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영역의 수어통역”
“공공영역의 수어통역”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4.2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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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미(공공 수어통역사)
고은미(공공 수어통역사)

20202, WHO는 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 팬데믹을 선포했다.

매체들은 연일 코로나에 대한 뉴스를 쏟아냈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데서 오는 일종의 두려움이 있었다. 정부는 매일 2회씩 코로나19 브리핑을 시작했고, 수어통역이 제공되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2016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어 공식적으로 한국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위상과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공용어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201912월부터 대국민 담화나 정부 정책 및 재난상황 발표 현장에 수어통역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뉴스에 자막이 있는데, 왜 굳이 화면의 절반을 할애하여 수어통역을 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당시 코로나 상황은 위험하고 두려운 상황이었고, 뉴스의 요약된 문장만으로는 그 긴박함과 중요성을 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중요한 내용일수록 농인들의 언어로, 동시에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일반 국민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각종 인터뷰를 통해 알려야만 했다. 농인은 일상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즉 수어가 모국어라서 자막이 제공되어도 그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가 어렵고 낯설다고.

처음에는 TV 화면 속 수어통역에 불편함을 표현했던 분들도, 나중에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위험한데 마스크도 없이 일하는 수어통역사 걱정도 하시고, 그동안 정보 접근에 불편을 느꼈을 농인들을 배려하며 수어통역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감동의 글을 주시기도 했다.

공공 수어통역사는 정부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들과 직접 접촉하는 자리이다 보니 혹여나 통역사로 인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불상사가 일어날까 늘 노심초사했고, 요구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자발적으로 검사도 수시로 하며, 불필요한 외출은 삼가는 등의 자기관리에도 철저해야만 했다.

지난 2년을 돌아보면 공공 수어통역사로서 코로나 브리핑 통역은 긴장감과 부담감이 아주 높은 통역이었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의학 전문용어뿐 아니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내용이 다양하게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코로나19 관련 개념을 정리하고 더 정확한 통역을 준비하는 데 썼지만 브리핑 현장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각종 생소한 내용들은 적잖이 당황스럽게 했다.

당시엔 모든 게 확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바이러스의 이름조차 ‘OO바이러스라는 특정 지역명을 차용해서 부르다가 이후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다. 이에 수어도 급하게 변화가 필요했고 하루아침에 바뀐 수어로 통역해야 하는 수어통역사도, 보는 농인들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통역사들도 우왕좌왕 수어가 통일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이런 경험 및 자료들은 국립국어원, 한국농아인협회의 수어전문가와 함께 새수어를 수집하고 재정리하는 형태로 표준화되어갔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예고 없이 닥친 것처럼, 코로나19 브리핑 수어통역도 급하게 시작되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분명 부족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전문영역의 수어통역사를 미리 양성하고 준비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에 국민에게 유용한 정부 정책을 수어로 알려주는 <수어로 보는 대한민국 정부>라는 정부 공식 수어 채널이 개설됐다. 농인의 정보권이 점차 확대되는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앞으로 농인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수어통역이 제공되기 위해서는 준비된 전문 수어통역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청인(聽人) 수어통역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통역사, ()전문가와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이로써 농인 삶의 모습이 여느 국민처럼 당연해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이렇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 국민은 코로나19에 잘 대처해왔고, 이제는 어느새 일상으로 회복을 준비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전보다 더 나은 세상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