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복지 실천전략 하나‘…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마을복지 실천전략 하나‘…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 김석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03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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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지난 여름의 일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추진하는 신나는예술여행’ 프로그램을 신청해 마을에서 '유희노리'라는 공연을 진행하게 되었다
한국의 전통공연예술을 기반으로 경기민요, 판소리, 대동놀이 등 마을 어르신들이 좋아할만한 공연팀이 오는 날이었다.

봄부터 기획했지만 좀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나마 농사일이 좀 한가한 여름에 하기로 하고 8월로 날짜를 잡았다.

여느 때처럼 공연 며칠 전부터 마을회관을 돌며 홍보를 했다.

어르신들, 817일에 서울에서 유명한 공연팀이 내려와서 판소리도 하고 신나게 놀거니까. 꼭 오셔야 해요
몇시에 해?”
낮에 2시에 해요. 2시에 너무 더우니까 일 나가지 마시고 시원한 센터에 오셔서 꼭 공연 같이 보시게요
가야지~ 알겠어
“1
30분에 차로 모시러 올게요~”
그랴~ 고마워

한여름에 낮2시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 밭일, 논일, 하우스일이 어려운 시간대이니 많은분 들이 오겠다 하셨다.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유희노리 공연사진
유희노리 공연

공연 당일이 되었다.
토요일이었음에도 주민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생각에 아침부터 현수막도 달고 의자도 깔고 준비를 했다. 당일 일기예보가 비가 올 수도 있다고 했는데 비가 오는 시간은 4시경이었다. 4시는 공연이 마친 후의 시간이니 어르신들이 공연을 보는대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공연 30분전, 구름이 해를 가리고 바람이 불기 시작 했다. 마을회관으로 어르신들을 모시러 가려고 하는데 공연을 보러 오겠다 했던 어르신께 전화가 왔다.

비가 온다고 해서,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 때문에 못가겄어.”
4시에 온다는데, 공연보고 가서 치우셔도 되요.”
지금 하늘이 시커매서 안돼
오시면 좋을텐데...알겠습니다.”

그 전화를 시작으로 마을별로 어르신들을 모시러 가는데 하나둘씩 못가겠다 말씀하신다. 이유인 즉 볕에 내어 놓은 고추며 참깨가 비에 젖을까 걱정해서다. 비오면 비 설거지해야 하니 못가겠다 하는 것이었다.

일기예보를 봤는데 비가 4시 이후에 온다고 했으니 공연보고 오셔도 괜찮다고, 아니면 공연보러 가기 전에 미리 치워놓고 가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려도 가지 않겠다는 어르신들이 훨씬 많았다. 경험상 바람이 불고 먼하늘이 까매지기 시작했으니 곧 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듯 했다.

순간 서운함이 밀려왔다. '공연팀을 섭외를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날짜를 잡고 공연준비 하느라 내가 얼마나 애썼는데.. 차를 가지고 여기까지 모시러 왔는데도 안가겠다 하시다니...’ 마음 속이 복잡하고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무엇 때문에 이 공연을 기획했는지를 생각해보니 이내 어르신들의 그 상황을 인정하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공연을 기획하고 지원프로그램에 신청하여 공연을 하려고 했던 이유는 주민들이 맘 편히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곧 비가 올 것 같은 상황에서 애써 키운 곡식들 마당에 널어놓고 공연을 보러가면 과연 맘편히 공연을 볼 수 있을까? 평생 농사일로 살아오신 분들인데 공연팀이 온다고 내가 지어놓은 곡식을 팽개치고 공연을 보러 갈 수 는 없는 노릇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시간이니 치워놓고 가면 되겠다. 4시부터 비가 온다하니 공연하는 동안에는 괜찮겠다.’생각했던 것은 나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어르신들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바람이 불고, 하늘이 까매지는 것을 탓하기로 했다.

그럼 가실분들만 가시게요.”

함께 즐기는 주민과 공연팀
함께 즐기는 주민과 공연팀

결국 당초 예상에 비해 반정도 되는 인원으로 공연은 이루어졌다. 공연이 하나하나 올려질 때 마다 박수소리가 커지더니 어깨춤이 절로 난다. 그렇게 한 시간여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기 모인 사람 모두 10년은 젊어졌어~”
잘하네~ 서울서도 못하는 구경했어
내 손봐. 박수를 하도 쳐서 빨개졌어

어르신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공연시간동안 비는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은 분들이 후회스러울 듯 했다.(후회했으면 좋겠다고 일순간 생각했다.)

아니다.

공연을 보신 분은 그 시간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공연을 봤으니 그것으로 족하다공연을 보지 않으신 분들은 내 삶의 방식으로 곡식들을 돌보고 일상을 살았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할 때 때론 나의 욕심에, 나의 입장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이루어 내고 싶어 하는 게 있다. 하지만 요즘은 우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인정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삶이 아닌 그분들의 삶이기에, 주민들을 변화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인생의 선배로 삶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이제까지 살아온 삶을 인정하는 것이 주민들과 함께 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