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 문닫으니 선물 주는 방판장 가는 거지" 노인들의 항변
"복지관 문닫으니 선물 주는 방판장 가는 거지" 노인들의 항변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0.09.1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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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인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한 어르신이 무료급식으로 나눠준 주먹밥 등을 들고 가다 멈춰서서 한숨 돌리고 있다. 2020.5.8/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강수련 기자,김유승 기자 = #서울 노량진에 사는 독거노인 김전학씨(76·가명)는 15일 이른 아침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으로 길을 나섰다. 원래 그는 집 근처 노인복지관에서 동년배들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막막한 외로움을 달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친구들이 모이는 복지관은 문을 굳게 닫았다. 오랜만에 탑골공원에 나온 김씨는 이곳에서 주먹밥 급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종묘공원으로 이동해 친구들과 바둑을 둘 생각이다.

왜 이곳으로 나왔냐고 물어보자 그는 "혼자 있으면 적적하고 그러니까 만나러 오는 거지"라고 답했다. 그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판장(방문판매) 이야기도 알려줬다. "선물 받으려면 방판 가기도 할 텐데…저기 골목 들어가면 노인들 갈데 없으니까 그런데서 모이고 그래"

방판업체와 노인요양시설 등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동네 복지시설이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으로 문을 닫자 노인들이 방판업체(일명 떴다방)나 공원 등 다른 커뮤니티를 찾고 있어 이에 걸맞은 근본적인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정부에서 운영하는 노인종합복지관(노인복지관)의 경우 문을 닫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노인들의 프로그램 이용을 막은 것이다. 급식 또한 개별로 포장해서 노인들에게 나눠주고 안부전화를 하는 정도다.

서울의 한 노인복지관 관계자는 "제가 코로나 터지고 나서 입사했는데 듣기로는 코로나 터지기 전에는 하루에 1000명 정도는 왔다갔다고 들었다"며 "지금은 정말 급하게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을 때만 들리게 하고 대개 출입을 막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로당도 코로나 때문에 다 문을 닫았다"며 "주기적으로 어르신들에게 안부전화를 드리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답답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인들의 공식 커뮤니티인 경로당과 노인복지관 등 복지시설이 문을 닫자 자체적으로 모이면서도 음식을 나눠먹을 수 있는 방판업체 설명회나 공원 등지로 몰리는 셈이다.

문제는 방판업체 설명회 자체가 불법인 경우가 많다보니 깜깜이 전염이 이뤄진다는 점이고 면역력이 떨어진 노인들로서는 코로나19에 감염된다면 중증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원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이 많아 집단 감염이 우려된다.

 

 

 

 

 

14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어르신들이 무료급식을 위해 줄지어 서 있다. 2020.5.14/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실제 지난 6월 서울 관악구 소재 다단계 방문판매업체인 '리치웨이'에서, 지난 9월에는 대전의 건강식품 설명회와 익산의 방문판매업 관련 모임에서 확진자들이 대거 발생했다.

고령자는 대개 면역력이 떨어지고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가 많아 코로나19에 걸렸을 경우 중증 질환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19로 인한 중증질환 위험이 가장 큰 연령대는 85세 이상"이라며 "미국에서 보고된 코로나19 관련 사망자 10명 중 8명은 65세 이상 성인"이라고 밝혔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노인들을 위한 지역 커뮤니티를 마련하는 등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금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곳은 젊은 사람들 많이 가는 시설이라기보다도 노인들이 많이 가는 병원과 요양시설, 방문판매업소같은 곳"이라며 "노인들이 방문판매 업소 등으로 가는 건 코로나19이후 노인들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모두 폐쇄됐기 때문"이라고도 지적했다.

기 교수는 결국 노인들이 노인정 등 갈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가 없어졌기 때문에 결국 방문판매 업소 등으로 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 교수는 "방역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며 "노인들을 감염 위협에서 어떻게 지켜내는지 고민을 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공식적으로 허가를 하는 설명회가 아닌데 거기서 식사를 무료로 나눠주고 기념품도 주기 때문에 노인들이라던지 취약계층들이 한꺼번에 감염되는 것"이라며 "만약 가게 되더라도 KF94마스크를 꼭 끼고 음식을 절대 먹지 않는 식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 교수는 또 "현재 폐쇄된 노인정을 시간제로 인원제한을 두고 받아서 열고 식사를 함께 하지 말고 마스크 착용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등의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며 "그렇게라도 (공식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