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법을 만든다는 것,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법 통과
국회에서 법을 만든다는 것,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법 통과
  • 세밧사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3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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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밧사가 돌아본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2)

지난 52020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진행되었다.

몇몇 언론에서는 국회가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며 이를 신속하게 보도하기도 했다. 저마다 일하는 국회를 선포하며 시작했던 20대 국회의 최후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을까. 520일 하루 동안 있었던 국회의 모습을 돌아보자.

사실 한국 국회는 정말 많은 법을 만든다.
20
대 국회도 일 안하는 국회로 평가받았지만 사상 최초로 법안 발의 건수는 2만 건을 넘겼다. 청와대도 역대 최고로 많은 시행령을 만들어 정치를 하고 있다. ‘입법 패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 무조건 많이 만들면 좋을까

그렇다면 법을 많이 만들고 많이 통과 시키는 국회가 좋은 국회일까? 그렇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법을 쉽게 바꾸는 습관은 나쁜 것이며, 법을 바꿔서 별로 실익이 없다면 입법자와 통치자의 약간의 과오쯤은 내버려두는 것이 분명 더 바람직하다. () 법은 습관 외에는 사람을 복종시킬 다른 힘이 없는데, 습관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의 법을 새 법으로 바꾸면 법의 힘이 약해진다.”

독일의 경우에 연평균 발의 법안 수가 200여 개이고, 이중 처리되는 법안은 130개 정도 된다. 반면 한국은 연평균 4,400여 개가 발의되고 이중 1,800여 개 정도가 처리된다.

발의되는 법안 수와 처리되는 법안 수가 많다고 하여 좋은 국회, 좋은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한 법을 자주 바꾸고 만드는 행위들은 오히려 관료주의를 팽배하게 한다. 때문에 법안을 만들고 시행하는 일에는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한국 국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 편이다. 단순히 건수를 늘리기 위한 법안들이 우후죽순으로 발의되는 국회의 모습을 시민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사실에도,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 중에 우리가 계속 기억하고 지켜볼 법이 있다. 바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다.

과거사법, 어떻게 통과 되었나

과거사법은 19대 국회 발의를 시작으로 법안 통과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7건의 법안을 가지고 행정안전위원회 대안으로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되었다. 드디어 927일 동안 과거사법 통과를 위해 국회 앞 농성을 벌여온 형제복지원 피해자들도 귀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사법의 대상은 19458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기까지이며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한다. 즉 형제복지원 사건뿐만 아니라 6.25 전쟁 시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학살사건과 권위주의 정권 시 부당한 공권력으로 조작 혐의가 있었던 사건 등도 그 대상이 된다.

이번에 개정된 법안을 보면 과거사위원회 조사기간은 3년으로 정하고 1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진실규명 신청기간은 개정법의 시행일부터 2년이며, 조사 활동 수행과정에서 행정안전부, 대법원 등 관계기관에 자료 제출 요구가 가능하고 청문회도 할 수 있다.

무엇이 변화될 수 있을까

결국 시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법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법은 실익이 있어야 한다. 먼저 과거사법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명예회복이 가능하게 할 것이고 인권침해 사건들을 재조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또한 시간만 흘렀지 여전히 신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보상, 지원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다만 여전히 배상과 관련된 부분은 포함되지 않아 우려점도 남아있다. 그렇기에 이 법을 통해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해소되고 오랜 시간동안 안고 살았던 고통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인지 함께 지켜보아야 한다.

20대 국회 발의 법안 중 건수 늘리기를 위한 법안은 15%를 차지했다. 그 중에서도 한자, 일본어 표현을 한국어로 바꾸는 등의 용어 순화 유형이 가장 많다. 이런 상황과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 소관 상임위, 법안소위, 법사위 체계 자구 심사, 본회의를 거쳐야 하는 수많은 체계가 맞물려 중요하고 쟁점이 있는 법안들은 계속 밀린다. 그렇게 시민들이 수년째 요구하고 호소하는 법안들은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도 종부세법 개정안, 문화계 블랙리스트예술계 성폭력 사태 재발을 방지하는 예술인권리보장법 등이 결국 처리되지 못했다.

이제 21대 국회가 열린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국회가 잘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63%나 된다. 이중 유권자가 가장 당부하고 싶어 하는 것은 서로 싸우지 말고 화합/협치(16%)’이다.

법안처리율만 두고 최악의 국회라고 평가하는 것도 타당하진 않지만, 수천 수 만개의 법안만 만들어 놓고 합의와 설득의 정치가 없는 국회의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통해 신뢰와 지지를 받는 21대 국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