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위기의 사회복지관…전문성 발휘할 수 있는 형태 체질개선 해야
코로나19 시대, 위기의 사회복지관…전문성 발휘할 수 있는 형태 체질개선 해야
  • 유영덕 (목동종합사회복지관 관장)
  • 승인 2020.09.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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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고 삶이 피폐해지고 우울한 날들이 기약 없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해고와 고용불안의 행렬이 군화발을 신고 저벅저벅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이스타나 항공이 지난 7일 605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버스제조사인 대우버스는 전체 직원 447명 중 84% 수준인 377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또한 아시아나 항공의 2차 하청업체로 기내식을 운송 탑재하는 에어케터링서비스는 지난달 말 직원들에게 폐업을 통보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관은 해고와 고용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물론 우리 사회복지사들은 사회복지 서비스가 물리적 공간이 아닌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에 기반한 인적자원과 역량에 의해 제공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이나 일반 시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심지어 공무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코로나로 인해 복지관들이 장기간 위기대응 운영을 하게 되면서(정부에서는 휴관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나는 그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요즘 휴관 중이니 할 일이 없어서 한가하겠다", "복지관에 주민들이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실제로 물리적 공간인 복지관 건물에 직원들 말고는 주민들이 보이지 않으니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하다. 그동안 주민들에게 복지관이라는 의미는 복지관 건물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급식서비스, 교육문화 서비스, 집단활동, 개별상담, 치료교실 운영 등을 제공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왔던 게 사실이니까. 

반면 우리가 지역 내 복지 사각지대에 속해 있거나 만성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를 지닌 클라이언트들에게 제공하는 사례관리 서비스, 지역문제를 주민들이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주민조직화 사업, 사회적으로 고립된 청년들을 돕기 위한 고립청년 밀착지원사업, 한부모 가족의 역량강화를 위한 한부모 가족 지원사업, 지역 내 유관기관과의 다양한 협력 및 네트워크 사업 등 일일이 열거하기 조차 어려운 사회복지사들의 전문성과 역량을 활용한 사업들은 시민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벌써부터 코로나가 지속된다면 복지관이 꼭 필요한 거냐? 왜 존재해야 하는 거냐? 거기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라는 말들이 회자되기 시작한다. 심지어 모 지차체 의원은 사회복지관 및 노인복지관 등의 통폐합을 거론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사회복지기관의 존재이유와 정체성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금의 상황을 시민들의 몰이해로 규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상황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사회복지사들의 책임이다. 우리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했기에 그 책임은 오롯이 우리에게 있다. 

정말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된다면 그래서 지금처럼 복지관에 주민들이 모일 수 없다면 피아노를 배우고, 에어로빅을 배우고, 수채화를 배우고 동네 엄마들이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북카페에 모여 하하호호 수다를 떨고, 독서 모임을 하고, 함께 모여 문화활동을 하는 모습을 더 이상 목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복지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왜 필요하지?라는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고 이는 당연히 복지관의 통폐합과 구조조정 논의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유영덕 목동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유영덕 목동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지금부터라도 변해야 한다.
물리적 공간 위주의 서비스에서 벗어나 사회복지의 본질인 사람을 활용하여 사람을 돕는 원조 전문직으로서의 역할을 더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사회복지의 근본을 다시 성찰하고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복지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통폐합이 되더라도 주민들의 관계성을 살리고 그 관계성으로 당사자들과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원조 전문가인 사회복지사들. 즉 사람이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