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피해자 삶의 지원을 위한 몇가지 원칙들
재난 피해자 삶의 지원을 위한 몇가지 원칙들
  • 박성현 (416재단 나눔사업1 팀장)
  • 승인 2022.04.03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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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재난 안전 전문가 과정 들으셨던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협소하기는 하지만, 동해 산불 피해자분들을 위한 작은 상담 공간을 만들었거든요. 여기 현장에서 정서적 상담 지원이 어려워 그러는데, 오셔서 함께 해주시면 어떨까요?”

거센 봄바람이 불던 지난 3월 중순, 동해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 현장에서 지원하고 있는 <더 프라미스> 김동훈 대표의 연락이었다.

목소리에서 애씀과 현장에서의 여력 없음이 느껴졌다. 지역사회 재난 현장의 지원은 지역을 가장 잘 아는 그 지역사회에서 감당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와 주민과의 중장기적인 신뢰감 형성에는 지역 내 사회적 안전망에 있는 담당자들이 초기 개입부터 중장기적 지원이 이어지는 것이 더 안정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의 경우, 지역 내 사회적 안전망들도 여력을 내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거나 피해 범위가 넓어 모두를 지원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수도권지역에 비해 지방으로 옮겨갈수록, 그 여력과 자원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난 8년간 4.16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은 먼저 재난참사를 겪은 피해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향후 어떻게 정부와 관계부처를 대응해야 하는지, 지역사회주민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배워왔다. 자신의 경험을 2014년 이후 발생하는 노동 현장 및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재난 참사 피해 가족들에게 찾아가 가장 먼저 애도의 마음을 표현했다.

재난을 겪으며, ‘내가 잘 몰라서, 아이를 잃었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더 잘 알고, 재난 현장을 지원하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냈다. 4.16재단에서도 해외의 여러 사례 속에 재난 참사 피해자들이 동일 경험을 가진 집단에 연대하는 과정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효과를 낸다는 것을 포럼과 관계를 통해 배워왔다. 이러한 욕구와 협의를 기반으로 2019년부터 4.16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피해 가족들은 4.16재단이 기획한 <재난안전전문가> 강좌를 기초 및 중견 과정을 수료했다. 이렇게 양성된 재난 피해자인 재난안전전문가는 총 27명이다.

오래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4.16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사무처에 연락했고, 사무처에서는 <재난안전전문가>과정을 들었던 가족들과의 채팅방을 만들었다. 세월호 가족들은 2인 1조, 3일씩 활동하는 구조로 조를 구성했다. 2주간의 활동을 우선해보고, 향후 지원은 다시 협의하기로 했다.
4.16재단에서는 가족들의 교차이동을 지원하기로 했다. 현장에서 사진이 도착했고, 누군가는 마사지를, 누군가는 말벗이 되어 피해 가족들의 마음을 달랬다. 현장에는 세월호 참사 생존 피해자인 단원고등학교 생존 학생들이 <운디드 힐러>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고 있었다. 재난 피해자들이 재난 피해자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있었다.

재난 참사 피해자 지원 원칙

재난 참사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과정에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현재 겪은 재난으로 인한 피해 현황과 급격하게 변화한 환경으로 심리 정서적인 어려움과 애도의 과정을 겪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예측해서 어떤 지원을 진행하기보다는 모든 절차와 과정을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정확히 전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겪는 감정과 신체적 어려움, 어떠한 지원이 필요한지를 들어야 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초기에 활동했던 사회복지사들은 참사 현장을 지원함에 있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수다력'이었다는 것을 회고했다. 참사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 그 일이 가장 중요했다.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참사의 경험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참사 전 아이와 함께 했던 일상은 얼마나 따뜻했는지’, ‘내 아이는 어떤 아이였는지’, ‘지금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듣고, 동의하는 일이 처음 시작해야 하는 일이었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둘째, 피해자들에게 직접 질문하고, 함께 결정해야 한다.
이들에게 의견을 물을 때에는 최대한 정확한 정보와 관련 내용을 제공해야 한다. 이들이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게 될 현장 상황이 많으므로, 이러한 결정을 도울 수 있는 최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결과 이후 우려되는 상황이 있다면, 주관적인 의견임을 밝히고, 제시하면 좋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당사자들은 자신이 조정할 수 없는 변수에 의해 가족 혹은 자산을 잃었고, 이로 인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상황을 정확히 알고 싶어하고, 이는 자신이 놓쳐버린 가족과 자산이 관련되어 있어 매우 예민할 수 밖에 없다. 그들도 정확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하나의 정보라도 놓쳐서 떠나보내야 했던 가족에게 미안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원한다. 어떤 가족은 녹음을 해서, 저녁에 듣고 또 들었던 가족도 있다. 어떤 가족의 수첩은 모든 가족들이 보고, 갖고싶다고 말할 만큼 촘촘히 진행 날짜와 과정을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은 온 우주나 다름 없었던 이들의 가슴이 미어지는 부모이자 가족이다.

셋째, 최대한 일원화된 대표성을 가진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어 소통해야 한다.
재난 참사 현장에는 정말 다양한 이해관계와 그룹이 존재한다. 각 개인의 의견도 바라보는 관점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참사 피해자에 대한 심리 정서적 지원은 각 개인의 특성을 최대한 고려해야 하지만, 그 외 지원에 있어서는 재난 참사 피해자 단체 혹은 모임의 대표적 의견과 내부 기준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참사 초기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들이 되도록 하나의 그룹이 되게 하는 것, 이는 당사자들에게도 재난을 이겨나가는 지지적 관계가 된다는 점과 여러 혼선과 갈등을 완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이다.

오늘도 여기저기에서 발생하는 참사 현장에서 피해자들이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존중받기를 바라고, 동해에서 이를 잘 알고 있는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의 활동에 응원을 보내며, 몇 가지의 경험을 정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