을 준비했다. 결혼은 둘만의 일이 아닌 가족 간의 결합이다. 즉, 내가 장애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결혼을 앞둔 상대방도 장애를 이해하려 노력한다고 해도 배우자의 가족이 장애를 받아들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가장 큰 부분은 장애의 유전에 대한 것이었다.

장애아 탄생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의 결론이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있지만 유전적인 영향은 배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우리는 자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기에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했다. 해답이 될 수는 없지만 장애유전검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장애아를 낳는 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삶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미래의 일을 앞당겨 걱정하지 말자고 했다.” 그 이야기가 나를 한 번 더 때렸다. 나의 배경을 이미 알고 있던 여자친구의 가족도 큰 어려움 없이 우리의 결혼을 축복해주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드라마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 역시도 내 삶의 서사를 배제한 채 이 이야기만 쏙 빼놓고 본다면 비슷한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장애인 가족으로서 경험하는 삶의 행복과 불행은 늘 균형이 맞지 않았다. 행복한 일이 한 개라면 내 마음과 같지 않은 불행한 일들이 아홉이었다. 아홉의 넘어짐 끝에 만난 하나의 행복이 그녀였다. 우리는 지금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