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독서 후기(後記)
‘서양철학사’ 독서 후기(後記)
  •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0.05.2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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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3페이지에 이르는 ‘서양철학사’를 어렵게 읽었다.
충남대학교에 재직 중인 양혜림 교수께서 쓴 책인데, 꼬박 3주에 걸쳐서 읽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처음에는 프랭크 틸리 교수의 서양철학사를 추천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이 너무 두껍고, 읽다보니 내용도 알쏭달쏭해서 좀처럼 읽혀지지가 않았다. 그러던 터에 대전신학대학의 임채광 교수가 쓴 글을 보고 양혜림 교수의 책으로 바꿔서 읽기 시작했다.

책을 받아서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부터 일단 기분이 좋았다. 활자도 크고, 옆에서 직접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그 어려운 이야기들을 찬찬히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철학책들의 서술방식이 쉬운 주제마저 어렵고 복잡하게 설명하는 게 태반인데, 이 책은 서양철학의 흐름을 따복따복 짚어가면서 지루하지 않게 설명해 주었다. 그것도 존댓말에다가 설명을 얹혀 놓으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기까지 했다.

물론 책의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다. 방대한 양의 책을 어찌 한 번의 독서로 꿰뚫을 수 있겠는가. 그렇더라도 ‘실재’와 ‘신(神’) 그리고 ‘인간’과 ‘삶’에 대한 장대한 탐구의 흐름은 ‘쬐끔’ 이해할 수 있었다.

우선, 그 옛날에 ‘대화’를 통해서 지혜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나 대부분의 명제들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定義)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하면서 이들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했다. 염세주의자로만 알고 있었던 쇼펜하우어가 활기와 건강, 평온과 자산을 행복의 조건으로 인식한 것은 다소 특이했다.

빌헬름 딜타이가 ‘개별적인 것은 전체적인 것 속에서 이해되고, 전체적인 것은 개별적인 것으로 이해된다’고 세상의 이치를 설파했다는 지적과 악셀 호네트가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사랑이라는 인정을 경험하면서 자신감이라는 긍정적인 자기의식을 형성한다’고 말한 내용은 크게 공감되는 대목이었다.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특히 중세의 암흑기에도 인간의 사유가 멈추지 않았다는 점과 섣부른 판단을 보류하라는 에드먼트 후설의 조언 그리고 틀에 박힌 생각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바깥에 존재하는 진정한 정치’를 발견하려고 했다는 점은 큰 울림으로 가슴에 담겼다. 고명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한 번 더 만난 것도 감사했다.

책을 덮으면서 묵혀두었던 과제 하나를 풀어낸 것 같은 후련함을 느꼈다. 대학원 시절, 법철학 시간의 전율도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야말로 ‘가치 있는 생존의 유일한 도구’임을 다시 일깨우는 감사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