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철씨의 사모곡(思母曲)
경철씨의 사모곡(思母曲)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4.08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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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br>​​​​​​​(복지동행경영연구소 대표)
이종길
(복지동행경영연구소 대표)

선생님, 경철씨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아시나요? 갑자기 경철 씨가 집에 가야 한다고 찾아와서 조르고 있어요...”

 하늘이 잔뜩 찌푸리고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려는지 후덥지근한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 경철 씨가 근무하고 있는 기성복 회사의 인사과장이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왔다.

 나는 갑작스러운 인사과장의 전화에 화들짝 놀라서 경철 씨 어머니가 노점상을 하고 있는 면목동 전통시장으로 급히 차를 몰았다.

복지관에서 오랜 시간의 지원을 통해 취업이 되어 양복 제조 회사에서 6개월째 일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경철 씨가 인사과장에게 찾아와서 어눌한 말투로 집에 가야 한다고 막무가내로 졸랐다는 것이다. 취업 초기에는 거의 매일 경철 씨와 함께 출근해서 현장 적응지원을 하고 차츰 날이 갈수록 적응이 잘 돼서 4~5개월 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회사를 방문해서 격려하며 적응지원을 하던 중이었다. 뭔가 부족하고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많던 경철 씨의 부모도 경철 씨가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셨고 본인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직장생활에 적응이 되어갈수록 의젓해지고 당당해져 갔다.

 특히 직장의 비장애인 동료사원들과도 대화의 시간이 늘어나고 주말에는 함께 야유회에 참여하는 등 사회성도 부쩍 좋아지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잘 어울려 가던 중이었다.

 나는 경철 씨 어머니가 노점상을 하고 있는 골목 시장으로 자동차를 운전해가면서도 오늘 아침까지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는데 무슨 일이 갑자기 생겼나, 궁금한 마음에 다급하게 차를 몰았다. 발달장애인이 사업체에서 적응하도록 다양한 측면에서의 활동을 지원하는 지원고용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요인을 모두 고려하여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의 부모나 형제, 심지어 친구 등 사회생활 분야에 도움이나 협력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주변인들과 긴밀하게 연락하며 작은 일이라도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공유해야 한다.

 그때는 휴대폰도 없고 통신수단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급한 일이 생기면 멀지 않은 곳은 직접 찾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소통수단이었다.

 막 소나기가 쏟아질 듯한 시장통의 골목길은 물건을 사러 온 손님들과 비 오기 전에 점포를 정리하려는 분위기로 컴컴하고 어수선해서 경철 씨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나를 먼저 발견한 경철 씨 어머니가 아이고 선생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하고 아는 체를 하셨다. 나는 인사과장에게 전화 받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경철 씨가 왜 갑자기 집에 오려고 했는지 물었다.

 그제야 경철 씨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 경철이는 비가 오면 엄마 혼자서 가게 가림막을 설치하고 물건을 옮기느라 힘들어하는 엄마를 거들어주었는데 이제 직장에 나가니까 엄마 걱정이 돼서 그럴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다른 아들 녀석들은 아무도 이 애미(어머니)를 걱정하지 않는데 유독 경철이만 엄마를 걱정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비오는 날에는 달려옵니다.”고 하셨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뜨끔하고 비오는 날이 되면 신경통으로 허리와 무릎이 아프다고 하시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누가 발달장애인을 사회성이 떨어지고 생각이 부족하다고 했던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고 그의 마음의 세계를 알거나 하는 이야기인지...

 이 글을 쓰는 지금, 라디오 일기예보에서 비바람이 불고 전국적으로 봄비가 많이 내릴 거라는 방송이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엄마를 걱정하는 경철씨를 다시 떠올린다. 그러면서 비 오는 날 허리와 무릎이 쑤시고 아프다고 하셨던 내 어머니의 아픔을 경철씨처럼 기억하지 못했던 이 불효자식의 무심함을 탓하고 사죄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괴롭다.

 지금 세상 곳곳에서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많은 발달장애인은 나도 할 수 있어요. 나도 더 잘 할 수 있어요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도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의 능력을 무시하고 부모나 전문가들이 대신 의사를 결정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 사회의 주류에서 소외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보장 시위가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여전히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지하철역에 승강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 ‘1역사 1동선은 서울의 283개 역 가운데 261개 역만 가능하고 22개 역에는 휠체어 탄 장애인이 이용하기 어렵다. 어렵게 승강장까지 가도 앞바퀴가 승강장 틈새에 낄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10를 초과하는 곳이 3,398개나 되며 심지어 20나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서울시 교통공사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개선에 대한 시위나 단체행동을 왜곡하여 장애인들의 의사 표현을 부정적으로 조작한 것이 드러났다.(경향신문 319).

 다시 장애인의 달을 맞으면서 국민 개개인은 물론 사회와 기업주 나아가 정부는 지난 39일 대통령선거나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장애인의 자기선택과 자기결정을 잘 할 수 있도록 준비했거나 또 준비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가 없어서 채용하지 못한다는 사업주에게 우리는 장애인의 능력을 알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장애인들의 정당한 이동권 요구에 당국은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대응하고 있는지, 정치·경제·사회·문화·체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애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의미 있는 달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