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세요
오래 사세요
  •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19.12.23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래 사세요’라는 인사를 들었다.

살다보면 한 순간의 만남이나 대화가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만남이나 대화가 있고 나면 여러 날을 그 여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삶을 돌아보게 되고, 지금까지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있었던 원칙이나 기준들을 새삼 곱씹어 보게 된다.

그런 말들이 가지는 특징은 매우 일상적인 말이라는 점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충격적인 말이 아닌데도 느닷없는 깨우침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조언은 우리의 삶에서 수도 없이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는데, 아직도 이 문장 앞에 서면 왠지 조심스럽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일갈한 성철스님의 법어도 사실 당연한 말인데, 들을 때마다 옷깃을 여미게 한다. ‘네가 최고다’는 친구의 메시지도 분명 최고가 아님을 능히 알고도 남음이 있지만 사람을 들뜨게 하고 기분 좋게 한다. 지나가는듯한 이야기에도 엉겁결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엊그제 산에 오르면서 들은 한 마디 인사말이 산행을 하는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산에서 내려오던 한 아줌마가 뜬금없이 ‘선생님! 오래 사세요’라는 인사를 건네 온 것이다. 산이 좋아서 토요일마다 빠짐없이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면서 듣거나 나눈 인사말과는 판이하게 다른 ‘오래 사세요’라는 인사가 그 날 온종일 생각을 복잡하게 했다. 그래 오래 살아야지라는 다짐부터 그 아줌마에게 내가 병자처럼 보여서 그랬는지도 궁금했고, 혹시 그 아줌마가 몹쓸 병에 걸려서 그런 인사를 나에게 한 것은 아닌지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멀쩡한 사람에게 오래 살라고 인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이 인사는 명절이나 특별한 날 어르신들에게 큰 절을 올리면서 덕담으로 드리는 경우가 많은데, 산 속에서 이런 인사를 접한 것은 굉장히 낯선 일이다. 이 인사말을 듣고 난 후, 햇살이 잘 드는 곳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산을 오른 시간보다도 묘한 생각에 빠져서 헤맨 시간이 훨씬 길었던 것 같다.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아줌마는 편한 마음으로 인사를 한 것인데, 괜히 내가 ‘정신적 과잉활동’을 한 것으로 생각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두 가지 다짐은 분명하게 했다.

한 가지는 ‘어차피 들은 이야기이니, 건강하게 오래 살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 주 사부작 산행은 다른 길로 갔다 오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