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후 느끼는 편안함
정년퇴직 후 느끼는 편안함
  •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2.04.0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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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정년퇴직 후 3개월이 지났다.

3개월이면 적지 않은 세월인데 훌쩍 지나버렸다. 작년 하반기부터 퇴직 후에 어찌 지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예습이 있어서 그런지, 정서적으로 큰 흔들림 없이 3개월을 지낸 것 같다.

처음 10여일 정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릴없이 거실과 서재를 오가기도 했지만, 이내 계획해 두었던 ‘게으른 시간표’대로 하루를 지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사실 걱정이 없었던 아니다. 이런저런 준비를 했다고는 하지만, 크고 작은 일들을 맡아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냈던 사람인지라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염려가 제일 컸는데, 그래도 이만하니 감사한 일이다.

퇴직 후의 큰 변화는 ‘편안함’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일어나는 시간을 맞춰 놓지 않아도 된다는 즐거움이 있다. 예전에는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허겁지겁 아침식사를 한 후, 차가 밀리지 않는 시간에 사우나를 갔다가 출근하는 일이 ‘과업’이었다. 이제는 일어나는 시간과 아침식사가 아주 자유롭고 넉넉하다. 또 과분할 정도로 꾸며놓은 서재에서 한가롭게 책 읽는 시간이 참 좋다. 현장에 있을 때는 책을 읽더라도 띄엄띄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예정에 없던 일들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차분한 시간을 가지기 어려웠다. 요즘은 한 번 잡은 책을 길게 읽을 수 있다. 감사한 일들이다.

무엇보다도 ‘압박감’이 없는 일상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제일 좋다. 지난 30여 년 동안 줄기차게 따라다니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퇴직 후의 날들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돌이켜보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요구와 기대 앞에서 혹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도 하고, 혹은 신기한 도움 덕분에 벌떡 일어서기도 했었다. 가슴이 그리 넓지 못한 탓에 서운한 일이 오가기도 했고, 이슬처럼 내린 은혜와 축복으로 태산 같은 보람을 나눈 적도 있다. 그런데 그런 역동적인 세월이 훈장(勳章)이라고 한다면, 퇴직 후에 주어진 이 해방감은 선물(膳物) 같은 것이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먼저 은퇴하신 선배님들을 만나면 하시는 말씀이 있다. ‘퇴직 후 6개월까지는 그런대로 견딜 수 있지만, 그 이후로는 시간 보내기가 너무 어렵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런데 아직 6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퇴직 후 3개월을 돌아보니 그런대로 잘 지냈다는 생각이 든다. 미리 예습해두었던 ‘걷기, 책 읽기, 산행, 만남, 글쓰기’가 비교적 규칙적으로 잘 이루어졌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여행’인데, 이 달부터는 살살 움직여보려고 한다. 외국여행은 조금 미루고, 다른 지역에 있는 산에도 가고 맛집도 찾아가려고 한다. 넓은 품으로 살기 위해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