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원회의 이덕인열사 의문사 사건 조사개시 결정을 환영한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이덕인열사 의문사 사건 조사개시 결정을 환영한다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2.05.1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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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5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5월 10일 열린 제32차 위원회회의에서 총 322건의 사건에 대한 조사개시를 결정하였다고 밝혔으며,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열사 의문사 사건이 포함되었다. 

지난 2021년 3월 10일 유가족과 “이덕인열사 의문사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이덕인열사공대위)”가 진실화해위원회에 사건을 접수한지 427일 만이다. 우리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이덕인열사 의문사 사건 조사개시 결정을 환영하며, 이덕인열사 의문사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을 바란다.

이덕인열사 의문사 사건은 1995년 도시빈민과 장애인들이 마지막 생계수단으로 아암도에서 노점을 하던 중 인천시의 일방적인 노점단속과 철거에 대응하며 망루 농성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과도하고 강압적인 공권력의 행사로 장애인 노점상이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인천시는 세계로 뻗어 나갈 희망으로 선전된 개발이 곳곳에서 진행하는 한편, 그 공간에서 삶을 꾸리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는 노점상에 대해서는 대책 없는 단속과 철거로 일관하였다. 

도시개발을 위한 노점상을 비롯한 도시빈민 축출이라는 기조는 당시 인천시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진행된 폭력이었다. 이덕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강제철거는 군, 경, 소방 그리고 인천시와 연수구가 선정한 비리와 폭력으로 악명 높은 용역업체 ‘무창’이 합동으로 강행하였으며, 추운 겨울 화재진압과 상관없이 물대포를 방수하면서 식품과 의약품 반입을 차단하고 인근 진입을 완전히 봉쇄하였다. 

극한의 상황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은 1995년 11월 28일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시신이 발견될 당시 몸에 피멍이 들고 손이 로프줄로 묶여 있었지만, 경찰은 영안실에 있던 열사의 시신을 탈취해 강제부검한 뒤 사인을 익사로 단정하며 서둘러 사건을 종료하였다. 당시 철거작전을 지시하고 수행한, 인천시와 구, 경찰, 군, 용역 등 그 누구도 이덕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후 2002년 김대중정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이덕인이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하였다고 인정”하였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민주화운동 관련 명예회복, 배·보상심의신청이 모두 기각되었다.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위법한 공권력으로 인한 사망인지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지만, 조사가 진행되지 않은 채 2010년 위원회가 해산되었다.

이덕인열사 죽음은 과거의 일, 한 사람의 비극적 죽음이 아니라 빈곤과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 속에서 성장과 개발을 위해 장애인과 노점상을 배제하고 축출해 온 폭력이며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는 청산해야 할 역사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과거 미진했던 열사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과 책임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여 이덕인열사 의문사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통해 이덕인 열사와 27년 동안 거리를 헤맨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야 할 것이다.

2022년 5월 16일

이덕인열사 의문사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 본 성명서/논평은 웰페어이슈의 편집 방향과 무관하며, 모든 책임은 성명서/논평을 작성한 정보 제공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