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현장의 선의의 범죄자
사회복지 현장의 선의의 범죄자
  • 승근배
  • 승인 2023.07.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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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선의의 행동을 악의적으로 해석
정적제거로 악용되는 법과 규칙들
소명과 이의제기의 제도적 개선 필요

 

이용자가 사회복지사를 때리려고 한다. 사회복지사는 본능적으로 팔을 잡는다. 놓으면 가격을 당할 것임으로 오랫동안 놓지를 않는다. 얼마 후 사회복지사는 학대로 신고가 되었고 조사의 결과는 신체적 학대.

사회복지사는 조사결과에 대해 항변한다. 자기보호를 위한 대처가 신체적 왜 학대인가에 대한 이의제기이다. 그런데 이의제기를 할 채널이 마땅하지 않다. 조사기관은 조사만 할 뿐이고, 조사결과의 통보는 개인이나 기관이 아닌 해당 시군구로 하기 때문이다. 시군구는 통보 결과를 근거로 하여 행정명령을 결정해야 한다. 전후 사정은 이해가지만 신체적 학대가 조사결과이기 때문에 아무런 행정명령을 하지 않으면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시군구는 최소한의 행정명령을 기관에 내린다. 결과는 개선명령.

개선명령은 행정상의 처분이다. 그에 따른 행정상의 불이익을 기관에서 감수하여야 한다. 사건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기관은 행정처분을 근거로 사회복지사에게 그에 상응하는 징계를 내려야 한다. 역시 전후사정은 이해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가장 낮은 징계인 견책을 줄 수도 없다. 징계수위가 낮으면 이 역시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된다. 결과는 정직 1개월.

사회복지사는 시군구의 행정처분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행정처분은 말 그대로 시군구와 기관과의 행정사항이다. 개선명령은 사회복지사라는 개인에게 내린 것이 아니다. 사회복지사가 유일하게 항변할 수 있는 것은 기관의 징계인 정직1개월에 대한 다툼뿐이다. 사회복지사가 시군구와 조사기관을 상대로 하여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길은 행정소송 뿐이다. 그런데 이미 밝힌바 대로 사회복지사가 시군구를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할 수 없다. 조사기관을 대상으로도 행정소송이 될 수 없다. 조사기관은 구청에게 결과를 통보했을 뿐이다. 가해자가 되어버린 개인은 이 사건의 소명의 기회에서 철저하게 배제된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사회복지사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 전문가로서 인권감수성에 의한 대응을 한 것일까?
날라 오는 주먹을 피해 도망가야 할까? 아니다. 이도 역시 방임이라는 학대이다. 사회복지사는 그냥 날라 오는 주먹을 맞았어야 한다. 그리고 개인 자비를 들여 정신과치료를 받는 것이 탁월한 선택일 수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예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장애인복지관, 장애인주간보호시설, 장애인 거주시설, 그리고 노인복지 현장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범위를 넓히면 교육현장도 그렇다.

학대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고의와 악의에 의해 위해를 가하는 것이면 논란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에 상응하는 법적 처벌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황들이 꽤 많이 일어나는 것이 현장이다. 사실이 이러하니 장애인복지와 노인복지, 그리고 아동복지 현장을 사회복지종사자들이 기피하고 있다. 선의에 의해 사회복지현장에 진입하지만 어느 누가 의도하지 않는 범죄자가 되기를 희망하겠는가. 돌봄노동자들의 구인난이 심화되는 이유에는 이러한 사례들도 한 몫하고 있다.

 

이의제기나 소명을 할 수 있는 구제제도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나을 수 있지만 현재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차다. 신체적 학대이든, 방임이나 정서적 학대이든 조사에 의해 학대로 판명되면 그의 명예는 실추된다. 사회복지현장에서 학대 가해자라는 낙인만큼이나 치욕적인 것은 없다. 어느 조직에서든 그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며 손가락질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왔지만 결과는 영혼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글을 쓰는 이유는 고의에 의한 악의적인 학대를 감싸주자는 것이 아니다. 행정에 의해 아파하는 사회복지사들과 사회복지종사자들, 돌봄 종사자들을 위해 제도적으로 고민할 지점이 분명히 있음을 밝히고자 쓴다. 자칫 ‘선의의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누구나 현장에 진입하기를 꺼려할 것이다. 적극적인 돌봄활동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피해는 결국 돌봄의 대상자들에게 돌아간다. 서비스제공자는 있으나 적극적인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이 논란은 행정의 제도적 개선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선의의 범죄자란, 선의를 다해 서비스를 제공하던 사회복지종사자가 사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신고를 당해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는 사람을 말한다. 신고를 당한 사람은 거의가 학대판정을 받게 된다. 선의의 범죄자가 되는 사례는 많다. 조직의 정치적 역학에 의해서 또는 집단과 집단과의 경쟁에 의해서, 집단 따돌림에 의해서, 앙심과 악의에 의해서, 금전적 요구나 또 다른 거래를 위해서, 부정확한 정보에 의해서 등등이다. 학대예방과 근절을 위해 신고하고 조사를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억울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인 개입조치로써 이를 중재하고 소명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위의 그림은 현행 학대관련 신고 및 처리절차에 관한 사항이다. 주지하였다시피 학대의 조사는 피해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피의자로 지목된 자는 적극적인 소명의 기회가 제한된다. 또한 조사의 결과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경로가 없으며 법적 대응에 있어서 혼자 감내하여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언론이다. 조사단계에서부터 아예 피의자가 아닌 범죄자로 단정하고 기사를 송출한다.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피의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같은 범죄자로 낙인찍혀 공범이 된다. 피의자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움직임을 보이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된다.   

이에 대한 개선은 아래의 그림과 같다. 조사 단계에서 부터 참관인 또는 공동조사 제도를 두어야 한다. 조사에 있어 옹호자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범죄자도 아닐 뿐더러 피의자도 아니며 조사 대상일 뿐이다.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조치가 필요하다. 위기상황에서 사회복지종사자들을 지원하는 기관들(위기지원센터, 인권지원센터, 장기요양요원지원센터 등, 이하 지원센터)의 역할이 필요한 지점이다.

 

조사기관과 지원센터가 공동으로 조사하여 피해자의 입장에서 조사된 조사기관의 보고서와 피의자의 입장에서 조사된 지원센터의 보고서를 시군구에 제출한다. 시군구는 두 개의 보고서를 토대로 행정명령을 판단한다. 이때에 지원센터의 보고서가 언론과 소문으로 호도될 수 있는 사회복지종사자의 인권이 보호되기를 희망한다. 물론 모든 사건들을 지원센터가 개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원센터 안에 개입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위원회가 설치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법적 구제를 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혼자서는 법으로써 공적조직과 다툼을 벌이기 쉽지 않다. 조사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행정관청과 조사기관의 다툼에서 행정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물론 아무나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지원센터의 공동조사의 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자에 한한다. 그렇다면 지원센터의 심의위원회가 이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개선책으로 제시한 지원센터가 공동조사제도로 개입하여야 한다는 것은 범죄자를 도와주자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공정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여론의 환기가 필요하다는 것, 소명에 있어 피의자가 아닌 중립적 위치에 있는 공적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장의 동료들에게 호소한다. 이러한 사례들을 접할 경우, 사실관계의 확인 없이 매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결과가 끝날 때까지 개인적인 판단을 기사나 소문으로 단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피의자로 몰린 선의의 범죄자가 가장 아파하는 것은 동료들의 사실판단을 배제한 맹목적 비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