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심리극이 치유의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에 반대한다
이벤트 심리극이 치유의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에 반대한다
  • 지경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12 0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치유와 심리극의 남용

안녕하세요. 이야기&드라마치료연구소 지경주입니다. 웰페어이슈에 팟캐스트 대본을 공유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회 되는대로 1회부터 현재 71회까지, 대본 일부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201912월 10일에 공개한 팟캐스트 이드치연구소 제71회 방송 내용 중에서, 이벤트 심리극이 치유의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에 반대한다' 대본을 재편집하여 소개합니다.

 

이번에는 ‘이벤트 심리극이 치유의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에 반대한다’라는 제목으로 이드치연구소 지경주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저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심리상담 전문가 최호선 선생님의 글을 읽고 크게 공감했습니다. ‘상처와 치유의 심리학’이라는 소제목의 글에서, 최호선 선생님은 치유라는 단어의 남용을 언급하셨고, 즉각적인 치유가 가능한지 그 효과는 지속적일지 의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상처는 순간이지만 회복은 대부분 더디고,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가 성장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고 언급하셨습니다. 그래서 상처도 치유도 사람의 일이고 일상의 일이라 보았고, 쉬운 치유에 현혹되지 말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최호선 선생님께서 쓰신 ‘상처와 치유의 심리학’ 마무리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쉬운 것 달콤한 것은 대부분 가짜였다.’

저는 최호선 선생님의 글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습니다. “저는 심리극이 ‘치유’라는 이름으로 남용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병원에서 심리극을 진행하면서 장기적으로 치료적인 만남을 가지려 애쓰지만, 이제는 병원에서도 급진적인 심리극을 요구하는 추세입니다. 심리극을 활용하는 사람으로서 보다 주의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댓글에 최호선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이 금새 결과를 보려고 엄청 조급하죠.”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급진적인 심리극이 방송을 타고, 여기저기 일회성 이벤트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저는 급진적 심리극을 통해 retraumatizing을 경험한 내담자들을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라고 답글을 남겼습니다(retraumatizing은 팟캐스트 이드치연구소 제27회 방송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벤트 심리극이 치유의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에 대해 반대합니다.

이벤트 심리극이 치유의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과 관련하여, 저는 두 가지 경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경험은 치유 이벤트용 심리극쇼 의뢰를 받은 경우이고, 두번째 경험은 심리극 시간에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고 울분을 표출하면 치유가 된다고 믿는 주인공을 접하는 경우입니다.

 첫 번째 경험, 치유를 위한 이벤트용 심리극쇼 의뢰를 받는 경우입니다.

예전에 저는 어느 자살예방센터에서 두 시간짜리 자살유가족 대상의 심리극을 진행해달라고 제의받았습니다. 이후, 한시간반으로 줄여도 될지 문의받았고, 막상 심리극을 진행하는 당일에는 한 시간만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대규모의 캠프였고, 관련 공무원들이 내빈으로 참석했습니다. 분위기를 보니, 자살유가족을 위한 심리극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심리극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최 측은 저에게 주인공 한명을 정해서 감동의 치유 이벤트를 보여주기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몇몇 참가자들 뒤에 서서 손가락으로 주인공을 시키라는 듯 지목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제가 말을 걸었던 참가자들은 모두 주인공 경험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참가자들의 거부가 당연하다 생각했고, 남은 시간은 웜업 위주로 진행했습니다. 저는 심리극을 마무리 지으면서, 이 분들에게 언젠가 또 다시 심리극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그때는 오늘 보다 좀 더 편안하게 경험해주시기를 기원했습니다.

두번째 경험, 심리극 시간에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고 울분을 표출하면 치유가 된다고 믿는 주인공을 접하는 경우입니다.

비밀이 보장될 수 있는 안전한 장소에서, 안전한 사람 앞에서, 고해성사와 상담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심리극도 안전이 보장될 수 있어야 깊이 있는 비밀이 다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비밀은 심리극에서 진행자와 보조자아가 연극으로 옮기는데 어려운 소재일 수도 있고, 곧바로 심리극으로 다루기에 복잡미묘한 것일 수도 있고, 심리극을 통한 행동화 보다는 언어적인 상담이 더 적합한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극을 진행하다 보면, 치료진과 관객의 동정과 공감 받기 위한 특정 장면을 구상해오신 분들을 종종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특정 장면의 내용은 대부분 자신이 경험한 특정 문제 상황이고, 주인공은 심리극을 통해 특정 장면을 재연하면서 울분을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극을 진행하다 보면, 주인공이 처한 문제상황을 재연하기도 하고, 그에 따른 감정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만이 심리극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심리극은 재연과 감정표현 뿐 아니라, 주인공 스스로 문제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 연기하는 과정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재연과 감정표현에 한정된 심리극이 지나치게 잦으면, 주인공과 관객은 지나친 감정소모와 피로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심리극 소재는 1회성으로 끝날만한 사연이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1회기 이상 진행되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최소 1시간에서 3시간 사이에 심리극으로 다루는데 한계가 있는 문제라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지속적으로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리극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은 대부분 지속적인 문제 다루기가 필요한 분들이고, 주치의가 갖고 있는 내담자에 대한 치료전략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진행 중입니다. 4년동안 만나온 분도 계시고, 2년동안 만나온 분도 계시고, 6개월 이상 만나온 분도 계십니다.

제가 29년간 경험하고 목격해온 심리극 중에서, 낮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주인공의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한 사례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관객이 상호작용하며 진행된 심리극 사례도 많지 않았습니다. 

심리극 진행자는 안전하고 원활하게 주인공이 문제 해결과 성찰의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지, 주인공에게 함부로 충고하거나 조언하거나 길을 알려주거나 성찰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하는 모레노의 아돌프 히틀러의 사이코드라마 사례를 생각해봅니다. 자신을 아돌프 히틀러라고 생각하는 환자가, 모레노가 진행하는 병원 사이코드라마에서 스스로 아돌프 히틀러의 삶을 살아보고, 스스로 아돌프 히틀러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신으로 되돌아왔을 때 까지 지속적인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모레노가 발표한 아돌프 히틀러의 사이코드라마야 말로, 의미 있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본 한국의 심리극 현실과 많이 달라 보입니다. 모레노의 이름으로 먹고 사는 수많은 대한민국의 심리극 전문가, 심리극 권위자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사이코드라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팟캐스트 이드치연구소 제67회 방송에서 미국의 심리극 전문가 캐런 카나부치가 저술한 Show and Tell Psychodrama 라는 책을 소개했고, 그 책에서 젤카 모레노가 했던 말을 인용했었습니다.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리극을 진행할 때 분노는 신중하게 다루되 너무 몰입하지 않는다. 심리극 진행자는 주인공이 분노에 접근하도록 마음의 준비를 도울 수 있지만, 직접 분노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주인공이 정신건강에 해로운 특정 패턴과 역할을 시도한다면, 진행자는 심리극을 중단시킨다. 분노 표출은 종종 카타르시스로 잘못 해석되기도 한다.”

저는 ‘분노표출이 카타르시스로 잘못 해석되어 적용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주인공의 분노표출을 잘 끌어내기만 하면 심리극 전문가로 인정받는 분위기, 카타르시스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주인공의 분노와 눈물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면서, 어느새 국내 심리극은 ‘분노와 눈물을 쏟아내는 강렬한 연극’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이벤트 심리극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벤트 심리극이 치유의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최호선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공광규 시인의 ‘쉽게 자기를 흔들어 울지 말라, 그러나’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   *   *   *   *   *   *   *   *   *


쉽게 자기를 흔들어 울지 말라, 그러나

공광규

 

막무가내인 바람과 약한 나무가 많아
세상이 슬픔덩어리인 양 보이지만
헐벗은 겨울 나무는 미풍에 울지 않는다

작은 바람 앞에서
쓸데없이 자주 울어버리는 나무들 사이에서
쉽게 자기를 흔들어 울지 말라

바람은 우리를
거친 들판에 몰고 다니며 구기고 찢어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치려고 애쓰지만

소외의 크기가 같은 옆의 나무와
어깨 서로 기댄다면
구두발길질 따위엔 쓰러지지 않으리

그러나 몹시 사나운 바람 불어
우리의 슬픔이 미풍에도 자주 울어대는
나무들의 슬픔과 같지 않을 때

누가 나를 따라 울 것인가 살피지 않고
슬픔의 크기가 같은 나무들과 어깨동무하고
바람보다 더 큰 힘으로 울어버린다면

못견디게 그리운 이름 부르는
우리들 함성만 남아
세상 울리리 엎어버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