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을 위한 일? 사회사업가가 하고 싶던 일!
어르신을 위한 일? 사회사업가가 하고 싶던 일!
  • 김대근 (마을예술복지연구소 더 창고 대표)
  • 승인 2019.07.29 2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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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부침개에 실린 마음을 담아 ‘창고’를 만들다

지난 글에 소개한 것처럼 복지관을 그만 둔 뒤 저는 서울시에서 추진, 관리하던 마을예술창작소(줄여서 ‘마술소’라고도 함)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마을예술창작소는 마을에서 공동체 문화활동을 통해 마을 일상의 환경을 관계와 협력 중심이 된 공동체로 바꿔가기 위한 사업입니다. 도봉구 창동에서 주민센터로 사용하던 건물을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이를 통해 공동체 예술 활동도 활성화 시키는 것이 사업의 목표였습니다.

주민 욕구를 담아 '창고를 열다'

창동이라는 명칭이 조선시대 한양 이북에서 궁으로 이동하는 곡식들을 저장한 창고가 있었던 곳이라는 점을 착안해 마을예술창작소의 명칭을  ‘창고’라고 지었습니다. 공무원과 주민, 활동가, 예술가들이 모여 지난한 과정을 거쳐 정한 이름이었습니다.

마을예술창작소 창고 전경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이 주민 한분 한분의 의견을 물은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의견을 구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주민 의견을 모으기도 힘들지만 더러 해석하는 입장이 달라 의견을 모으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초기에는 경로당이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는 의견이 높았습니다. 이어 지역사회에서 우리의 공간을 노리는 수많은 관변, 이익단체들의 요구들이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주민자치센터였을 땐 이랬는데...'라며 비난하는 민원까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다 들어주면 애초의 취지와 목표에 맞는 마을예술창작소 조성은 불가능해 집니다. 고심 끝에 주민들에게 이런 의견들을 한자리에서 들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취지도 충분하게 설명을 드리고 이해를 구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공간을 나름 신경 써서 예술가들과 함께 꾸미고 주민들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20여분 지났을까요? 갑자기 사람들이 퇴장하면서 “지금 한가하게 마을이야기를 할 때야??” “경로당이나 만들어 달라니까 이게 뭐하는 짓이야?” “주민센터 이전하더니 쓸데없는 짓들을 하고 있어!” 소리를 지르며 불만을 성토해댔습니다. 무언가 해결책을 줄 것이라 기대하고 진행한 자리는 더욱 깊은 절망감을 선사해 주는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위로의 부침개

이런 일이 있은 뒤 우리는 “여기서 포기해야 할까?”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절망의 시간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때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표님, 와보셔야겠어요. 어르신들이 찾아오셨어요.” '며칠 전 우리를 혼쭐내던 어르신들이 찾아오셨다니...' 잔뜩 긴장하고 서둘러 복귀했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이 벌어져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고생이 많다며 마을 할머니들이 집에서 부침개를 비롯한 맛있는 음식들을 가져와 직원들을 먹이고 계셨던 것입니다.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는데 그 불편함을 마다하지 않고 이 곳을 멋진 잔칫상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 감동의 사건 이후 우리는 반드시 이곳 창고를 어르신들이 행복하게 이용하는 자리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게됩니다. 

불통의 이유를 소통의 계기로 삼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어르신들이 왜 경로당을 원하셨는지 보다 깊은 대화를 통해 알아보는 자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 주차장 앞에서 평상을 펴놓고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시간을 창고가 시작되는 자리로 만들고자 해서 ‘마중물’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때로는 벼룩시장을, 어떤날은 시민단체 회원들의 협조를 받아 수지침 봉사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모인 주민(대부분 어르신)들과 특별한 형식을 갖지 않고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현재 사용하는 경로당이 민간과 계약을 맺은 집을 사용하고 있는데 좀 더 쾌적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겨울에 따뜻하고 아픈 몸을 지질 수 있는 따뜻한 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의견을 모아 논의하던 끝에 직접 따뜻한 온돌방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그냥 온돌방이 아닌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고 열효율을 최고로 이용하는 ‘적정기술’을 사용한 온돌방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다함께 적정기술에 대해 배우고 만들다

적정기술 온돌방을 만드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적정기술 난로 기술자들이 모인다는 ‘나는 난로다’ 축제를 보러 전라도 완주군에 찾아가기도 하고 인터넷과 동영상 자료도 닥치는 대로 찾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적정기술을 연구하시는 미대 교수님을 소개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온돌방 만들기 작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주민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쇼케이스 자리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의는 잘 참아도 궁금한 것은 못 참는다.”고 말씀하신 예술인분의 조언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말이죠. 궁금증을 유발하고자 한 이유는 온돌방을 만들 때 가급적 많은 주민들의 참여해서 함께 만들게 하기 위함입니다. 구청에서 폐보도블럭을 협조 받아 간이 로켓스토브(적정기술을 이용해 만든 화덕)를 만들고 창고 앞마당에서 고기를 함께 구워먹었습니다.

불을 피우는데 연기가 나지 않은 화덕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이후 몇 차례 행사와 워크숍 과정을 통해 모집된 주민들이 힘을 합쳐 온돌방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르신들은 이곳의 화력이 세다고 해서 찜질방으로 부르셨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찜질방인 셈입니다. 

이 온돌방은 어르신의 사건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동네 젊은 엄마들의 모임 터가 되었고 젊은 학생들의 MT방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적정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주민들을 많이 모은 것이 큰 성과였습니다. (Youtube에서 ‘적정기술 연구모임’을 치시면 그 광경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 뿐 아니라 청소년들의 참여도 눈에 띄였습니다. 마포구에 있는 성미산학교 학생들은 적정기술 연구모임에 참여한 후 자신들의 공간에 ‘성미산마을기술연구소’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더니 몇 년 후 ‘성미산학교 에너지교실’이란 책을 출한해 내더군요. 

그 때 우리는 어르신들을 위한 일을 했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는 그냥 우리를 위한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실현했을 뿐입니다.

삶의 주인을 파악하고 의견을 구하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래서 마하트마 간디가 “마을이 세상을 구한다.” 하셨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