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이의 소원
어느 아이의 소원
  • 지경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03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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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아이는 귀한 존재이다

안녕하세요. 이야기&드라마치료연구소 지경주입니다. 웰페어이슈에 팟캐스트 대본을 공유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회 되는대로 1회부터 현재 68회까지, 대본 일부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2019년 9월 1일에 방송한 팟캐스트 이드치연구소 제68회 방송 대본 중, '사례공유 - 어느 아이의 소원'을 재편집하여 소개합니다.

 

 

정신건강사업의 일환으로, 2년 동안 특정 지역 내 지역아동센터를 순회하면서 심리극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작년에 방문했던 어느 지역아동센터 심리극과 그 아이를 떠올려본다.

나는 심리극 웜업으로 짧은 상황극을 제시했고, 아이들이 고루 참여해 역할연기를 경험하도록 진행했다.

누군가 작가 겸 연출가의 역할을 맡아서, 원하는 상황과 역할을 정하고, 배우를 정하고, 연출가의 지시에 따라 배우들이 연기하도록 했다. 아이들의 자발성과 창조성이 잘 발휘되도록, 나는 개입을 최소화했다.

매 상황극마다 계속 손을 들어 지원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작가 겸 연출가를 원했으나다른 아이들에게 계속 기회를 빼앗겨, 열심히 배우를 지원했다. 연극이 시작되면 그 아이는 마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계속 극 분위기를 주도하려 했다. 다양한 역할을 잘 수행했고, 재치 있게 연기했다. 자발성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급적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이 들어서, 나는 여러 번 그 아이에게 규칙을 지켜주기를 부탁했다. 그 아이는 혼잣말 하듯 작은 목소리로 "아빠한테 부탁해서, 엄마랑 함께 살고 싶어!"라는 말을 했다.

그 아이가 여러번 이 말을 중얼거렸음을 깨닫는 순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행을 멈추고,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 아이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아이에게 지금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았다그 아이는 연극의 주인공이 된다면, 아빠에게 부탁해서 엄마랑 함께 사는 연극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연출은 나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아빠와 엄마 역할만 정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남자 사회복지사를 가상의 아빠로 정한 뒤, 곧바로 가상의 아빠에게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역할 바꾸기를 부탁하자, 아이는 아빠가 되어 엄마와 함께 살도록 허락했다.

가출한 엄마를 어떻게 찾을지 이야기 나누려는 순간, 아이는 곧바로 여성 사회복지사를 가상의 엄마로 정했고, 달려가 힘껏 안겼다. 아이의 모습이 밝아보였다. 역할바꾸기를 통해 아이는 엄마가 되어 다시는 헤어지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자!”라고 말했다. 아이는 다시 자신의 역할을 맡아서 ! 우리 행복하게 살아!”라고 답했다.

나는 잠시 심리극을 멈추고,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담당 사회복지사가 조용히 따라와 참관했다. 나는 아이에게 방금 했던 연극이 사실인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사실이고, 엄마가 가출했다고 말했다. 지금 몇 학년인지 물어보자,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했다. 순간 눈물이 나올 뻔 했고, 더 이상 질문할 수 없었다. 나는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다시 프로그램실로 되돌아가는 짧은 순간, 아이를 위해 어떻게 진행하고 마무리 지어야할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아이에게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경우를 상상해보고, 결혼과 자녀계획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결혼 생각도 자녀계획도 없다고 답했다. 지금 동생이 있는데, 하나 있는 동생을 챙기는 것도 힘들어서, 자녀는 없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주인공에게 엄마 역할을 부탁할 테니, 관객 중에서 딸이 되어줄 사람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주인공은 평소 좋아하는 언니에게 딸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주인공은 엄마가 되어 딸에게 아낌없이 칭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대사는 열심히 공부하고, 엄마 말 잘 들어~ 알았지?”였다. 주인공의 소감을 들으면서, 또 한번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심리극이 끝나고 나는 그 아이에게 수고했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 아이는 나에게 90도 넘게 허리 숙여 인사하면서 "안녕히 가세요!"라고 외쳤다. 아이와 작별인사를 나누며, 마음속으로 하루 빨리 엄마와 재회하기를 기원했고 기도했다.

귀가하면서 아까 진행했던 심리극을 되짚어 보았다. 그 아이는 최고의 소원을 말했고, 그 소원을 심리극 안에서 이룰 수 있었고 기뻐했다. 비록 연극이었지만, 그 아이가 소원을 이루는데 도움 되어 기뻤다.

귀가한 뒤, 나만의 공간에서 내년 2월에 태어날 우리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보았다.

오늘 심리극에서 만난 그 아이 덕분에, 이 세상의 모든 아이는 귀한 존재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리고 아버지로서, 어른으로서,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서, 나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귀하게 대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이 다짐을 잊지 않겠다. 그리고 실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