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장애인노숙인 시설 문제, 덮는게 능사 아니다
서귀포 장애인노숙인 시설 문제, 덮는게 능사 아니다
  • 전진호 기자
  • 승인 2019.04.24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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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일이다.

김포의 한 시설에서 발생한 거주인 사망사건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외딴 산속에 위치한 작은 시설에는 시설장 구속 이후 어디로 가야할지 난감해하는 이들 몇이 남아있었고, 중증의 장애가 있는 시설장 아들이 방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선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족처럼 대하며 지내왔는데 이제와 뒷통수를 친다’고 소리 질렀으나 다른 가족이 자신을 언제 데려갈지, 그들처럼 이곳에 버려질지 두려워하고 있었다.

시설장이 살던 건물 위에는 ‘감금방’이 있었다. 0.5평 남짓한 공간은 빛들어오는 창문 하나 없었고, 벽에 낀 때 사이로 알아보기 힘든 뭔가가 잔뜩 써 있었다. 말 안듣는 이를 개줄에 묶어 이곳에 감금한 후 정신과 약물을 먹여 ‘길들이기’를 하다 사망하고, 시체를 유기했다는 기억이 떠올라 섬뜩해졌다.

약물 문제가 드러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통에는 여전히 몰래 폐기한 정신병 약들이 수북했고, 거주인들의 방에는 밖에서 통제할 수 있는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

거주인 6명에게 장시간 정신병 치료약을 먹여 숨지게 하고, 여성 거주인 3명을 성폭행하는 등 8명이 사망에 이르게 한 이 사건은 탈시설 운동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사실상 ‘사육’을 해온 행위를 어떻게 생각해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이틀에 걸쳐 KBS제주가 보도한 시설 내 인권침해 사실을 보며 13년 전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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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주에 따르면 서귀포시립 노숙인 재활시설의 시설장을 불법 감금 등의 학대 혐의로 입건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조사 결과 이 시설은 1998년 개소이래 지금까지 20여년간 잠금장치를 통해 거주인을 통제해온 사실이 드러났으며, 1천여 만원에 달하는 시 보조금도 횡령해왔으나 서귀포시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장애인과 노숙인, 알코올중독자 등 61명이 거주하고 있는 이 시설은 예전부터 악명높았다.

지난 2012년에는 사망 사고와 성추행 사건이 벌어졌으나 유야무야 넘어갔으며, 지난해 10월 서귀포시 행정사무감사에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고현수, 윤충광 도의원은 ‘이 시설에서 감금과 강제노역, 학대 의혹 등이 있으므로 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형식적인 조사에 그치고 말았다. 학대 의혹이 있을 경우 거주인들을 모두 분리조치 시킨 후 개별 인터뷰를 진행해야한다는 요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리감독의 1차 책임이 있는 서귀포시는 직영으로 운영하려는 의지나 탈시설을 목표로 한 연차별 계획같은 의지없이 민간단체에 책임을 떠넘기듯한 태도를 취했다. 아무도 재위탁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제를 일으킨 이 법인에 또 다시 위탁을 맡긴 것. 이밖에 거주인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종교강요 행위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서귀포시와 제주도는 사실상 손 놓고 있었다.

연간 8억여 원의 나랏돈을 투입하는 시설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해왔고, 지역 사회에서도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곳임에도 뚜렷한 해결책없이 여태까지 흘러온 것은 서귀포시와 제주도의 ‘눈치 보기’가 아니라면 ‘무관심’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이와중에 원희룡 지사는 지난 23일 열린 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 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보고회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좋은 복지시설이 아닌 살던 곳에서 살 수 있도록 행정시가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니. 커뮤니티 케어 서비스를 하겠다는 의지표명이 헛구호로 밖에 안들린다. 

13년 전 끔찍한 일이 벌어진 강화도 시설도 분명 전조가 있었다.
하지만 지역 유지라는 이유로, 좋은 일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크고 작은 문제가 드러나도 대충 눈감아준 대가는 참혹했다.

적당히 덮어주는 게 능사가 아니다.
더 큰 비극을 막기위해서라도 제대로 조사하고, 처벌하고, 정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