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발달지연의 발견과 그 후에 필요한 공공의 역할
영유아 발달지연의 발견과 그 후에 필요한 공공의 역할
  • 이우철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6.20 0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애 영유아와 가정을 위해 지역사회가 해야 할 일 #2

엄마 아빠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래.

첫째 딸은 어떻게 가르치고, 둘째는 어떻게 키우고, 막둥이는 어떻게 사람 만드는 지 몰라서..

이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자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었다. 그니깐 우리 딸이 좀 봐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중

 

한참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던 드라마 속 대사였죠.
이 당시 ‘부모가 처음이라’라는 말로 부모됨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에 대한 위로를 건네기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크나큰 역할을 맡게 됨을 뜻하고, 이로 인해 성인까지 자라며 내 의지로 조절되었던 삶이 불확실의 파도 안에 던져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인 경험을 빗대 내어봅니다.

부모가 처음이든 두번째든 어쨋든, 엄마의 따뜻하고 아늑한 배 속에 있던 아이는 세상으로 나와 중력을 경험하게 되면서부터 하루하루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성장은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지만, 그 중 만 3세까지 아이는 일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기본적인 발달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처음이면 처음봐서, N차라면 큰 의미를 두지 않아 아이의 발달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현대 사회는 G검색이나 초록창이라는 든든한 정보의 장이 있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면 물어보게 되죠.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부모가 느낀 이상함은 금새 ‘불안’으로 바뀌게 되고, 발달과 불안이 한데 묶여 정신없는 ‘찾아다님’이 시작됩니다.

이 과정 안에 ‘공공’은 무얼 하고 있을까요?

대표적인 공공 서비스는 ‘영유아건강검진’ 입니다. 이 서비스로 생후 14일부터 71개월까지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시기별 건강검진을 의무적으로 하게 됩니다. 검사에서 발달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을 어렴풋이 알 수 있기도 하지만, 크게 발달이 지연되지 않는 이상 꽤 긴 기간동안 ‘기다려보자’ 라는 답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놓쳐버린 시기 후 ‘발달이 느리다’라는 결과를 받았을 때의 부모들은 더욱 확신에 찬 불안에 휩싸이게 되죠. 문제는 영유아건강검진 서비스는 그 후의 이야기를 제대로 해주지 않습니다. 부모 스스로 알아보고 책임져야 하기에, 불안이 생긴 이유가 ‘내 탓, 우리 탓’이 되어 버리는 과정이지요.

이러한 어려움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과 경기 내 각 자치구 단위에서 특정 연령의 모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발달검사를 보편화하는 조례가 지정되고 있고, 그로 인해 아이들의 발달 지연이 보다 적절한 시기에 발견되어 조기에 대처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사회의 책임’으로 바꾸는 첫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발견’ 그 후가 부재합니다. 기껏해야 연결된 치료/발달 센터 정보를 알려주고, 가능한 바우처비용을 할당해주는 것 외에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발달을 이끌어내는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고 있는 현실입니다.

발달지연 영유아에게 이 시기 필요한 서비스는 3종류의 적절함이 중요합니다.

첫째는 ‘적절한 시기’입니다.
여기서 시기란 지연을 최대한 일찍 발견할 수 있는 시기와 발견 후 기다리지 않고 즉각 개입이 가능한 시기 입니다. 최대한 빠른 발견을 시도하는 사회적 노력과 함께 덧붙여 그 후의 개입 역시 기다리라는 말을 덜 듣도록, 먼저 줄 선 수 많은 대기자 뒤에서 체념하지 않도록, 빨리 서비스를 받기 위해 높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도록 하는 적절한 시기가 중요합니다.

둘째는 ‘적절한 서비스’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발달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접하여야 하며, 우리 아이와 가족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의 발달지연 상황을 알아차린 부모님들은 당장 뭐라도 해야 하겠는데 여러가지 요소로 인해 선택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할 수 있는 서비스를 하게 되는 게 현실입니다. 선택권이 없는 서비스로 인해 아이의 발달에 중요한 첫 시기의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무작정 전력질주하게 되는 것인 셈입니다. 따라서 아이의 발달 상황은 어떠한지, 또 가족의 상황과 성향은 무엇인지, 바라는 모습이 어떠한지 충분히 고민하고 큰 줄기의 방향성을 그려내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그런 다음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면 좀 더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적절한 장소’입니다. 
아이는 시설과 기관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영유아 시기의 발달은 심리적 안정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환경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시기의 가정은 ‘일상’을 누리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치료 중심으로 돌아가는 하루하루를 삶 중심으로 옮겨와야 , 아이가 실제로 놀고 살아가는 환경에서 진행되는 서비스가 더 건강한 성장과 발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아우를 수 있는 방법은 지원 체계의 변화입니다.
산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발달지연/장애 영유아의 지원 서비스를 한데 묶어낼 수 있는 컨트롤타워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고, 적절한 지원 인력이 배치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사설 센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보편적이고 공공적인 성격의 일상생활 환경 중심 센터로써의 역할을 명확히 하여 지역 체계 속에서 발견과 개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서초 등의 지역에서 지역장애아동센터 설립에 관한 조례를 근거하여 만들어진 센터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상 발달’이란 말, 흔히 들어보셨죠?

소아치료 영역에서는 이 ‘정상 발달’이란 용어를 ‘전형적 발달’이란 말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용어의 정의에서부터 ‘정상’의 범주 안에 가두기 시작하면 아이의 발달보다는 ‘정상 혹은 비정상’에 초점을 맞추게 되겠죠. 인체가 주로 발달하는 방법과 모습이 있고, 그것을 ‘전형적’이라 칭할 때 ‘비전형적’이어도 괜찮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발견과 그 후의 부재’를 이야기하면서 ‘발견’이라는 용어에도 물음표가 생깁니다. 발견이란 말이 발달지연을 부정적 시선으로 보게되는 시작점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발달이 지연되는 사회적 문제를 공공의 영역에서 충분히 지원한다면 각자 다 다른 발달의 속도와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용어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또 무엇보다도 사회복지 영역에서의 공공성은 지금도 혼란의 시기를 겪어내고 있는 영유아와 가족에게 괜찮다고,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토닥임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이라 힘든 부모 역할에 더해진 수 많은 바람에 흔들리는 첫발을 딛는 그들에게 이런 말과 함께 디딤돌이 되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처음이라 힘드시죠? 점점 괜찮아질 거에요. 저희와 함께 이 힘든 시기를 잘 건너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