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영유아와 가정에게 필요한 '돌봄'
발달장애 영유아와 가정에게 필요한 '돌봄'
  • 이우철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0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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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영유아와 가정을 위해 지역사회가 해야 할 일 #4

장애는 벼락같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장애’라는 두 글자는 벼락같이 찾아옵니다. 한 사람의 삶에, 한 가정의 삶에 ‘장애’는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찾아옵니다..(중략).. 하지만 ‘둘이 꾸는 꿈’은 아들이 지적장애인으로 살게 된 것을 알게 된 순간 산산이 부서져버립니다. 찬란하고 따뜻하고 소시민적이었던 두 사람의 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들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걸어야만 했거든요. 그들 인생에 벼락같이 끼어든 두 글자 ‘장애’라는 단어 때문에 말입니다.

그와 그녀는 다시 꿈을 꿀 수 있을까요? 꿈 많던 그녀와 꿈을 찾아가는 그는 장애 아이의 부모로 살면서도 꿈을 꿀 수 있을까요? 꿈을 꿔도 될까요? 그와 그녀는, 아니 저와 제 남편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책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프롤로그 중 (류승연 작가)

‘발달이 느리다’ 와 ‘발달장애’ 라는 말은 가까운 듯 하지만 보통은 꽤 긴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이 시간을 아이의 발달을 바라보며 느끼는 불안, 현실을 외면하고픈 거부, 정형화된 검사로 아이를 판단하는 것에 대한 의심, 가족 구성원 간 오해, 잘못의 원인을 부모 스스로에게서 찾는 자책 등 주로 먹구름과 같이 어두운 감정들로 지내왔을 것이라 추측해봅니다(당사자가 아니기에 단정할 수 없지만, 수많은 기사들과 자료 및 보호자의 목소리에서 참고했습니다).

지나고 보면 번개처럼 번쩍하는 순간이겠지만, 당시의 길고 긴 시간을 지나 받아 든 ‘장애’라는 두 글자의 렌즈가 끼워진 삶은 벼락처럼 갑작스럽게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벼락을 예측하고 피할 순 없지만 소나기가 쏟아지면 우리는 ‘천둥과 번개가 내릴 수 있겠구나’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또 벼락 후에도 소나기를 대비할 수 있죠. 그럼 발달이 느리다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을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비를 흠뻑 맞아 완전히 젖기 전에 우산을 쓸 수 있다면,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간다면, 혹은 이제 곧 젖을 거지만 젖어도 괜찮을 수도 있다는 걸 안다면 어떨까요?

그들에게 당장 갈급한 것은 아이의 발달을 ‘해결’할 수 있는 치료/교육적 개입이겠지만, 어쩌면 그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소나기를 함께 맞거나 피해줄 누군가이거나, 또 곧 소나기를 맞을 거라는 것을 알아주고 공감해주며 지지해주며 마음을 돌봐주는 누군가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기에 발달장애 영유아와 가정의 시작엔 ‘돌봄’이 필요합니다. 이 돌봄이란 벼락같이 느껴진 장애라는 두 글자를 받아들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요소들에 대한 타인과 사회의 관심이자 보살핌을 말합니다. 홀로 외로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두운 먹구름을 헤쳐 나가는데 두렵고 막막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곧 이들의 삶을 돌봐줄 타인이 필요하다는 말이며, 저는 이 역할을 공공의 지원체계 속 사회가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발달장애 영유아와 가족에게 필요한 수 많은 돌봄들

1. 발달돌봄

부모님들은 받아든 검사지 안 그래프와 개월수로 체크된 ‘지연’이란 단어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다양한 아이의 모습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검사 결과로 정의되는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데 더 어려움이 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평가자와 환경 안에서 ‘기능’을 평가한다는 것은 때때로 당사자들에게는 폭력적으로 다가온다고 합니다. 일상 속에서는 너무 잘 하는 걸 그 순간 못한다고 채점된 결과는 누구에게나 납득이 어려울 수 있겠지요.

이처럼 발달 검사는 친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의 설명이 부족한 이 불친절함을 친절함으로 바꾸는 것도 ‘돌봄’입니다. 받아든 검사결과지와 일상에서의 다른 부분을 찾아주는 것, 또 아이가 일관적으로 어려워 하는 것, 아이가 잘 하고 좋아하는 것 등 삶 속에서 함께 하며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 입니다. 이 돌봄으로 보호자는 아이의 발달 수준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고, 이로 인해 생긴 불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혼란스러움이 덜어질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아이의 생활을 보다 잘 알 수 있다면 발달을 이끌어줄 수 있는 방법도 알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검사에서 드러난 수 많은 ‘문제’라고 정의된 기능들이 실제로도 아이에게 어려운 요소인지 확인했다면 어떻게 어려움을 줄여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문제 중심으로 검사하는 발달 평가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강점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겠죠.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 아이의 발달을 바라보는 관점의 기준을 잡아나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부모님들 스스로 하기 어렵고 힘든 부분이 있으니 함께 돌봐줄 수 있는 조력자가 필요하며, 발달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가 적합할 수 있습니다.

2. 관계 돌봄

 가장 힘든 이 시기에 “정말 힘들지? 나도 그때 정말 힘들었어.” 라며 토닥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몸과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 연락해서 털어놓을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혹은 아무 일 없이 동네 카페에서 만나 차 한잔 하며 수다떨 사람이라면요?

발달장애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함께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동네에 살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생긴다면,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고 있는 선배 부모가 있다면, 혹은 또래의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고 있는 동지와 같은 관계가 있다면 말입니다.

장애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그와 관련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고, 서로 지지하고 위안합니다. 또 그들은 곳곳의 치료실을 다니며 대기하는 시간동안 서로 만나며 관계를 쌓아나가고 있지요. 이 관계를 조금 더 일상 속으로 들어오도록 연결해주는 돌봄이 필요합니다. 조력자는 서로 위안하는 ‘동네 친구 혹은 동네 언니’를 연결할 수 있는 자리와 기회를 만들어 비슷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 간 ‘관계 돌봄’으로 이어주어야 합니다.

관계 돌봄은 같은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사이만 해당되는 건 아니겠죠. 또래의 비장애 영유아 및 보호자와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이 시기의 보호자들은 자녀의 장애를 수용해나가는 과정이기에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고립되곤 합니다. 류승연 작가는 이것을 실제하진 않지만 실존하는 ‘장애도’라는 섬으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걸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더하여 아이의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감당하지 못해 숨어버리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고 합니다. 이 섬을 벗어나는 것 역시 관계입니다.

비장애 아동을 키우는 한 어머님이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발달장애 아이와 종종 만나다가 주1회 시간을 정해 놀기로 했고, 그 관계가 이어지면서 서로 큰 위안을 얻었을 뿐 아니라 아이들 역시 좋은 친구가 되었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는 가장 사랑하는 동네 친구가 생겼고, 비장애 아이는 장애 친구를 통해 자연스레 장애 감수성을 키워나가며 존중하며 관계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요.

꼭 같은 육아를 하고 있는 관계가 아닐지라도 발달장애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에게 일상을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것이 전문가이지만 일상을 나누는 ‘사람’일 수 있고, 동네 카페 사장님이지만 엄마와 아이가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일 수도 있겠죠. 이외에도 시간과 마음을 내어 일상을 나누는 수 많은 관계는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다’라는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는 큰 위안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시간돌봄

 급할 때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의 삶은 여유의 깊이가 다르다는 걸 육아를 하며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삶터 인근에 가족들이 없고, 맞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긴급한 상황이라도 생기는 날엔 마음 속 비상벨이 시끄럽게 울리곤 합니다. 그나마 저희부부는 공동육아를 통해 다른 부모의 품을 잠시 빌릴 수 있고, 이는 우리에게 든든히 기댈 수 있는 나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발달장애가 있는 영유아는 어떨까요? 가정마다 다른 모습의 상황이겠지만 누구에게나 돌봄은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시간 돌봄이 해결될 수 있어야 양육자 역시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에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요.

 하지만 발달장애 영유아의 시간 돌봄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소득과 장애특성’입니다. 활동지원서비스에 해당되지 않는 연령이기 때문에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돌봄 서비스는 장애인부모회의 돌봄 서비스인데, 이 서비스는 소득을 기준으로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돌봄이 반드시 필요한데 소득이 기준보다 높은 가정의 경우 다른 돌봄 인력을 개인적으로 구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발달장애라는 특성으로 돌봄을 거부당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가족 중 한명이 육아를 전담하게 되고, 많은 부분에서 어려운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게 되는 시작점 중 하나가 시간 돌봄의 부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유아 사업을 담당하면서 활동지원사업의 대상연령이 왜 만 6세부터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곧 어린 장애아이의 발달과 성장은 온전히 부모가 책임지라고 하는 듯한 국가의 책임회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곧 발달장애 영유아의 시간 돌봄의 부재가 부모들로 하여금 자녀의 장애가 개인과 가정의 책임으로 떠안아지며 홀로 소나기를 맞으며 견디게 되는 중요한 지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안에는 이제 막 장애아이를 키우며 새로운 삶의 시작을 하는 영유아에 대한 돌봄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가장 힘든 시기이지만,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영유아와 가정에게 이제는 사회가 보답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발달장애영유아에게 필요한 장애인복지관의 역할

발달장애영유아에게 필요한 것 역시 공공의 지원 체계입니다. 다만 뇌병변장애영유아와 비교하여 장애를 인지하고 수용하는 시기에서부터 장애 특성, 생애주기의 모습 등 다른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기존의 한계를 벗어나 지역과 사람중심의 실천을 요구받는 장애인복지관의 역할 역시 발달장애영유아와 가족이 가지는 어려움과 상황에 긴밀하게 다가간 공공 지원 체계의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달장애영유아의 발굴, 조기개입, 지역사회기관 연계 등 부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핵심 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이 이미 갖춰져 있기에 의지만 있다면 분명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각각의 기관과 지역 특성에 맞는 발달장애영유아에 대한 지원 모델이 개발되어 실천이 이어지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서두에 인용한 글의 그와 그녀는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지금 그 시기를 겪어내고 있는 수 많은 그녀와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결국 모두가 다른 모습이지만 나름의 꿈을 꾸며 살아가게 되겠지만, 시작의 시점에서는 여전히 꿈꾸며 살기에 벅찬 삶일거라 생각해봅니다.

이제는 그들이 조금 더 쉽게 새로운 삶의 발을 떼도록 사회 전체가 돌봐줄 차례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발달장애영유아와 가정도 꿈꾸며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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