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뿐인 정규직에 만족하십니까
허울 뿐인 정규직에 만족하십니까
  • 사회복지노동조합 기자
  • 승인 2022.05.1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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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사회복지노동자 정책 협의가 필요한 이유

사회복지사 통계연감(2021)에 따르면 사회복지시설의 정규직 비율은 대략 77%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임금 노동자 2,000만 명 중 무려 800만이 비정규직인 우리 사회(2021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견준다면 사회복지 현장의 고용은 훨씬 양호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통계에서 말하지 않는 지점에 있다. 흔히 파견·용역·위탁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간접고용은 비정규직에 해당되지만, 통계상 정규직으로 분류된다. 사회복지시설의 정규직 계약 형태가 비록 ‘기간의 정함’이 없더라도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한다. 5년 전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3단계 대상에 민간위탁 사회복지 노동자들이 포함된 것을 기억하는가.

결국 전국의 사회복지시설 약 24,000여 개소 중 불과 1%밖에 되지 않는 지자체 직영 시설의 정규직을 제외한 대다수 시설의 노동자는 공공부문 민간위탁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것이다. 물론 민간 설치 및 운영 시설의 경우 엄밀히 말하면 직접고용에 해당하나  국가 및 지자체의 업무를 종속적으로 대행하는 의미에서 민간위탁 시설과 별반 차이가 없다. 

 

고용 불안, 저임금, 노동기본권의 제약과 노동 조건 악화 등 간접고용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문제는 사회복지 노동현장에서 그대로 발생한다. 다소 개선되었다고 하나 위탁 법인 교체 시 나타나는 고용불안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으며, 이미 법률로도 시행된 지 오래인 처우 및 지위 향상의 경우 실무직원 1호봉을 기준으로 월 기본급이 1,836천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2021 통계연감) 현실은 처참한 수준이다.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어렵게 단체교섭을 진행해도 법인은 지자체 지침 핑계를 대며 권한이 없다는 식으로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지자체는 사용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하는 법이 없다. 시설 운영상 발생한 난제나 노동자의 각종 권리 침해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왜곡된 고용형태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죽음의 외주화로 날선 비판을 받으면서도 원청 업체가 각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명맥을 유지하는 간접고용과 마찬가지로 사회복지 노동의 여러 문제는 ‘원청’인 지자체가 근본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게 만드는 구조에 기인한다. 

 

그러다보니 최소한의 권고기준에 불과한 정부의 인건비가이드라인마저 무시되거나 특히 생활시설이나 소규모시설에서 휴일 · 연장근로수당 · 휴게시간 등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기준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될 정도로 불법행위가 자행된 시설에 대해 시의적절하고 현실적인 제재나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채 엉뚱하게 공익신고자인 직원에게 불이익이 몰리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지자체가 마땅한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지 않아 불필요한 갈등과 분쟁을 유발한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지자체는 마치 진짜 ‘사용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코로나19시기 방역조치가 대표적이다.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종사자들의 업무 외 시간까지 통제하고 생활시설에 대한 강제적인 코호트 격리 실시로 활동을 제약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개별 시설 단위의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서 휴일, 근무시간, 휴가 등 노동조건의 내용이 노동자에게 유익하더라도 지자체가 지침을 이유로 아예 ‘하향 평준화’를 지시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매년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임금과 노동조건을 인건비 가이드라인과 각종 사업안내 등의 지침으로 배포하는 가운데 시설 재량적인 요인, 가령 노사합의에 의한 노동조건의 개선은 점점 허용되지 않는 추세이다.

다시 말해 지자체는 종속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구체적이고 상당한 지휘· 명령을 내리며 사회복지노동자는 거역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데, 우리 사회는 전자에 위치한 자를 바로 사용자라 부르고 있다. 

 

노동조합은 지난해에 이어 지난 3월 서울시, 경기도 등 지자체에 사회복지 노동자와의 협의를 요구한 바 있다.

실질적인 사용자인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정하는 구조에서 탈피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민주적으로 논의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제대로 된 노동조건 개선과 시설의 공공성을 가져올 수 있다.

최근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 시행령 개정으로 중앙, 시도, 시군구에 처우개선위원회가 설치될 전망이다.

처우개선위원의 자격요건으로 사회복지전문가, 사회복지 관련 단체, 법인의 대표를 명시하고 있으나 정작 처우 개선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의 참여는 명확하게 보장하지 않고 있다. 윤석렬 새 정부는 국정과제로 임금 가이드라인에 맞춘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보수 적정화를 포함하여 제시하였는데, 이는 이미 10년 전에 제정된 법률의 원칙에 대한 동어 반복일 뿐이다.

현장 노동자와 노동조합과의 소통과 협의 없는 처우개선은 결국 공염불에 그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