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형을 소개하는 일
자녀에게 형을 소개하는 일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1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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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형제의 가족(사회복지사))
(발달장애인 형제의 가족(사회복지사))

주말이면 손주들이 놀러 오는데 딸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는 거 있지복지관에서 중장년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비장애 자녀와 장애자녀의 사이가 좋았던 손주는 이모를 배려하는 한편 사이가 좋지 않았던 손주는 무시하거나 놀리는 등 장애 자녀에게 비장애 형제자매가 보였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다고 하였다. 아직 자녀가 없던 당시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오래전에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영화는 바로 플립이다. 극 중 주인공 줄리에게 발달장애인 삼촌 대니얼이 있다줄리는 삼촌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시설에 거주하는 대니얼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줄리의 아빠는 풍족하지 못한 생활에도 대니얼을 조금 더 좋은 시설에서 살게 하고 싶어 가족과 금전적인 갈등을 빚는다. 삼촌의 생일날 줄리와 아빠는 시설로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삼촌과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줄리는 대니얼 삼촌은 내게 이름뿐인 존재였지만 이제는 나의 가족이다.”라는 말을 한다. 아빠가 삼촌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줄리 역시 삼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제 막 4살이 된 나의 딸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궁금해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작은 몸짓에도 관심을 주는데 유일하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삼촌에 대해 더욱 궁금해 하곤 한다. 그때마다 딸에게 형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는 4살 딸이 보는 삼촌의 모습 그대로 가 삼촌의 모습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야기해 준다.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참 많은 장애인식 자료를 접하였고 그것을 실제로 교육할 기회도 많았다. 하지만 뭉뚱그려진 장애인식이 아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해야 할 형의 존재를 어린 딸에게 설명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그저 노력하는 것은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아빠가 삼촌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더욱 많이 보여주려고 한다.

아이들의 눈은 아직 세상의 기준들로 오염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내가 비장애 형제인 아빠가 아닌 그냥 우리 아빠이듯 형 역시 장애인이라는 수식어로 설명되어야 할 존재가 아닌 그냥 삼촌인 것이다. 때로는 나 스스로 기준을 두지 말아야 할 것들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하게 된다.

형의 존재는 애써 증명하거나 설명해야 할 또 하나의 기준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딸과 아들에게만은 발달장애인이라는 가혹한 세상의 꼬리표가 아닌 재훈 삼촌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형이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