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동 못하던 남편, 뇌출혈 아내 구하려다 함께 안타까운 죽음
거동 못하던 남편, 뇌출혈 아내 구하려다 함께 안타까운 죽음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0.01.13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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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한산 기자 = 두 평 남짓한 침침한 방안에 온기라고는 없었다. 허름한 침대엔 전기장판이 켜져 있었으나 한기를 밀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은 방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켜진 TV에서 흘러나오는 방송 소리만 고요한 정적을 깨고 있었다.

부부는 침대 옆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쓰러져 있었다. 부인은 침대 끝부분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남편은 침대에서 바닥으로 그대로 누워 있었다.

경찰은 "부인이 뇌출혈로 쓰러지자 장애가 있어 거동을 할 수 없었던 남편이 부인을 도우려고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가 저체온증으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7일 광주 남구청과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전 9시30분쯤 광주 남구 주월동 한 다세대주택에서 남편 A씨(63)와 필리핀 출신 부인 B씨(57)가 숨진 채 발견됐다.

최초 신고자는 사회복지사다. 사회복지사 C씨는 A씨 부부의 집안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자 집을 방문했다가 숨져있는 부부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A씨 부부는 2004년 결혼했다. 형편이 어려워 결혼 이듬해 A씨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됐다. B씨도 2011년 한국국적을 취득한 이후 수급자가 돼 다달이 120만원 가량을 지원받아 왔다.

하지만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편은 2014년 교통사고로 뇌병변을 앓게 됐다. 침대에 누워 거동은 못하고 손만 겨우 움직일 정도였다.

A씨는 최근까지 아내와 인근에 사는 동생의 돌봄을 받아왔다.

지자체는 고독사 방지를 위해 중증장애인 등의 가정은 주기적으로 방문하지만 A씨는 보호자가 있다는 이유로 포함되지 못했다.

A씨 부부는 쓰레기봉투나 반찬을 전달하기 위해 통장, 봉사단체가 방문해도 외부접촉을 꺼렸다. 민간 봉사단도 한 달에 한 번 반찬을 두고 가기 일쑤였다.

A씨 부부 집에는 '응급안전알림'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응급안전알림 시스템은 상시보호가 필요한 독거노인이나 중증장애인 집에 화재·가스감지센서, 활동감지기, 응급호출기 등을 설치해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소방서와 복지센터 등에 자동으로 신고하는 시스템이다.

광주 남구는 응급안전알림 시스템을 2015년부터 191세대에 보급했다. A씨 집에도 2015년부터 설치됐다.

하지만 직원 1명이 191곳의 응급안전알림 시스템을 모두 관리하다 보니 모니터링이 쉽지 않았다.

이 직원은 지난 1일을 전후로 A씨 부부 집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일 B씨에게 전화를 걸고 3일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응답이 없자 평일인 6일 A씨 부부 집을 찾았다.

경찰은 부부가 숨진 지 수일이 지나 발견된 것으로 추정했다.

남구 관계자는 "연락이 되지 않아 집에 방문했을 때 B씨가 화를 낸 뒤로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확인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부부가 숨진 채 발견 당시 부인의 몸 위에는 이불이 덮어져 있었다.

경찰은 "부인이 쓰러지자 거동이 불편한 남편이 이불을 덮어주려고 안간힘을 쓴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복지단체 한 관계자는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남편과 그를 돌보던 아내가 숨진 채 발견된 사고는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드러낸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