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죄책감
  • 지경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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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심리극 사례 공유

안녕하세요. 이야기&드라마치료연구소 지경주입니다. 웰페어이슈에 팟캐스트 대본을 공유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회 되는대로 1회부터 현재 70회까지, 대본 일부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20191120일에 방송한 팟캐스트 이드치연구소 제70회 방송 대본 중, '사례공유 : 죄책감'을 재편집하여 소개합니다.

 

 

어제 진행했던 심리극과 두 분의 눈물을 떠올려본다.

두 분은 평소 심리극에 관심이 많아 보였고, 내가 조연배우를 부탁드릴 때마다 곧바로 도와주었다. 두 분 모두 "누가 먼저 멍석을 깔아주지 않으면 잘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심리극 진행 도중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돕고 싶다고 했다.

이번 심리극 주인공은 단주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했고, '단주 고민이 많은 주인공의 갈등'을 다루어주기를 원했다. 나는 두 분께 도움을 요청하여, 주인공의 갈등을 대신 표현해주기를 요청했다.

두 분 모두 '주인공이 술을 선택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맡고 싶다고 하여, 나는 두 분이 원하는대로 역할을 맡도록 하고, 보조강사에게 '주인공이 술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부탁했다. 주인공은 이 상황을 '이성과 본능의 대결'이라고 명명했다.

연극이 시작되면서 이성과 본능이 2:1로 맞대결했다. 나는 본능 역할을 맡은 보조강사에게 '일상에서 술 생각을 떠올릴만한 특정 대사'를 계속 제시했고, 그 대사를 말하도록 부탁했다.

진행 도중 이성 역할을 맡은 한 분이 ‘본능이 더 끌린다!'며 본능이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분은 본능의 대사를 그대로 따라 하기도 했고 맞장구치기도 했다. 이성 역할을 맡은 또 한 분도 '계속 마음이 흔들리고, 솔직히 본능 쪽으로 마음이 끌린다!'고 말했다. 관객들은 두 분의 말에 박수치며 웃었다. “그럼 그렇지!”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주인공은 2대 1로 이성이 본능보다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이 본능에 졌다고 말했다.

혼자 이성 역할을 맡고 계신 분이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눈물을 흘렸다. 술 때문에 입원했고, 잘 치료받기 원하는 자신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이성 역할을 맡은 것은 주인공을 잘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의 단주 의지를 다짐하고 싶어서 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심리극을 하면서, 술 마시고 싶은 본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나는 그분에게 내가 부탁한 역할을 흔쾌히 응해주신 것, 역할에 집중해서 연기해주신 것,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공유해주신 것에 감사인사 드렸다.

본능 옆에 서있던 또 다른 이성 역할을 맡았던 분이 이성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분은 갑자기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분은 나에게, 망설임 없이 유혹에 넘어가서 부끄럽다고 말했고, 눈물을 흘렸다. 술을 끊기 위해 입원했는데, 주인공에게 술 권유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나는 그분에게 주인공의 속마음을 대신 잘 연기해주신 것,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공유해주신 것에 감사인사를 드렸다.

나는 두 분을 한 번씩 안았고, 심리극 연출자로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프로그램실 내부를 둘러보니 숙연해진 분위기였다. 두 분은 제가 진행하는 연극을 도와주셨고, 주인공의 심정에 공감하셨다 생각하고,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두 분은 비난받거나 비판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만약 두 분께서 심리극 도중 했던 발언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묻는다면,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씀드렸다.

주인공을 말없이 바라보던 어느 관객의 시선이 감지되었다. 그분에게 소감을 부탁드리자, 두 분의 말씀과 심정에 공감된다고 했다. 자발적으로 한분이 손을 들었다. 그분은 '베가본드'를 언급하면서, 우리가 술 때문에 방랑해왔으니, 이제 이 병원에 정착하여 방랑자의 삶에서 벗어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리극이 끝나고 나는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두 분을 좀 더 지켜보아주시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다음 심리극에도 두 분이 참석하시면 이야기도 나누고, 상황에 따라 주인공으로 초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귀가 후 두 분의 모습, 주인공의 모습, 관객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참만남'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았다. 다음 주 심리극 시간에는 보다 더 집중해서 진행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