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사도 사회복지인..."같이 뛸 운동장 필요해"
치료사도 사회복지인..."같이 뛸 운동장 필요해"
  • 이우철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01 0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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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관에서 치료사가 겪는 어려움
'개인적'으로 생각한 어려움이니 오해마셔요

“서류 작업이 엄청 많다면서요?”
“치료 외적인 일을 엄청 많이 해야된다던데…”
“치료사들을 별로 안좋아한다던데.”
“힘들진 않아요?”
“돈 엄청 작게 주죠?”

“전 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치료사입니다.”라고 다른 치료사에게 말하면 주로 듣는 얘기입니다. 

저런 얘기를 들으면 전 뭐라고 대답할까요.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긴 해요.  쉽진 않죠.”라고 대답합니다.

떡볶이집을 그만두고 운이 좋게도 바로 취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렇게 취업한 복지관에서 느꼈던 것들이면서 동시에 장애인복지관에서 치료사로 근무하기 참 어렵다고 느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운이 좋게 취업한 장애인복지관 역시 서울에 있는 복지관이었습니다. 개관한지 거의 10년을 바라보고 있었던 그 복지관의 자랑거리는 ‘높은 평가점수! 최우수등급의 복지관’ 이었죠.

전 이전 직장에서의 개관멤버였기 때문에 다소 체계적인 시스템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경험과 가게를 하며 쉬었던 행정적인 감을 찾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인기에 들어선 최중증 장애인들의 일상적 재활지원을 위한 보호자 역량강화 프로그램의 모습. 보호자들께서 자녀의 발목관절 변형 진행 방지를 위한 관절운동법을 배우고 실습하고 있다.
성인기에 들어선 최중증 장애인들의 일상적 재활지원을 위한 보호자 역량강화 프로그램의 모습. 보호자들께서 자녀의 발목관절 변형 진행 방지를 위한 관절운동법을 배우고 실습하고 있다.

퇴사자가 많은 이유

인수인계와 주변 치료사들의 '서류 업무 진짜 많다'라는 이야기가 사실이더군요. 제가 보기엔 다 똑같은 내용의 서류를 도대체 몇개를 만드는건지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이거 왜 해야하는지 물어보면 '지금까지 그래왔다, 전에는 이것보다 두배는 많았다, 평가 잘받으려면 해야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나름 서류업무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뭔가 계속 하다보니, 진짜 필요한 서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자부심같은 마음마저 들더군요! 

그 복지관은 치료사가 자주 바뀌는 복지관이었습니다. (서류업무만의 문제는 아니었겠지만요) 서류 업무에 익숙해질만 하면 지쳐 퇴사하고 또 새로운 치료사가 와서 열심히 허덕이다 지쳐가는 게 익숙한 곳이었죠.

또 치료 타임 수도 꽤나 많아 하루 일과가 정말 빠듯하게 돌아갔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서류 업무까지 해야하니, 육체적으로 부담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래도 배웠던 것이 있고, 또 다시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입장이라 나름 의욕적으로 필요한 사업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용자들의 욕구조사를 해보니 '성인기에 들어선 중증장애인'에 대한 프로그램 욕구가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었고,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치료프로그램 보다는 보호자들의 일상적인 재활지원에 대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교육형태의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또 대기자들에게서 '가족'에 대한 프로그램 욕구가 있어 수치료시설을 활용한 여름방학 가족수중놀이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신규 사업을 기획하는 과정과 방법이 세련되지 못했고, 충분한 소통과 조언을 구하지 못했던 것 같고, 그 기관의 스타일이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변명같지만, 만든다 했을 때 그 사업을 신규로 만들려면 우리기관에선 이러저러한 절차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전 지지받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 같은 쎄한 느낌을 받으며 일은 일대로 했습니다. 당사자들의 참여도 반응도 의미도 제 나름의 자부를 가지고 있으나,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가 누구보다도 저를 지지해주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저를 굉장히 괴롭게 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라니까 하는거지?

치료사가 복지관에서 일을 만든다. 무엇이 이것을 어렵게 만들까요?

첫째로 복지관의 대기 시스템에서 오는 물리적 시간의 여유에 대함입니다.
짜여진 시간표로 하루를 채우는 치료사들은 다른 일을 기획하기에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합니다. 

길게 줄지어 기다리는 대기자들은 시간표를 더 꽉꽉 채우게 합니다. 20~30년도 더 된 개별치료중심 시스템은 '치료쇼핑'이나 '재활난민'이라는 신조어로 대표되는 것처럼, 무분별할 수 있는 대기 시스템 안에서 정작 꼭 필요한 당사자들이 치료받으려면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어찌보면 당사자 입장에선 기가막힐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지요.

이런 시스템은 치료사들이 환경변화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실천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됩니다. '이렇게 많은 대기자'라는 이야기는 치료사와 당사자 모두에게 꼬여버려 풀기 어려운 실타래가 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는 깊게 판 한 우물에 대함입니다.

치료사들은 일반적으로 학생때부터 각각의 영역만을 집중적으로 파고 듭니다.
치료를 위해 대상자를 평가하고, 계획을 세우고, 치료행위를 하고, 점검하고, 상담하는 것만을 배우고, 실습하죠.  다른 영역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크게 없다고 느낍니다.

병원이나 센터나 배운대로 하면 전문성을 인정받아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복지시설로 취업하게 되면 조금 달라지죠.
한번도 배운 적 없는, 배울 필요도 없었던 것들을 해내야 한다고 하니 힘듭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에 맞는 서류를 만들어내고, '사회복지적' 시각에 맞는 평가를 해야 하는 그런 모든 과정들이 치료사들을 힘들게 하는 건 분명합니다.

당연히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한다면 필요한 과정이고 해내야 하지만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왜 이런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주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하라니까 하는거지'라는 마인드는 종종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거나, 어쩌면 일을 하고 있음에도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깊게 판 좁은 우물은 우물대로 파면서, 그 옆에 넓고 때로는 깊기도 한 웅덩이를 하나 더 파려니 힘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복지사가 아닌 사회복지인…사회복지계는 내 영역?

셋째는 여전히 비주류이고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애매하고, 민감하지만, 그런 느낌을 종종 혹은 기관에 따라 자주 받기도 합니다.
'치료사이고, 치료 분야이니 잘 몰라요. 알아서 하시겠죠'라는 말이 믿어주는 신뢰의 말로 느껴지거나 혹은 무관심으로 인한 방치 혹은 잘 하는지 지켜본다라는 의심의 말로 느껴지는 것은 종이 한장차이입니다.

소속감을 느끼고 열심히 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비주류인 탓에 겪는 상실감도 꽤나 큰 것 같습니다. 복지관 직원들에게도 여전히 '사회복지종사자'나 '사회복지인'보다는 '사회복지사'라는 말이 무심결에 나오는 것을 경험하면 겪어본 소수만 아는 그런 설움같은 느낌이 있죠. 말하면 쪼잔해지는 그런 것이요. 

그래서 결국 치료사들은 사회복지시설에서 길게 일한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부장, 국장, 관장급 치료사를 본 적 있으신가요? 
꼭 승진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사들에게 '사회복지계'가 내 영역이라는 마음이 들기 어렵다는 것이 힘들게 합니다. 물론 쌍방의 문제도 있지만요.

이런 어려움 말고도 굉장히 많겠죠.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니 다른 분들은 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짐작됩니다. 

이번 글을 쓰는데 참 어려웠습니다.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쓰는 데 '치료사'란 말을 붙였으니 말이에요. 일반화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의견임을 한번 더 밝힙니다.

치료사도 사회복지인…같이 뛸 운동장이 필요해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거냐? 라는 질문에 치료사들이 '사회복지인'이라는 소속감을 갖고 사회복지영역 안에서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 줬으면 합니다.

사회복지사처럼 일하는 치료사 말고, 사회복지영역에서 치료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찾고, 어떻게 하면 웅덩이를 잘 팔 수 있는지 고민하고, 그 일의 의미를 내재화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죠. 
각각의 상황에서 변화할 수 있는 요소들을 발견하여 혁신하고 바꾸어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치료사들도 굉장히 잘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금까지 과거의 이야기들을 통해 제 경험과 생각을 내어놓았습니다.
'과정기록지'처럼 그간의 기록을 풀었다면 이제부턴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내가 바라고 꿈꾸는 치료로 사회복지하는 사회복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틈틈이 기록해뒀던 말도 안되는 아이디어부터,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사업과 그 사업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순 없지만 꼭 해보고 싶은 사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럼 제가 일을 하는 이유가 좀 더 명확해지고, 구체화되지 않을까요?

지금 제가 생각하는 일을 하는 이유는 '내가 일하고 있는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치료사업을 통해 장애인과 가정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