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장애를 말하다
드라마, 장애를 말하다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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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가족 중에 장애인이 한 명도 없을 수 있나?”

가족 드라마의 대모 김수현 작가에게 행해졌던 날카로운 비판이자 <부모님 전상서>의 자폐아 박준이란 인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다. 집안 내 장애인은 숨겨야 한다는 그릇된 문화에 균열을 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후 장애인은 간간이 드라마에 등장하며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데 일부 장애인들은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장애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뇌병변 장애인 신 씨(여·47)는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장애인들은 대부분 경증이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며 “나 같은 뇌병변 중증 장애인, 특히 선천적 장애인들의 비중이 너무 없다”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실제 루게릭병 환우와 비장애인의 사랑을 그린 <내 사랑 내 곁에>나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제외하면 신 씨가 정의하는 신체적·선천적 중증 장애인을 다룬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여기엔 나름 이유가 있다. 과거 장애인 시사 프로그램의 작가였던 이 씨는 “직업 특성상 장애인을 많이 접하지만, 비장애인 입장에서 아무리 배려해도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단어 하나 편집 한 부분을 보고 비판하는 장애인이나 단체들이 많다는 거다. 일선 PD들의 고충은 더 하다.

역시 장애인 프로그램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노 씨는 “장면을 위해 연출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라며 “그럴 때 장애를 어떤 식으로 묘사할지가 늘 숙제였다”라고 회상했다. 장애 문제를 주로 다루는, 그들의 삶의 한 부분만을 담는, 제작진에게도 장애를 다루는 게 어려울진대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작품에서 장애인을 등장시키는 게 꺼려지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시대적 배경도 한몫한다. 대학원에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박 씨는 “최근 우울증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늘면서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도 치유를 중심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다”라며 “시대를 살아가는 주 시청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요소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면서 묘사되는 장애인의 유형이 변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휠체어를 타는 중증 장애인보다 상대적으로 이슈가 많은 정신장애나 발달장애, 시각장애가 작품에서 더 많이 소비되는 이유다.

 

최근엔 중도장애가 심심찮게 다뤄지는 추세다. 올 초 방영된 <스토브리그>가 대표적이다. 야구를 하다 장애인이 된 백영수는 드림즈라는 야구단에 전력분석원이 되어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그의 형인 백승수 단장은 그의 취업을 반대하지만, 운영팀 이세영 팀장은 “차이를 갖고 차별하지 않는다”라며 그의 실력에 높은 점수를 준다. 백영수의 직장 생활은 모든 장애인의 로망이다.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이 씨는 “스토브리그처럼 드라마 속엔 대부분 후천적 장애인인데,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TV에 많이 나와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라고 했다. 드라마 속 장애인은 현실에 사는 비장애인들의 행동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과거 대학 내 장애 학생 휴게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했던 후배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드라마 속 장애인을 보고 현실에 사는 장애인을 돕고 싶어서였다”라고 말했다. 대학원생 박 씨 또한 “드라마에서 낭독 봉사를 처음 접하고, 약 반년간 시각장애인 대면 낭독 봉사를 했다”라고 전했다.

심지용(저널리즘학 전공 / 저널리스트)
심지용(저널리즘학 전공 / 저널리스트)

이처럼 드라마 등 미디어 콘텐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간극을 좁혀주는 통로다. 그러나 언론의 특성상 장애인을 뛰어나거나 불쌍한 혹은 용기를 주는 존재로 묘사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

이런 유혹에 빠지기 쉬운 제작자에게 <라이프>에서 예선우가 했던 대사를 전하고 싶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왜 내 삶이 누군가한테 용기를 줘야 하는데? 난 그냥 사는 거야!”

장애인은 누군가에게 위로나 용기를 주는 존재가 아니다. 제 삶을 사는 거다.

이제 드라마는 이걸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