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운 복지’ 없는 2023년 예산안 건전재정이 아니라 민생재정이어야 한다
‘두터운 복지’ 없는 2023년 예산안 건전재정이 아니라 민생재정이어야 한다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2.09.01 0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월 30일, 윤석열 정부가 ‘기존 확장재정의 건전재정 전환’과 ‘서민과 사회적 약자 지원’을 내세우며 총 639조원 규모의 2023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내년 정부총지출 639조원은 올해 본예산 607.7조원에 비해 5.2% 증가하고 올해 추경예산 679.5조원에 비해서는 6% 감소한 금액이다. 본예산 기준으로 문재인 정부 평균 증가율 8.7%보다 낮고 이명박 정부 5.9%, 박근혜 정부 4.0% 증가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정부는 건전재정의 근거로 예전 대비 총지출 증가율 하향, 관리재정수지를 GDP △ 3%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준칙 도입 등을 제시한다. 또한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지원한다는 근거로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강화, 주거취약계층 지원, 기초연금 인상 등 두터운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고 설명한다.

우선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건전재정’은 지나치게 진영론적 접근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예산증가율이 높았던 것은 불평등을 개선하는 민생 지원, 코로나 재난 대응 등에 따른 결과였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도 당선 직후 코로나 손실보상 등을 이유로 62조원 규모의 역대 최고 추경 예산까지 시행하고 있다. 내년에 코로나 국면이 진정될 것으로 예상한다면, 긴급 지원 성격의 사업은 조정하는 대신 상시적인 사회안전망을 공고하게 구축하면 된다. 윤석열 정부 스스로 내년에 적자 예산구조를 편성하면서 확장재정과 건전재정을 대립시키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앞으로 민생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종합적으로 설계하고 이를 예산에 반영하여 ‘민생재정’으로 나아가야 하건만 이 비전이 부실하니 대신 ‘건전재정’을 상표로 내세우고 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가 대대적인 감세를 추진하면서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재정수지는 수입과 지출의 합인데, 정작 세입 확충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정부 자료에 의하면 2022년 조세부담률이 23.3%에 이른다. 최근 한국 글로벌 대기업들의 고(高)이윤 실현, 부동산 폭등에 따른 세입 확대 등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세입 역사에서 조세부담률이 23%에 도달한 것은 중요한 성과이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 이후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부자감세 철회 노력, 소득세 과표체계의 누진 효과, 국세행정의 내실화 등이 종합된 결과이다. 그런데 정부의 중기재정운용은 앞으로 조세부담률을 22% 수준으로 묶을 계획이다. 한국이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세부담률을 1단계로 OECD 평균(2020년 24.2%)에 도달하고 나아가 서구 수준으로 상향해 가야 한다. 앞으로도 한국은 세입 확대의 추세를 이어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기국회에서 정부 감세 법안은 철회되어야 한다.

내년 복지분야 지출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근래 복지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면서 복지분야 평균 증가율은 2011~2022년 8.6%이었고, 문재인 정부(2018~2022)에서는 10.5%에 이른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서 복지분야 증가율은 4.1%에 그친다. 이는 2017년 3.9%를 제외하고 2011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이다. 여전히 우리나라 복지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낮고, 고령화에 따른 복지의 자연증가까지 감안한다면 최소한 지난 10여년의 증가율은 유지해야 한다.

복지분야 지출의 구체적 내용도 문제이다. 내년 복지분야 지출은 226.6조원으로 올해 217.7조원에 비해 8.9조원 늘어난다. 그런데 이 중 공적연금 의무증가가 63.0조원에서 71.3조원으로 8.3조원 늘어나고, 기초연금도 물가를 반영하여 2.4조원 증가한다. 즉 내년 복지분야 증액 거의 대부분이 공적연금과 기초연금의 자연증가분인 셈이다. 사실상 정부의 복지 확대 의지를 찾아보기 힘든 예산안이다.

정부가 가장 강조하는 취약계층 복지 예산안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성 강화를 위해 내년에 기준중위소득을 5.47% 인상하면서 역대 최고 인상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서민, 사회적 약자 지원’으로 홍보하는 핵심 근거이다. 하지만 내년 인상률은 현행 기준중위소득이 국가 공식통계인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보다 낮아 그 격차(약 12%)를 줄이기 위해 2021~2026년까지 진행하는 단계적 조정에 따른 것이지 윤석열 정부의 추가 정책 의지가 담긴 수치가 아니다. 게다가 2015년 기준중위소득 제도 도입 이후 최대 수치라지만 최근 물가를 감안하면 기존 복지급여의 실질구매력도 확보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진정 “촘촘하고 두텁게” 약자를 지원하려면, 현행 중위소득 조정 로드맵에 고(高)물가 현실을 반영하여 인상률을 더 올려야 한다. 또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 재산기준을 완화하여 4.8만가구가 새로 수급하게 된 것은 개선이지만 지난 2년 동안 급등한 주택가격을 감안하면 실제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 물론 대선공약집에 명시한 “재산소득환산제에서 재산 컷오프제 도입”과도 거리가 멀다. 

이번 예산안에서 최악의 편성은 주택부문이다. 집값 폭등으로 세입자들이 주거비 부담에 시달리는데, 윤석열 정부는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전면 삭감했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에서 반지하,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에 거주하는 주거 취약계층이 ‘정상거처’로 이주할 수 있도록 이사비 40만원과 무이자 보증금 융자를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정부는 알아야 한다. 지옥고에 사는 사람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보증금 대출이 아니라 저렴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다. 그런데 내년 주택부문 지출은 약 35.8조원에서 33.5조원으로 약 2.4조원 감소한다. 민간주택으로 넘어가는 분양주택사업 융자를 1.1조원 늘리고, 주택구입·전세자금 융자를 1.5조원 늘리면서 오히려 실제 주거취약계층에게 절실한 국민임대, 공공임대, 영구임대, 행복주택, 다가구매입임대 등 공공임대주택 융자, 출자금이 일제히 삭감되었다. 특히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탈출에서 핵심 대안인 다가구매입임대에서는 융자금이 5.8조원에서 3.2조원으로 2.6조원 감소하고, 출자금은 올해 3.3조원에서 내년 2.8조원으로 0.5조원 감소한다. 어떻게 폭우로 반지하 서민들이 목숨까지 잃는 사태를 당하고도 이렇게 예산안을 편성할 수 있단 말인가.

한편 ‘정부-민간 역할 재정립’을 명분으로 국가사업의 시장화도 추진된다. 우선 일자리사업에서는 정부의 재정지원 일자리가 줄어들고 반대로 민간 참여 일자리는 늘어난다. 정책금융에서는 정부의 직접융자는 축소하고 민간재원 조달이 강조되며, 공공사업에 민간이 참여하는 민간투자사업도 확대된다. 그 결과 노인에게 중요한 소득지원사업인 노인일자리의 경우 올해 84.5만명에서 내년에 82.2만명으로 2.3만명 줄어든다. 이 중에서도 대다수 노인들이 참여하는 공익활동형은 60.8만개에서 54.7만개로 6.1만개 감소하고 대신 시장형·사회서비스형이 23.7만명에서 27.5만명으로 3.8만개 확대된다. 공익형 노인일자리는 단지 ‘일자리’ 목적으로만 접근할 사업이 아니다. 이는 30시간 참여로 27만원이 지원되는 단시간 프로그램으로서 일자리 성격과 소득보장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노인의 사회적 관계망도 형성해주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몇 개 항목에서는 주목할 예산도 있다.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사업은 소득기준을 최저임금의 120%에서 130%로 상향하고 특수고용직·예술인은 사업장 기준(10인 미만)을 폐지하여 28만명이 추가로 지원받는다. 불안정 취업자들의 사회보험료 가입 지원 확대는 바람직하지만 전체 사업장에서 기준 요건 10인 미만도 완화해 가야 한다. 내년에 재난적 의료비 지원도 보완된다. 문재인 정부가 문재인케어의 최종 안전판으로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을 내세웠지만 보장 수준이 미약하여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내년에 재난적 의료비 지원대상 요건으로 소득 대비 의료비 지출 15% 기준을 10%로 완화하고 최대 지원액을 3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상향한다. 현행보다 개선된 예산안이지만, 그럼에도 중증질환으로 가계파탄에 직면한 가구에게 지원 한도를 설정하는 건 여전히 제도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어떠한 질환이든 연 100만원까지만 본인이 병원비를 부담하는 ‘백만원상한제’로 가야 한다. 부모급여 70만원도 눈에 띄는 사업이다. 정부는 영유아 부모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해 만 0~1세 아동 양육가구에 월 35~70만원을 지원하며 이를 위하여 1.6조원을 지출한다. 영아를 위한 양육 지원은 필요하지만 모든 계층에게 월 70만원(2024년 100만원) 제공이 현단계에서 긴요한 사업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정리하면, 윤석열 정부의 2023년 예산안은 건전재정이라는 이념에 사로잡혀 국가재정이 지향할 본연의 목표를 상실한 편성이다. 정부에게 요구한다.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서민들의 민생고가 높은 현실에서 필요한 건 ‘강한 국가재정’이다. 민생지출을 획기적으로 증액하고 세입은 서구 수준으로 꾸준히 상향해 가야 한다. 

이제 예산안은 국회로 넘어갔다. 각 정당들은 이념을 떠나 실질적으로 민생을 살리는 예산안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진정 두터운 복지가 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공공부조 복지를 대폭 강화하라. 생계급여 및 주거급여를 추가 인상하고,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도 폐지해야 한다. 주거취약계층의 주거안정도 절실한 과제이다. 이들이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지옥고에 사는 사람을 위해서는 단기에 공급이 가능한 매입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 병원비도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 힘겨운 지출이다. 병원비로 가계가 파탄나는 사태를 막고 고비용의 민간의료보험 부담에서 벗어나려면 건강보험에서 백만원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부자, 대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는 윤석열 정부의 세법개정도 거부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예산안은 건전재정이 아니라 민생재정이다. 

2022년 9월 1일

내가만드는복지국가

* 본 성명서/논평은 웰페어이슈의 편집 방향과 무관하며, 모든 책임은 성명서/논평을 작성한 정보 제공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