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날개 펴려면 의도적 입김 삼가해야 합니다
나비가 날개 펴려면 의도적 입김 삼가해야 합니다
  • 지경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13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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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와 나비
'모른다는 자세'로 내담자 마주하기
*출처 : 열린책들 출판사
*출처 : 열린책들 출판사

안녕하세요. 이야기&드라마치료연구소 지경주입니다. 웰페어이슈에 팟캐스트 대본을 공유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앞으로 기회 되는대로 1회부터 현재 67회까지, 대본 일부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2016년 7월 10일에 작성한 '팟캐스트 이드치연구소' 제3회 방송 대본 중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읽었던 인상적인 문구'를 재편집하여 소개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읽었던 인상적인 문구와 제 생각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윤기 선생님이 번역하고 열린 책들에서 출판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습니다. 저는 조르바 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 않았고, 주위에 조르바와 같은 느낌의 사람도 없습니다. 만약 조르바를 이드치연구소 동료로 맞이할 수 있다면, 조르바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하고, 보조자아(심리극의 조연배우 같은 역할)가 되어 주인공과 풍성한 드라마를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고 상상했습니다.

소설 후반부에 조르바가 생을 마감하는 장면을 읽을 때는 인생무상이 떠올랐던 기억이 납니다. 기회된다면 이 장면을 재연해보고 참가자들의 소감을 나누어 보아도 꽤 풍성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제가 인상적으로 읽었던 문구 하나를 공유해보고 싶습니다. 이 문구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열번째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뭇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 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 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바위 위에 앉아 새해 아침을 생각했다.

그 불쌍한 나비라도 내 앞에서 몸을 뒤척이며 내가 갈 길을 일러준다면 참 좋겠다 싶었다.

이 문구는 소설 속 주인공 조르바와 직접 관련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문구는 소설의 화자인 젊은 지식인 겸 조르바를 고용하는 사업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화자는 나비가 고치를 잘 뚫고 나올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고치에 입김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리고 화자의 도움을 받아 나비는 고치를 뚫고 나왔지만, 날개를 채 펴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렸습니다.

이 문구를 읽고, 저는 잠시 제 자신을 비추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임상현장에서 내담자라는 나비를 이 세상에 빨리 나오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입김을 불어넣은 화자는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평소 내담자에게 어떤 자세와 태도로 대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또한 내담자가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지 말고 빨리 세상에 나오도록 강압적이고 지시적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내담자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나비처럼 대하지 않았는지 되짚어보았습니다.

몇년 전부터 저는 '모른다는 자세'로 내담자를 마주하면서, 선입견과 편견으로 지레짐작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내담자 정보를 수집했고 많이 안다고 해도, 내담자의 모든 것을 안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정보는 잘못 수집되었거나 오차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담자 스스로 노출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내담자에 대해 계속 알아야 하고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모른다는 자세'를 유지하는데 도움되리라 생각하고, 내담자를 좀 더 안전하게 마주하고 개입하는데 또한 도움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인상적으로 접한 문구 덕분에, 어떤 자세와 태도로 내담자를 마주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읽었던 인상적인 문구와 제 생각을 공유해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