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을 포기하고 장애와 관련된 일로 진로를 바꾸고 싶어요.”
대학 졸업을 앞둔 한 비장애 형제자매가 결연한 표정으로 상담을 청했다. 꽤 긴 시간 고뇌하고 마음을 정한 듯한 태도에 선뜻 어떤 대답도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고민의 저변에 어떤 것들을 포기한 결정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망설여졌다. 말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무겁게 입을 떼며 그 선택을 존중하며 지금 가진 그 첫 마음을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마다의 삶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이라면 오랜 사유(생각) 끝에 그 출발점에 선 동료에게 건넸던 작은 응원이었다.
개인적으로 비장애 형제자매가 장애와 관련된 진로를 선택하는 것에 썩 긍정적이지 않다.
나 역시도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최종적인 선택은 나의 의지였지만 그 의지가 형성된 배경에는 형의 영향이 분명히 있었다. 비장애 형제자매는 삶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에 어쩔 수 없이 장애형제자매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특히 진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청소년기에 막연한 돌봄에 대한 부담과 가정에서 형제자매를 돕는 역할이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돕는 직업을 선택하는 결정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형제자매에 대한 돌봄의 부담은 어떤 진로를 선택해도 비장애 형제자매의 삶에 남아있을 것이다.
비장애형제자매가 정말 원해서 장애와 관련된 진로를 택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겠지만 돌봄의 부담, 형제자매를 아끼는 마음 등이 자신의 꿈으로까지 이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형제자매와 자신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과 진로에 대한 선택은 긍정적으로 분리될 필요가 있다. 그 분리 작업이 일차적으로 가정에서 이루어지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이 힘든 경우 믿을만한 조력자가 존재하는 또래 비장애 형제자매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복지관에서 학령기 비장애 형제자매 모임을 진행하며 장애 이해, 자아 탄력성의 증진 등을 주제로 한 활동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긍정적으로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비장애 형제자매모임을 하며 만난 이들 중 30% 정도는 장애와 관련된 일을 하거나 학생인 경우 관련 분야의 전공자였다. 진로와 직업을 선택할 때 장애형제자매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나눈 적이 있다.
‘장애 관련 직업을 선택할 때 형제자매의 영향이 큼’, ‘영향을 받았지만 나의 의지로 선택함’, ‘장애 관련 진로를 선택하려 했으나 돈이 되지 않아 선택하지 않음’, ‘장애형제자매 돌봄을 위해 안정적인 진로를 택함’, ‘형제자매로부터 진로의 영향을 받지 않음’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장애와 관련된 진로를 선택했든 그렇지 않든 모든 참여자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 장애 형제자매를 고려한 결정을 내렸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자녀의 돌봄을 위해 부모 중 한 명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에 접어드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고 자란 비장애 형제자매에게 돌봄에 대한 부담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자의든 타의든 그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겠다고 다짐한 이들은 내가 정말 원하는 진로가 아닌 ‘장애와 관련된 일을 하는 직업’ 혹은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나의 꿈이 되곤 한다.
어딘가에서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비장애 형제자매들에게 그 큰 책임을 너 혼자 끌어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