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은 선택이 아닌 존엄의 문제이며, 존엄한 삶을 살지 말지 선택하라는 건 폭력이다”
“탈시설은 선택이 아닌 존엄의 문제이며, 존엄한 삶을 살지 말지 선택하라는 건 폭력이다”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2.04.0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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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을 반대한다는 여당 국민의힘과 이준석 당대표에게

탈시설을 반대한다는 국민의힘 이준석대표와 이종성의원의 발언을 본 후 내내 우리의 마음은 참담했습니다. 수용시설에서 삶의 중요한 시기를 폭력적으로 보내고 오랜 시간 그 경험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아동․청소년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수용시설은 국가에 의한 폭력입니다. 탈시설은 권리입니다. 탈시설을 반대하는 국민의힘의 주장에 반대합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대부분의 권리가 박탈당해왔던 아동․청소년이 우리사회의 동료시민임을 선언하고 아동․청소년도 안전하고 평등한 주거에서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도 집다운 집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에서 시작한 우리 활동은 ‘탈시설’과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장애인권운동과 만났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중심으로 한 장애인권운동은 20년 넘게 장애인시설의 인권침해사건을 대응하며 사람을 시설에 수용하는 방식의 한국복지체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대안은 탈시설과 개인별 지역사회중심의 복지지원체계 마련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장애인 탈시설운동 덕분에 수용시설 중심의 아동․청소년 복지체계를 넘어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역사회 복지서비스가 강화되기 이전에 탈시설이 선택이 아닌 강요에 의해 시행되는 건 인권유린이다”라는 이준석 당대표님의 발언은 심히 유감입니다. 탈시설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개인으로 하기에도 매우 무지하고 폭력적이나 여당의 대표로서 하기에는 보는 이들을 너무나 수치스럽게 만드는 무책임한 발언이었습니다.

2021년 보도된 서울시립 아동보육시설 ‘꿈나무마을’의 학대사건을 보셨기를 바랍니다. 해당 시설은 한 대형법인에 의해 50년 넘게 운영된 곳입니다. 사건보도 이후 시설을 경험했던 청소년들은 공개된 학대정황을 자신도 겪었다며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아동양육시설의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은 매해 꾸준히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 왔습니다. 2013년 제천, 2015년 대구, 2017년 여주, 2018년 광주와 부산, 2019년 청주, 2020년 포항과 서울 등의 아동양육시설 인권침해사건이 대표적입니다. 포항 아동보호시설 내 아동학대 사건 이후 2021년 보건복지부는 ‘아동복지시설 거주 아동 인권 및 운영실태 전수점검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아동양육시설의 첫 전수조사이고 매우 방어적으로 조사됐을 것을 감안해도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전국 778개소 아동복지시설 중 143개 시설에서 300건이 넘는 지적사항이 나왔습니다. 행정처분 또는 수사의뢰를 받는 시설 38개소에서 학대정황이 의심되는 아동은 230명에 이릅니다.

우리는 보육원, 그룹홈 등의 아동․청소년 시설을 경험한 이들을 만납니다. 이들이 전하는 시설 내 일상은 유사하게 폭력적입니다. 자의적인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강제퇴소를 당하거나, 훈육을 명분으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벌을 주기도 하며, 시설의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입소자들 사이의 권력 관계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라지만 청소년들의 선택이나 의견이 운영방식에 실질적으로 반영되지 못한다 해도 뚜렷한 제재도 받지 않습니다. 시설장이나 실무자가 누구냐에 따라 규칙이나 운영방식은 손쉽게 달라집니다. 아동․청소년이 쫓겨나지 않으려면 시설의 규칙과 권위에 순응해야만 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권한을 가질 수도 없고, 자신에게 있는 선택지들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사람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생존에 대한 감각뿐입니다.

작은시설도, 큰시설도, 수도권이어도, 그 외 지역이어도 그렇습니다. 시설 경험 당사자들은 시설입소를 본인이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강제로 입소됐을 뿐입니다. 당사자들은 시설 내 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분노하지만 결국은 본인탓을 합니다. ‘내가 가난하니까, 내가 부모가 없으니까, 내가 어리니까 시설에 들어와서 살 수밖에 없는 내 탓이지.’ 라고요.

이준석 당대표님이 사례로 자주 드는 미국은 한국과 같은 장기간 수용중심의 아동거주시설이 없습니다. 무려 40여 년 전부터 그렇습니다. 한국은 보호대상아동 66%가 보육원, 일시보호시설과 같은 시설에 입소됩니다. 미국은 3% 내외로 그것도 일시시설에 한정됩니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의 국가는 장기거주시설인 보육원을 전환하거나 폐쇄하고 있습니다. 2019년 UN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의 아동권리협약 이행보고서에 대해 “구체적인 탈시설 계획을 통해 시설보호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한국은 여당의 대표님이 탈시설을 반대하고 계시지요.

국민의힘과 이준석대표님 그렇습니까? 돈이 없거나, 가난하거나, 나이가 적거나, 장애가 있는 이들은 일상이 폭력이고 스스로 결정하고 삶을 계획할 수 없는 수용시설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까? 시설 내 모든 선택권은 제한되나 탈시설은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까? 아니 지금 국가는 시설 내 이용인들이 존엄한 삶을 위해 탈시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무엇을 하고 있기는 합니까? 준비되지 않은 지역사회 복지서비스는 당사자들의 탓입니까? 지역사회 복지서비스는 당사자들이 가만히 있어도 국가와 사회가 만들고 있습니까? 우리는 도대체 언제 지역사회의 동등한 한 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현재 한국의 장애인 탈시설 전환지원체계와 자립지원체계는 국가가 알아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장애인들이 거리를 수시간에 걸쳐 온몸으로 기고, 수십일을 단식하고, 길바닥에서 수천일을 농성하며 요구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 장애인권운동은 누구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했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생각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장애인권운동은 지금 바로 시설을 폐쇄하자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시설 폐쇄를 선언하고 폐쇄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하자는 요구입니다.

아동․청소년 역시 그렇습니다. 당사자를 시설에 보내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원가정이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금 당장 원가정의 이런 회복이 어렵다면 아동․청소년이 시설이 아닌 당사자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존엄한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각종 서비스와 함께 독립적인 주거를 제공하는 삶의 환경을 만들자는 요구가 아동․청소년 탈시설의 요구입니다.

혐오선동을 넘어 장애인단체간, 정책간 갈라치기를 하고 있는 여당 대표님,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는 청소년에게 시설이 주거의 대안이 되지 못하는 것을 공감하며, 청소년 시설 또한 연대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설은 임시적일 뿐 그 누구에게도 안정적인 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과 이준석 당대표님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 예정자님, 다시 말하지만 탈시설은 권리입니다. 스스로를 탓하며 모욕적인 시설에서의 삶을 감수하며 살 것인지, 아무것도 없고 위험하지만 자신의 삶을 살기위해 시설을 나올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은 부당합니다. 이런 상황에 여당과 여당 대표님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를 ‘탈시설 반대’라는 말을 무려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현실은 희극을 넘어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당과 윤석열 대통령 예정자는 이준석 대표의 발언을 개인의 의견이라며 회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당과 인수위 차원에서 해당 발언에 대해 여전히 시설에 있는 이들과 국가와 사회의 무책임함으로 시설을 경험해야 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십시오. 그리고 반성의 진정성은 한국의 수용시설중심 복지체계에 대한 반성과 모든 존재의 탈시설 선언을 통해 보여주십시오.

정치인이 해야 할 역할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외침은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의 외침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의 탈시설에 찬성하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장애인권운동의 탈시설 운동에 깊이 감사하며 동의하고 이후에도 함께 싸워나가겠습니다.

2022년 4월 5일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 본 성명서/논평은 웰페어이슈의 편집 방향과 무관하며, 모든 책임은 성명서/논평을 작성한 정보 제공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