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복지사는 사람들의 요구를 어떻게 번역하고 있나요
우리 사회복지사는 사람들의 요구를 어떻게 번역하고 있나요
  • 김대근 (마을예술복지연구소 더 창고 대표)
  • 승인 2019.07.24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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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이 전도되는 일을 막아야 합니다.(상) 

싫단 말이야

“왜 국에다 밥 말았어. 싫단 말이야 
 이제부턴 나한테 물어보고 말아줘. 꼭 그래야 돼.“ 

조민정 어린이가 7살 때 지은 시입니다. 작곡가 백창우님이 이 시에 노래를 붙여서 보급하면서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노랫말이기도 합니다.

어린 아이도 자신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자신의 것을 침해하는 어른에게 저항합니다. 부모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위에 시처럼 귀엽고 애교스럽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일을 그 마을의 주인인 주민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진행한다면 주민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중앙일보 사진 캡쳐
@중앙일보 사진 캡쳐

위의 사진은 우리나라에서 벽화로 인해 좋아진 마을이라고 꽤 오래전부터 매스컴을 타오던 이화동 벽화마을의 일을 중앙일보에서 소개한 사진입니다.

대학로의 외곽을 병풍처럼 둘러쌓고 있어 마을주민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발길을 많이 끌어오던 이화동에 벽화마을이 조성된 것은 꽤 오래된 일입니다. 이곳에 벽화마을이 조성되고 1박2일 같은 인기있는 국민예능프로에도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 마을의 사례가 소개되면서 오래된 마을들에 벽화를 그리는 것이 엄청난 유행이 되기도 했구요.
하지만 지금은 마을의 벽화가 곳곳에서 지워지고 마을주민들의 절규로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 또다른 벽화마을로 인기를 끌고 있는 통영의 동피랑마을, 부산의 감천문화마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외지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관광지이지만 이곳의 주인인 주민들은 늘어나는 외지인들의 방문을 참지 못해 외지로 떠나가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7살 조민지양의 애교어린 저항시 “싫단 말이야”가 이분들의 현실과 오버랩 되어 처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 혼자뿐일까요?   

대중목욕탕에 위치한 면사무소  @EBS

꼭 이렇게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행정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10년간 무안에서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애쓴 건축가 정기용씨(1945-2011)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서 면사무소(현 행정복지센터)의 설계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기용씨는 설계도면을 그리진 않고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질문을 합니다. “짓지마! 지금 면사무소 건물 멀쩡히 있는데 뭣하러 또 지어.” 이런 뜻밖의 반응에 당황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동네에서 뭐가 필요해요? 제가 생길 수 있게 도와 드릴께요.” “해줄꺼야?” “가능한 거면 해드릴께요.” “목욕탕이나 지워 줘.” “목욕탕이요? 그동안 어디서 목욕하셨어요?” “한 달에 한 번 승합차 빌려타고 도시로 갔지.”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주민들이 간절히 바라던 목욕탕은 건축가 정기용씨에 의해 면사무소 1층에 지어지게 되었다. 크게 지을 수 없기에 홀수 날에는 남탕, 짝수 날에는 여탕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 후 면사무소는 주민들로 북적이게 되었고 주민주체의 면공동체 참여행정 또한 엄청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건축가 정기용씨의 활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무주군수가 군행사 때 주민들의 참여가 저조하자 대책을 고민하다가 정기용씨에게 부탁을 합니다. 이유를 찾아 해결해 달라는 부탁이었죠. “지들만 그늘에 앉아있고 우리가 거가서 뙤약볕에 벌 설일 있어?” 주민들에게서 나온 반응입니다.

정기용씨는 운동장 주변에 등나무들을 주목합니다. 이 등나무의 순들을 스탠드 쪽으로 자라게 유도하는 설치물을 세우자 덩굴이 관중석의 그늘을 만듭니다. 

이 작업을 마친 건축가의 소회가 걸작입니다.
“건축가로서 내가 한 일은 원래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한 것이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집을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한 건축가 정기용씨는 정작 자기 집은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를 얻어 살면 되기 때문이죠. 창에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모두 내 마당이자 집터인걸요.”

우리(사회복지사)는 사람들의 요구를 어떻게 번역하고 있나요?

번역이 아니라 우리의 시각과 주장으로 오역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나 반성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전문성을 부여하며 단을 높게 쌓고 “제가 알아서 해 드릴께요.”를 우리도 모르게 반복하지 않았을까요?

건축가 정기용씨의 살아생전에 활동했던 내용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분이 이야기 한 한마디는 사회복지사인 우리가 두고두고 염두에 두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은 근사한 형태의 건축물을 만드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직군의 사람들일까요?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물어보고 경청해야 합니다.
한 번으로 납득되는 답을 얻지 못했더라면 두 번을, 그것으로 부족하면 세 번, 네 번 물어야 합니다.

“싫단 말이야”는 단순히 어린이의 투정이 아니라 우리 존재를 향한 주민들의 요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