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힘내라!
우한 힘내라!
  • 승근배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2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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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기사로 내 몰리는 우한의 아픔
아픔을 확대 재생산하는 수준낮은 정치
거대한 포비아에 인류애는 어디로 갔을까?

 

지난 1월 27일자 홍콩의 빈과일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기사에 2장의 사진을 올린다.

이 사진은 중국인들의 집단이기주의, 시민의식을 거론할 때 마다 다른 매체들이 애용하는 사진이 돼 버렸다.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우한 사람' 중국 전역서 쫓겨난다…마카오는 '강제격리' 조치. 총 겨누고 못 들어오게 막거나 진입 터널 흙으로 메우기도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러한 선택적 인식은 이미 확보된 고정관념과 편견을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주 고질적인 성향인 확증편향에 기인한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주장을 증거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의견과 주장에 위배되는 정보는 못 본 척 하거나 자신의 의견에 맞게 왜곡해버린다. 사람과의 대화가 어려운 것은 이 확증편향의 영향이 크다.

확증편향을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상대의 의견을 비판하고, 비교하고, 평가하고 자신의 의견을 강요한다.

아무리 그것이 진실이어도 자신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으면 가짜 뉴스이고, 그것이 거짓이어도 자신의 주장과 일치하면 팩트이고 진짜 뉴스다. 이 확증편향이 선택적 정의를 낳는다.

중국의 한 마을에서 총을 들고 후베이인의 진입을 막는 모습

이것이 문제적 사진이다.

빈과일보를 캡처한 모 신문사의 캡처를, 또 다른 신문사가 캡처한 사진을, 필자가 다시 캡처한 것이다. 과연 저 사진은 진실일까?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믿고 싶으면 그렇게 믿는 것이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는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주력소총인 AK47이 일반 남자 성인에게 들려져 있다.

소총 같지만 자세히 보자. 은박이 둘려쳐진 장난감 총 같다. 중국은 총기소지가 금지되어 있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저 시민은 민병대인가? 민병대가 조직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남성 뒤 현수막을 보자.
“健康 ?禁走亲串友”(건강을 위해 친지의 왕래를 금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외출을 자제하라 라는 구호와도 같다. 그러니 기사의 내용처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성인 남자의 웃는 모습을 봐도 그러하다.

후베이성 접경 마을에서 흙으로 후베이성으로 통하는 터널을 막는 모습

다음의 사진도 역시 빈과일보를 캡처한 모 신문사의 캡처를, 또 다른 신문사가 캡처한 사진을, 필자가 다시 캡처한 것이다.

‘과연 접경마을이 맞을까? 중국의 경우에는 도로를 무단으로 차단하는 것에 대해 법적 제재가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빈과일보(Apple Daily, 蘋果日報, 苹果日报, Píngguǒ Rìbaò)는 홍콩의 신문이다. 1995년 창간하여 Next Digital에서 출판하고 있다. 홍콩의 정치, 경제적 독립을 희망하므로 결과적으로 중국에서 출판 금지 및 인터넷 접속 금지(great firewall of China)되어 있다.’(위키리키 백과사전 발췌).

기사 자체의 선정성도 심하기 때문에 1999년 케이블 방송 규제완화 조치와 함께 대만 언론계 자체의 수준을 크게 낮춘 원흉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빈과일보가 2003년 대만에서 창간하는 단계를 거치게 되면서 대만미디어의 보도에 신뢰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1998년과 2003년을 거치면서 대만신문에 사진, 도표, 모의 화면과 같은 이미지가 급증했고 사건을 묘사하는 필법은 오락적, 구어적, 극적인 형태로 변하게 되었음을 지적했다.’ (대만 방송 뉴스의 현실과 쟁점, (공)저: 이정기·황우념)

빈과일보는 중국언론이 아니라 사실은 반중화민국의 홍콩언론이다. 이 빈과일보의 자극적 사진과 기사를 우리나라 언론이 캡처하여 계속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을 입국금지 하여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50만명을 넘어섰다. 그 반대로 중국 우한에 마스크를 보내자는 국민청원은 지지부진하다. ‘우리가 쓸 것도 부족하다. 중국인들이 사재기 한다.’는 반대여론에 부딪힌다.

‘국민의 세금으로 왜 중국인들을 치료하느냐? 그래서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로 넘어온다.’ 우리나라 마스크 공장 생산라인이 그 정도의 물량을 못 댈 정도는 아니다. 사재기 하는 사람이야 극히 일부이다. 우리들의 세금은 우리 국민만을 위해 쓰라고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대외구호비도 역시 정부의 예산 계획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두려움을 자극하는 언론의 영향이 크다. 구독률을 위해 배제와 차별이라는 자극적 프레임으로 독자들을 두려움에 가두어버리고 있다. 그 언론을 활용하여 인류애적 구호를 정당정치로 흡수해 버리는 정치권도 역시 이 두려움을 활용한다.

이 두려움은 확증편향에 기인한다.
사람은 과거의 기억 중, 좋은 경험보다는 나쁜 경험을 판단과 선택의 기준으로 활용한다. 이 나쁜 경험이 확층편향을 고착화시킨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는 더욱 그러하다. 생존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봐. 내가 그랬잖아, 내가 해봐서 아는데, 사람은 믿으면 안돼! 왜냐하면 나에게 이러저러한 경험이 있었거든!’ 수많은 사람에 대한 좋은 경험은 망각하고 몇 번 일어나지 않은 소수의 사람에 대한 경험을 절대화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한류열풍에 의해 관광지수가 좋아지고, 우리나라의 문화 및 예술이 수출되었던 좋은 경험은 사라져버리고 병균을 가진 민폐국가로만 50만명 이상이 확증편향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불과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정식언론이 아닌 가짜뉴스, 찌라시, 유튜버에 의해서 말이다.

그것은 모두 인간이 가진 두려움, 생존본능, 그리고 나쁜 경험을 떠올리는 확증편향으로 작동되고 있다.

위기 상황일수록, 인간 본연의 모습을 탐색할 수 있어야 한다. 안 좋은 기사에 흥분하기 보다는 보다 냉철한 가슴으로 현 상황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에 대한 이야기이다.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각종 확증편향과 판단의 오류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에 대한 ‘신뢰’밖에 없다. 그리고 현 상황에 대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이 접한 약간의 불완전한 정보를 진실로 판단하기 이전에 사람들과 모여 토론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사재기 한 사람의 행동을 비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사람에 대한 호혜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낸 돈은 사회적 안전을 위한 것이며 그 안전에는 전 인류도 포함된다는 것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오려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아버지일 수 있으며 어머니일 수 있으며 나 자신일 수 있다. 

우한 힘내라! 이 아픔을 함께 이겨내자.
아픔은 함께 이겨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