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탁제도에는 공정한 계약이 필요하다
위수탁제도에는 공정한 계약이 필요하다
  • 승근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0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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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탁자의 의무와 함께 위탁자의 의무도 명시돼야
위탁금, 필요예산의 100%로...수탁금, 그 이상 추가서비스 필요할 경우여야

1990년대 이전까지는 거주시설 중심의 보호서비스가 대부분이었다.
당시만 해도 민간법인의 주도에 의해 사회복지시설이 설립되고 정부는 보조를 하는 구조였다. 민간법인은 기부채납을 통해 부지 등을 기증하고, 정부는 시설의 증개축이나 개보수비, 그리고 운영비를 지원함으로써 운영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부담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시설비와 운영비의 20% 정도를 민간법인에서 자부담하게 하는 것이다.

민간의 필요에 의해 사업이 시작된 것이니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민간법인에게 일정분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나 재정이 열악한 민간법인이 다수였음으로 자부담 비율은 하나의 조건일 뿐이었고 의무사항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사회복지시설의 재정은 언제나 위축되었고, 프로그램비나 인건비 등이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평균적으로 보자면 20% 정도가 매해 부족하였으며 인력도 20% 정도가 부족하였다. 이것이 인력부족으로 인한 인권문제, 안전하지 않은 시설로 인한 사고문제, 프로그램의 부족으로 인한 방치와 수용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자부담이라는 관행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며 오늘날, 위수탁 제도에서 다루는 수탁금의 기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거주시설의 ‘자부담’과 이용시설의 ‘수탁금’의 성격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제도이다.
이용시설의 설립은 민간법인이 아닌 정부에서 주도되었다. 그럼으로 정부에서 부지매입과 시설의 신축 및 개보수, 그리고 인건비의 비용을 모두 부담한다. 이것은 이용시설이 민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필요의 원천은 지역사회와 시민들의 욕구이다. 이렇게 지역사회의 다양한 욕구에 의해 시설들이 만들어지고, 지방행정법상 직영하기는 곤란하고, 공무원보다는 전문직들이 있으니 위탁이라는 제도를 통해 사업자를 모집하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즉, 거주시설의 경우는 민간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어 정부가 보조하는 개념이지만, 이용시설은 이와는 전혀 반대의 개념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필요에 의해 민간이 보조하는 개념이다.

그럼으로 거주시설의 자부담과 같이 이용시설의 위수탁 시에 운영법인에게 수탁금을 요구하는 행위는 사리에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지역문화나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련된 연구와 사업이 필요하여 기관을 설립할 때, 이 기관을 운영할만한 민간법인을 모집하면서 자부담 의무조항을 명시한다면 납득이 가겠는가? 과연 어느 전문가 집단이 모집에 참여하겠는가? 그렇게 민간 전문집단을 모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용시설은 민간법인이 아니라 정부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럼으로 정부는 이용시설 운영비의 100%를 모두 확보한 후에 수탁자를 모집하여야 한다. 그리고 수탁자들의 재정부담은 위탁금 100%에 의한 서비스 외에, 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경우의 추가분으로 요구되어야 한다. 애초에 부족분을 만들어 놓은 채, 운영비의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민간법인에게 비용부담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행정행위라 볼 수 없다.

위수탁제도에서 ‘수탁금’을 요구하는 것은 거주시설의 자부담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관행이다. 그리고 민간법인들이 무저항으로 순종하였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새로운 민간법인들이 복지시장에 진입하면서 무분별한 경쟁이 발생했기 때문에 확산된 것이고, 자본력이 높은 민간법인이 수탁금을 과다하게 책정하여 시장을 어지럽히면서 고착화되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져야 정당하고 공정한 위수탁제도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매월이든, 분기이든, 연초이든 사회복지시설은 정부와 기초자치단체에 사업계획서와 함께 비용예산에 관련된 두 가지의 서류를 제출한다. 하나는 보조금 교부신청서이고, 또 하나는 보조금 교부청구서이다. 상식적으로 신청서와 청구서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신청서는 사업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 이전에 제출되는 서류이고, 청구서는 사업수행에 따르는 비용청구로써 사업과정이나 이후의 서류이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신청서와 청구서를 사업 이전에 동시에 제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후정산을 하게 되면 운영비와 임금지급이 늦어짐으로 편의상 그렇게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원칙대로 하자면 보조금 교부신청서는 사전 약정을 하는 것임으로 사업 전에, 보조금 교부청구서는 사업 후에 하는 것이 맞다. 사업승인과 사업권을 확보한 다음, 사업을 계획에 따라 완수한 후에, 사업에서 발생된 최초에 약정된 비용을 청구하는 개념이다. 즉, 우리의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정부와 기초자치단체에 청구하는 것이다. 청구는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사업 전에 교부신청서와 함께 제출되면서 마치 우리가 구걸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위탁금도 같은 맥락이다. 위수탁공고를 보면 수탁금만을 다루고 위탁금에 대한 내용은 없다. 민간법인의 의무와 책임만을 공고에서 다루고 위탁자의 의무와 재정부담을 다루지 않는 것은 투명하지 않은 계약조건이다. 그럼으로 위수탁공고문에 위탁자의 책임과 의무사항도 명시되어야 하며 민간법인에게 수탁금을 요구하기 이전에 정부에서 조달할 수 있는 위탁금을 미리 확정공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위탁금은 운영비와 인건비의 100%를 부담한다는 조건이어야 하며 수탁금은 필요조건이 아니라 추가조건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탁금은 우리의 전문성을 투자한 것에 대한 청구의 권리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보조금 교구청구서와 마찬가지로 위수탁공고문에 위탁금이 명시될 때, 청구의 권리로 인식될 수 있으며 이렇게 될 때 공정한 계약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