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언트와의 관계, 심판이 아닌 응원이 되려면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심판이 아닌 응원이 되려면
  • 이혜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04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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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공공조직에서 사례관리를 담당하는 A팀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생계비 지원을 요청하는 독거 어르신께 B팀원이 상담을 하며 말실수를 했고, 이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지금까지 왜 돈을 모으지 않으셨어요?” 라는 팀원의 말이 문제였습니다. 마치 가난의 원인을 모두 어르신의 탓으로 돌리는 뉘앙스에 어르신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물론 팀원이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내가 현재 가난한 것은, 그리하여 생계비를 요청한 것은 그동안 내가 돈을 낭비하였거나 저축하는 노력이 없었기에 벌어진 결과라는 심판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심판받은 클라이언트는 더 이상 마음 문을 열 수 없습니다.

펠릭스 비에스텍(Felix Biestek)은 그의 저서 케이스워크 관계론(Casework Relationship)에서 사회복지실천 과정에서 워커가 지켜야 할 7가지 중요한 원칙 중 비심판적인 태도를 포함했습니다.
비심판적인 태도란 클라이언트의 문제와 욕구의 발생이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따지거나 클라이언트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가 등을 판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클라이언트가 워커를 찾아왔을 때 어려움, 불만, 허약감, 실패의 감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한 마음의 상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워커로부터 심판까지 받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불안감으로 관계 발전은 요원해집니다.

필자에게는 올해 중학교 2학년에 진학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가까이 사는 3살 위 사촌누나와 매일 놀았는데 토닥토닥 잘 싸우기도 했습니다. “왜 누나랑 싸웠어? 왜 누나에게 덤볐어?”라고 필자가 말하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맨날 누나 편만 들고울면서 억울해 했습니다. “라고 묻는 것은 이미 심판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둘의 싸움에서 누나에게 함부로 한 너에게 모든 책임과 잘못이 있다는 질책이 라는 단어에 담겨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

설사 나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제3자가 전체 상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죄가 있다 없다의 심판을 내리는 순간 당사자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클라이언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클라이언트와 전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좀 더 나은 삶을 열망하는 클라이언트의 욕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 관계의 시작은 워커로부터 심판(비난)받을 두려움이 없다는 클라이언트의 확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확신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의 성장을 가져오며, 단순한 요구가 아닌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알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그것을 이뤄가기 위해 워커와 함께 노력할 수 있게 됩니다. 비심판적인 태도는 이렇게 전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비심판적인 태도는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클라이언트가 심판받지 않는다고 느낄까요?
비에스텍은 이런 태도를 전달하기 위한 책략이나 마법적인 공식 또는 상용 문구는 없다고 합니다. 다만 직접적인 언어적 표현보다 비언어적인 워커의 태도로 클라이언트가 느끼게 되는 것이라 말합니다. 워커의 내면에 비심판적인 마음자세가 있을 때, 그가 사용하는 단어로, 눈빛으로, 표정으로, 음조로 다양하게 전달될 것이라 조언합니다.

비심판적인 태도는 클라이언트와 만나는 모든 여정 속에서 계속되는 기본적인 성질이고 관계 속에서 함께 성장되고 심화됩니다.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아래의 제안처럼 함께 노력해 보면 어떨까요?

첫째, 스스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진 사람임을 늘 자각해야 합니다.

편견과 선입견은 클라이언트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가 만나온 클라이언트, 앞으로 만나게 되는 클라이언트를 우리는 흔히 카테고리로 묶습니다.

독거노인, 다문화가정, 장애인가정,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등.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으면 그의 욕구도 같고, 해결을 위한 시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편견과 선입견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비에스텍은 이렇게 카테고리 안에 클라이언트를 집어넣는 것 역시 심판적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 지적합니다. 편견과 선입견은 정서적이지만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도 모르게 표현되면 똑같은 패턴의 개입이 반복되거나 반대로 차별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둘째,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다르게 보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몇 년 전, 쓰레기 더미(물론 당사자는 쓰레기로 생각하지 않았음)에 사는 이씨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악취와 해충으로 주민센터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이미 마을에서 쫒겨나야 할 사람으로 심판받았습니다.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쓰레기 산, ‘왜 저러고 살까?’는 식의 생각으로는 아저씨의 마음 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을 거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만나려는 노력 끝에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해결의 실마리 역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 , 다니엘 블레이크에는 주의집중결핍의 어려움을 가진 아이에게 남다른 시선을 보이는 다니엘 할아버지가 나옵니다. 도로와 주차장을 위험하게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다른 가족들은 화를 내고, 제지하느라 바쁩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너는 모험을 즐기는구나하고 아이에게 말을 건넵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다니엘 할아버지 덕분인지 아이는 점차 회복력을 보입니다. 비난과 부정적 단정의 대상이 되어버린 경험이 많은 클라이언트가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는 워커를 만난다면 해결의 실마리가, 참다운 회복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클라이언트의 상황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살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센터를 이용하시는 C할머니가 최근 마을에서 도둑으로 몰리셨습니다. 자신의 집 앞에 놓인 택배가 사실은 잘못 배송되었는데 C할머니는 자녀가 보낸 택배라 생각하고 열어본 것입니다. 상자에 있던 옷이 자신보다는 평소 친한 다른 할머니에게 어울릴 것이라 판단하여 선물했습니다. 관리사무소를 통해 CCTV를 확인하던 원래 주인은 할머니를 경찰서에 신고했습니다. 택배 주인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물건이 아닌 것을 집안으로 가져가고, 다른 사람에게 선물한 C할머니는 도둑입니다. 그러나 택배가 잘못 배송된 것을 몰랐고(C할머니는 한글을 읽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비슷한 시기 자녀가 택배를 곧 보낼 거라는 연락이 있었던 것으로 보면 C할머니는 물건을 훔칠 의도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물건을 훔치고 빼돌리는 뻔뻔한 도둑이지만 필자에게는 다른 할머니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따뜻한 분이십니다. 다시 물건을 회수하고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 사건은 일달락 되었지만 C할머니는 며칠간 마음고생 하셨습니다. 문제가 일어난 사실에 매몰되기 보다 전체적인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있을 때 억울한 클라이언트를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B팀원이 가난한 사람은 그가 노력하지 않은 결과로 생계가 곤란하다는 생각 대신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동안 어떻게 잘 견뎌오셨는지 관심을 가졌더라면, 누나와 싸운 아들에게 왜 싸웠냐고 묻는 대신 어떻게 하다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았는지 궁금해했더라면, C할머니는 남을 생각하는 인정있는 분이라는 걸 택배 주인이 알았더라면 뒷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참고자료

 케이스워크 관계론(Casework Relationship)」, 펠릭스 비에스텍(Felix Biestek), 1986, 홍익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