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지리산...!
고맙다, 지리산...!
  •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2.10.2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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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전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지리산 천왕봉을 만나고 왔다. 70살이 되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일 중의 하나였다. 무릎도 시큰거리고 허리도 예전 같지 않은 요즘이다. 70살이 넘으면 엄두도 낼 수 없을 것 같아서 세운 계획이었는데, 지인의 도움으로 무탈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사실 지리산은 1980년대에 몇 번 다녀왔다. 늦은 나이에 들어간 대학의 동아리에서 여름이면 지리산을 종주하는 것이 하나의 의례였다. 그 프로그램에 얹혀서 백무동, 뱀사골, 화엄사 코스로 다녀왔다. 1990년대에도 2박3일 일정으로 지리산에 갔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산행이어서 행복했던 기억과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고단하게 걸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래서 산행을 앞두고 준비를 단단히 했다. 30년 전의 생각으로 섣불리 올랐다가 중간에 내려오는 사태는 막아야 했다. 문득 지리산이 대둔산과 계룡산을 합친 것과 같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먼저 대둔산과 계룡산을 다녀왔다. 대둔산의 계단은 짜증만땅이었다. 그 계단을 죄다 뜯어서 내다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얼마나 경사가 급하던지 더듬거리면서 올라갔다가 또 그런 자세로 내려와야 했다. 계룡산도 힘 들기는 매 한가지였다. 특히 삼불봉과 관음봉을 오르는 길에 놓인 징글맞은 계단들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다리가 휘어지는 것 같았다. 어쨌건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지리산으로 갔다.

아침 일찍 산행이 시작되었다. 처음 1시간 정도는 그래도 순탄했다. 지리산에서 4,000보를 한 시간에 걸었다고 시계가 알려주었다. 스스로 대견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오르막이 영혼까지 빼앗아 가는 것 같았다. 간혹 보이는 절경이 그나마 지친 걸음을 위로해 주었다. 가을 색으로 물이 들기 시작한 나무들도 오랜만에 찾아왔다고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힘을 내서 걷고 또 걸었다. 로타리 대피소라는 곳에서 따끈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대둔산과 계룡산을 합쳐 놓은 ‘웬수 같은 계단’들이 버티고 있었다. 한 번에 50걸음을 이어걷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막판에는 거의 기어서 천왕봉에 도착했다.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보이는 것은 다 아름다웠다. 감격적이었다. 지리산과 연관된 여러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정상표지석을 지나 조금 아래로 내려오자 기가 막힌 풍광이 다시 펼쳐졌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니, 눈물이 났다. 다리는 삐걱거렸지만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0여분 동안 지리산이 만들어놓은 오묘한 세상을 가슴에 담고 또 담았다. 지리산이 ‘또 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선뜻 대답을 못하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거의 다 내려와서야 ‘내가 더 보고 싶을 것 같다’고 답했다. ‘뜻 모를 뭉클함’이 일렁였다. 고맙다. 지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