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재난 긴급생활비 현장 접수에 3종 복지관 직원 50% 이상 '차출령'?
서울시, 재난 긴급생활비 현장 접수에 3종 복지관 직원 50% 이상 '차출령'?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4.0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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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서울시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 현장 접수를 앞두고 서울시 3종 복지관에 직원의 50% 이상씩 ‘차출령’을 내렸다 입길에 올랐다.

서울시는 지난 8일 저녁 공문을 통해 복지관 직원 50~70%를 동주민센터로 파견해 현장근무 지원을 요청했다.
문제는 퇴근 시간 직전에 공문을 내려보내고, 다음날까지 보고하라고 한 것. 공문 발송 전, 협회 및 복지관 관장 등을 통해 양해를 구하는 과정이 있었으나, 다음날까지 직원 절반가량을 차출해달라는 요청에 실무자들은 난색을 표했다. 

서울시는 “재난 긴급생활비 신청을 위한 동주민센터 현장접수가 오는 16일(목)부터 예정돼 있어 접수기간 신청인원 과다로 인한 현장혼란 방지,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등으로 지원 인력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현재 동주민센터에서는 저소득층 한시 생활지원사업 등 현안사업으로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복지관 근무인력이 동주민센터 현장안내 및 상담 업무에 지원될 수 있도록 요청하니 재난긴급생활비 지원사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 부탁한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지난 8일 저녁 3종 복지관에 발송한 공문
서울시가 지난 8일 저녁 3종 복지관에 발송한 공문

이 지원인력은 이틀간의 교육을 받은 후 동주민센터에 투입돼 오는 13일부터 24일까지 열흘간 직접 상담, 접수, 카드발급 업무 등을 수행한다. 서울시는 공문 하달 전, 협회와 복지관 관장 등에게 카카오톡 등으로 상황 설명을 한 후 협회를 통해 인원취합을 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했고, 취약계층 대상 전화 안부 등 이미 구에서 의뢰받은 사업을 하지 않는 대부분 기관은 적극 참여를 약속했으나 막상 직원 절반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는 요구에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는 한 관장은 “처음 상황을 공유받았을때만 하더라도 코로나19로 겪는 어려움을 십시일반 나눈다는 차원에서 시의 요청에 적극 참여하려고 했으나 이렇게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지 몰랐다.”라며 “서울시의 요청을 받아들이자면 사실상 복지관 기능을 중단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고, 요청을 따르자니 복지관 기능을 중단해야 하는데 그럴수도 없고,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복지관 휴관’이라고 하니 업무를 중단하고 있는 것 처럼 비쳐지는 듯 하다. 집합 교육 등 몇가지를 제외하면 계속 운영 중이건만 언제든 투입가능한 인력이라고 생각했는지, 사전 상의없이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니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3종 복지관 직원 50~70% 파견 요청…8일 저녁 공문 발송, 9일 취합 및 보고 ‘논란 부추겨’

3종 복지관에 각각 협조요청을 한 인원을 보면 ▲노인종합사회복지관 정원 50% 내외 ▲장애인복지관 근무인력 정원의 50~70% ▲복지관 사회복지 전담인력 50% 내외에 달해 A관장의 주장대로 사실상 복지관 고유업무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B 국장은 “퇴근 무렵 공문을 받고 다들 술렁이는 분위기였다. 우리 복지관은 20명 이상을 파견해야 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아 (이 사안에 대해) 구청에 문의했더니 오전만 하더라도 (이 내용을) 모르고 있더라. 그래서 자체적으로 운영지원, 기획팀을 제외한 50% 인력을 파견 보낼 계획을 수립하긴 했다.”라고 말했다. 

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C 과장 역시 “관ㆍ부장은 사전에 인지한 사안일지 모르지만, 대부분 직원은 퇴근 직전 공문을 보고 알게됐다.”라며 “파견 근무를 나가더라도 하던 일은 누군가 해야 하는데, 이 업무조정을 하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건만 다음날까지 취합해 보고하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매번 이런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다같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만큼 사전에 논의했더라면 자발적으로도 나섰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연출되고 나니 마치 우리들이 일하기 싫어 회피하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사회복지 노조 “우리를 민간위탁 노동자로 인식하지 말고 우리의 노동 신뢰, 존중하는 자세 우선돼야”

서울시의 조치가 알려지자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는 9일 성명서를 내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사회복지노조는 “서울시가 재난긴급생활비 지원 업무의 인력 부족을 이유로 3종 복지관에 인력 지원을 요청한 것이라고 했으나, '정원 50% 이상의 명단 제출하라'는 구체적인 내용과 양식까지 첨부한 것은 사실상 강제 동원을 지시한 것.”이라며 “민간위탁시설로 서울시의 지원과 관리감독을 받는 사회복지시설의 입장에서는 더욱 강요와 강제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사회복지 이용시설은 정부와 지자체의 권고에 따라 휴관을 진행하고 있지만 일손을 놓은 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재난에 취약한 이용자의 생존이 위협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서울시 또한 휴관조치만이 아니라 대책을 마련해 취약계층 복지서비스 공백을 막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직접 추진하고 있는 재난 긴급생활비만을 위해 사회복지 노동자를 동원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서울시는 사회복지노동자가 시설에서 제공하는 사회서비스를 부수적이며 중단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3종 복지관협회에게도 날을 세웠다.
사회복지노조는 “협회가 관장 등 관리자 입장에서 서서 노동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은 서울시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며  “협회나 시설장이 평소 '노동자들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동원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의 지시와 강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재난 상황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노력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며, 불평등한 재난 속에서 누군가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며 “수십 가지의 사회보장과 공공부조의 서비스를 담당해야 하는 사회복지공무원의 과중한 업무와 노동조건도 모르지 않으며, 충분히 연대하고 함께 할 수 있다. 다만 우리의 노동이 하찮고, 우리의 존재가 민간위탁 노동자만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노동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종 복지관협회, 서울시에 개선 요청…서울시, 9일 공문 통해 기관별 여건 고려, 지자체와 상의해 인력규모 확정, 배치로 변경 지시 

복지관과 사회복지노조의 직격탄을 맞은 3종 복지관협회 역시 서울시에 개선을 요청했다.
이들 협회는 “긴급한 상황에 따른 복지관 업무협력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지만 세부 방안이나 준비과정에 대한 협의 없이 인력 50%를 촉박한 기간 내 명단부터 제출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기관별 업무 상황 및 인력 여건을 고려해 ‘신청제’로 진행했다면 상황의 시급성, 인력지원 필요성에 공감하는 복지관들이 기꺼이 협력해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민관협력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현장의 오해와 불신만 커졌다.”고 서울시의 조치에 반발했다. 

이들 협회는 △기관별 지원인력을 강제하지 말 것 △복지관 여건에 따른 협력 요청으로 재안내할 것 등을 서울시에 요청했으며, △명단 제출과 취합은 서울시가 아닌 자치구에 제출 △인력배치는 자치구와 관내 복지관들 간 협의통해 결정 등을 건의했다. 또 △파견한 복지관 인력은 담당 권역 내 동주민센터 업무로 한정할 것도 요청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9일 다시 공문을 내려보내고 “당초 복지관 지원 인력은 서울시에서 수합해 자치구에 배치하도록 했으나, 기관별 업무상황 및 인력여건을 감안해 각 자치구와 관할 복지관 간 협의하에 인력규모를 확정, 배치하도록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복지관 지원인력은 당초 협회 제출에서 자치구로 9일까지 제출한 뒤 구별 여건에 맞게 조정해 운영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