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의 재구성
격차의 재구성
  • 승근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1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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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7일 사회복지의 날 새벽에 조우한 3명의 청년들이야기
기회의 평등? 좌우의 대립?
격차가 문제야

 

 

19세의 나이에 3억 벤츠를 소유한 것을 보면 돈 꽤나 있는 집안의 자제이다. 이날도 사귀는 여자 친구와 한잔을 걸친 후, 새벽에는 음주단속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마포구를 달린다. 

청년 B는 오늘도 졸립다. 음식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 청년은 학자금이 매번 고민이다. 이날은 토요일이라 계속되는 새벽주문에 정신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청년 C는 여전히 구직 중이다. 계속되는 취업경쟁에서 매번 밀리고, 곧 다가올 추석에 부모님들을 뵐 면목이 없다. 이날도 이러 저런 고민에 잠을 못 이루다가 동네 PC방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회복지의 날 20주년이던 새벽, 이 세 청년이 만났다. 

청년 A는 음주상태에서 청년 B의 오토바이를 들이받는다. 청년 B는 사고로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를 한다. 상당히 떨어진 곳까지 운전한 청년 A는 청년 C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음주운전 중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청년 C가 차량 운전을 했다고 진술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청년 C는 고민됐다. 하지만 이내 수락한 이유는 청년 A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지원을 해 줄 것 같은 기대 때문이었다. (이 내용은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그 후 청년 B는 합의금으로 3천5백 만원을 받는다. 이제 학자금 걱정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청년 C는 범인도피죄로 입건됐고, 청년 A는 음주운전, 범인도피교사죄, 협박죄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날 새벽, 세 명의 청년에게 각기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 
청년 A는 자신의 외제차를 과시할 기회, 그리고 자신의 범죄를 은닉할 기회가 주어졌다. 

청년 B는 아르바이트의 기회, 그리고 더 이상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는 기회가 주어졌고, 청년 C에게는 사회, 경제적 기회가 주어졌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할까. 이들 세 청년에게 이날 주어진 기회는 이미 정당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그런 상황에서의 결과라는 것이 과연 정당하고 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까. 
기회의 평등이 정당하지 않다면 결과 또한 정당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계층 간 격차가 벌어진 상황, 부모의 소득에 의해 헤어 나올 수 없는 격차를 가진 상황에서 기회의 평등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들은 이 사건이 어떻게 결론이 나든지 간에 이미 주어진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가진 자의 자녀들은 주어진 자원을 누릴 것이며, 사회가 정한 법의 틀 안에 갇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지지 못한 자의 자녀들은 점점 더 누릴 것들이 희소해질 것이며, 온갖 법의 틀 안에 구속될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청년 C와 D가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고등학교 때 논문 제1저자로 등록됐고, 부모가 모두 법조계와 정치계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 두 청년의 이야기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대립하는듯 보이지만 이들 역시 ‘기회의 평등’을 상속받았기에 결국 ‘주어진 자원’을 누릴 것이다. 

세대는 그렇게 흘러가 또 다른 세대를 낳는다. 
하지만 부의 축적에 제한이 없고, 분배가 균형을 잃은 이상 2019년 9월 7일 새벽에 일어난 청년들의 이야기는 반복될 것이다. 

그날의 사건은 상하 격차에 관한 이야기이다. 
격차에 의해 다른 기회가 주어진 상황,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선택했으며, 결과는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기회는 평등했고 과정은 공정했으며, 결과는 정의로웠을까?’ 
주어진 격차로 인해 기회와 과정, 그리고 결과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이 사회의 어두운 이야기이다. 

청년 C와 D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들의 이야기는 좌우에 관한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이또한 상하 격차의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상하 격차보다 좌우 대립에 집착하고 있다. 
좌우의 대립은 사회의 균형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그것이 좌우의 본질이다. 어느 하나가 옳고 그름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립에 매몰돼 격차의 문제를 철저히 도외시 해왔다.   

상하 격차는 회복의 문제다. 
이 시대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하는 본질적 문제이다. 대립 속에서 자연적 균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고 회복하여야 하는 삶에 관한 문제다.        

20주년을 맞은 한국사회복지의 날, 인간 존엄과 배분의 정의를 가치로 하는 당신의 시선은 좌우를 바라보고 있는가, 상하를 바라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