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는 전문가 이전에 노동자다
사회복지사는 전문가 이전에 노동자다
  • 사회복지노동조합 기자
  • 승인 2019.05.1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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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에 생각하는 사회복지현장의 노동조합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모든 달력에 표기된 법률상의 공식명칭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명칭은 노동절이다. 한국에만 있는 기념일도 아니다. 바로 전 세계 노동자가 함께하는 명절인 세계노동절이다. 그렇다면 왜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 날로 불리고 있을까? 또 언제부터 노동절이 세계적인 기념일이 되었을까?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환경, 생존이 위협받는 낮은 임금을 받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8시간 노동시간을 외치며 공장의 기계를 멈춘 날이 있었다. 오늘의 한국 이야기가 아니다. 130여 년 전인 1886년 5월 1일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날 미국 정부는 무력진압으로 노동자들을 살해했고, 이를 기리기 위한 세계노동절이 1890년 5월 1일 시작되었다.

한국의 노동절 역사도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일제 치하에 있던 1923년 2,000여명의 노동자가 모인 조선노동연맹회의 노동절 기념 시위가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반공을 국시로 했던 이승만 정권은 어용노조였던 대한노총 결성일로 노동절을 바꿨고, 공식적인 제1회 노동절 행사는 1959년 3월 10일에 진행되었다. 이후 박정희는 명칭마저 근로자의 날로 바꿔 버렸다.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으로 1994년에 다시 찾은 5월 1일.

세계 노동자들과 같은 날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노동자가 아닌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근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권에 의해 철저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공산주의, 폭력집단으로 덧씌워진 결과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노동조합은 일종의 금기어에 가까웠다.

노동자가 연상시키는 단어를 묻는 질문에 ‘범죄자, 거지, 불쌍한 사람’ 등의 대답을 한 한국 학생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지닌 일반적인 정서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중등 정규교육과정에 노동조합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의 원칙과 실제가 들어있는 국가와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벌어진다.

전 세계 노동자의 명절인 5월1일! 메이데이
전 세계 노동자의 명절인 5월1일! 메이데이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사회복지 현장으로 들어가면 더욱 커진다.

“사회복지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전문가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을수록 복지 당사자의 권리는 침해된다.”, “사회복지사가 노동조합을 한다는 건 이기적인 생각이다.”
주로 이런 내용의 이야기가 현장에서 여전히 오고 간다.

사회복지사는 자신의 노동을 대가로 스스로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며 살아가는 노동자다.

어떤 기관이든 사회복지사의 노동 없이 운영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지역주민, 노인, 장애인, 아동을 지원하는 모든 사회복지 실천이 사회복지노동자의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노동자 또한 노동에 대한 대가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사회복지현장에도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법적 관계가 존재한다.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고 정해진 임금을 받는 것이 그렇다.

또 사회복지노동자의 노동의 대가는 관련 법률,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지침 혹은 취업규칙에 따라 정해진다. 즉, 사회복지사 또는 사회복지 종사자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논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절대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사회복지현장은 전문가라는 단어를 노동자와 대치시키며, 노동기본권 그리고 인권을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노동조합을 만들면 곧 시설이 망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사회복지서비스라는 공공재를 생산하는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가 없다. 노동조합이라는 단어는 금기어처럼 취급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에 대해 유범상(2018)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노동자의 대칭어는 자본가이고, 전문가의 대칭어는 아마추어입니다. 사회복지사는 노동자입니다. 그것도 한국에서는 감정노동까지 해야 하는 저임금 장기간 노동자입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일까요, 아마추어일까요? 당연히 전문가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누가 왜 사회복지사를 노동자가 아닌 것으로 만들었는가? 누가 사회복지를 자선과 시혜, 봉사의 영역에 넣고 정치과 무관한 것처럼 이야기 해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끊이지 않는 비리, 인권침해, 시설의 사유화와 비민주적인 운영 등 지금도 계속되는 사회복지현장의 문제는 노동의 권리를 부정하는 입장과는 전혀 무관한 것일까?

● 센터는 노조대표 1인을 포함한 인사위원회를 구성하며 직원 및 임시·계약 직원의 채용·승진·승급·전직·전보·배치전환·포상·징계·해고 및 각종 인사관리규정의 신설·개폐를 심의 결정한다.

● 복지관은 위탁변경을 포함한 관장과 부장 등 최고관리자의 신규 임용 시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는다.

● 복지회는 노동조합에서 추천하는 1인을 법인의 정관과 임면 규정을 준용하여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사로 임명하여야 한다.

● 사용자는 1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노력하며, 1년 미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일방적으로 재계약을 거부할 수 없다. 이 경우 정당한 사유의 유무에 대해서는 조합과 합의하여야 한다.

● 센터는 여성조합원에게 월 1일의 유급보건휴가를 준다. 임신 중인 여성 조합원에 대해서는 정기검진 휴가로 대체(임신 32주 이상 여성조합원에게는 월 2회)한다.

위 조항들은 사회복지 노동조합 산하 사회복지시설에서 단체협약을 통해 체결한 내용 중 일부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설의 민주적 운영과 수평적인 조직문화 형성뿐만 아니라 비정규직과 여성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흔히 사회복지 기관의 3주체는 이용자, 노동자, 지역사회로 정의하는데, 그중 노동자에게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는’ 역할만이 아니라 ‘민주적인 소통과 적극적인 실천 주체로서의’ 역할을 규정한 것은 매우 유의미한 성과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물론 사회복지시설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 또한 노동자의 힘과 지혜를 활용하여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예를 살펴보자.
한 국가의 노동조합 조직률과 상대적 빈곤율은 반비례한다. 즉, 북유럽과 같이 노조조직률이 높은 국가는 상대적 빈곤율이 낮고 우리나라처럼 노조조직률이 낮은 나라는 상대적 빈곤율 높다. 복지국가의 형성 단계를 설명할 때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가 바로 노동조합이다.

노동자들의 조직적 요구와 정치협상에 따른 산물로서 복지의 증대가 이뤄졌다. 불평등한 구조에 따른 빈곤과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다시 말해 한 국가의 복지가 증진되는 과정은 잘못된 구조를 바꾸려는 힘에서 비롯되었다. 자본주의 발전에 가장 큰 축을 담당하면서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단결해 문제 제기하는 과정에서 복지국가가 출발한 것이다.

복지국가를 표방하는 한국 사회복지계는 어떠한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외면하고, 때로는 배제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권을 논하는 것이 주민과 이용자의 권리를 뺏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는 엄청난 무지의 결과일 뿐이다.

인권은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성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서로 간의 직접 영향을 미치는 상호의존성을 가지고 있다. 인권과 인권은 본래 충돌하지도 않는다. 충돌된다는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쪽은 인권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인권의 충돌을 주장하는 것일까? 과연 이익을 보는 주체는 누구일까? 이런 의문이나 확인 없이 자신의 기본적인 인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옹호하지 못하는 사회복지노동자가 다른 사람의 대변자, 옹호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19년 세계노동절대회에 참여한 사회복지노동조합
2019년 세계노동절대회에 참여한 사회복지노동조합

영국의 사회복지사협회는 홈페이지에 사회복지 노동조합을 상세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협회의 회원이면서 노동조합의 조합원인 경우는 회비를 감면해준다. 호주는 사회복지사협회와 노동조합이 하나로 출발했으나 최근 임금 인상 운동과 그 성과를 바탕으로 협회와 조합이 분리되었고, 노동조합이 좀 더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사회복지사협회도 사회복지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서 상당 부분 기여했다. 이에 비해 노동조합은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이유 등으로 조직 규모가 매우 작다. 영국과 호주의 사례에서 보듯 노동조합과 협회에서 추가하는 가치는 유사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협회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을 노동조합이 할 수 있기도 하고, 함께 연대하여 풀어갈 일이 생길 때도 있다. 때로는 선의의 경쟁으로, 때로는 협력하는 동반자로서 가치와 지향을 가깝게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국사회복지사협회 홈페이지. 상단에 보기좋게 노동조합 메뉴가 있다.
영국사회복지사협회 홈페이지. 상단에 보기좋게 노동조합 메뉴가 있다.

어쩌면 우리를 노동권과는 무관하게 만들어 공공재를 값싸게 생산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국가보다,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헌신을 강요하는 사업 주체보다 더 큰 장애물은 스스로를 헌신과 희생의 틀 안에 넣어버리고 틀 밖으로 나오기 두려워하는 나 자신일 수 있다.

‘우리가 용기 없는 서로에게 용기가 될 때, 각자의 삶을 비집고 나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한 조합원이 가입 당시 적은 포부 한마디이다. 사회복지 노동자의 조직된 용기는 사회복지 현장을 바꿀 수 있는 날카로운 무기이자, 서로를 격려하는 부드러운 손길이 될 것이다.

사회복지 노동자들이여, 우리 용기를 내자.

(해당 기사는 한국사회복지사협회 기관지 소셜워커 제19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