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생명도 소중하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생명도 소중하다”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0.11.1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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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의한 정신장애인 당사자 사망사건에 대한 당사자 성명서

정신장애인도 동등한 인권을 가진 한 인간이고, 그의 생명도 동등하게 소중하다.

지난 11월 9일 참으로 가슴 아프고, 허망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60대 어머니가 조현병을 가지고 있었던 정신장애인인 자신의 딸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서도, 23년간 돌봄을 제공한 피고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측면을 고려해 살인 혐의로 기소된 A(65)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정신장애인에게도 이토록 허망하고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함께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자녀를 둔 가족과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이 성명을 작성하였다.

어떤 순간에도 사람의 생명은 고귀한 것이다. 이를 고의로 앗아간 사람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법의 엄격한 제재를 받아야 한다. 부모의 자녀 살해 역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자녀는 어떤 한 순간에도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기 책임 하에 자기 스스로 결정하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소중한 한 인간이다. 정신건강문제는 아동기 때의 학대, 왕따, 폭력피해, 실직 등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스트레스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마련이다. 

정신건강문제를 겪고 있는 자녀에게 필요한 부모의 지원은 자녀가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게 경청하는 것, 자녀가 자기 결정을 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게 격려하는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녀가 바뀌도록 하는 것은 돌봄이 아니라, 학대일 뿐이다.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자녀를 미숙한 방식으로 돌보면서 소진된 부모가 자기 비애를 견디지 못하고 자녀를 살해하는 것은 자녀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현상이다. 부모의 왜곡된 자기희생의식, 왜곡된 자녀 사랑에 대해 우리 모두 경종을 울려야 할 때이다.

비자의입원을 쉽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성명은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절망적 상황에 대한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이 사건을 대하면서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에서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고립과 죽음을 방치한 국가와 지자체에 대한 비판의 성명이 아니라, ‘강제입원을 쉽게 해 달라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놀랍고,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성명이다.

누구든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상황이 아니고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입원시켜 치료받게 해서는 안 된다. 강제입원을 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어떤 치료를 받는지, 왜 그 치료가 필요한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여야 하고 치료과정 역시 인권을 존중하는 치료여야 한다. 

이제까지의 치료가 인권은 무시되고,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급성기 당사자를 짐짝처럼 취급하면서 치료했기에 당사자들은 입원치료에 대한 트라우마가 너무나 크다. 더군다나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성명서에는 강제입원뿐만 아니라 강제적 약물복용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수많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습관적 강제입원뿐만 아니라 약물복용의 강요와 협박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입원’과 ‘약물’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우리의 주장은 ‘강제’가 아니라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왜 그렇게 강제적인 입원과 약물치료에 대해 반대하는지 단 한 번이라도 당사자의 입장과 관점에서 생각해주길 바란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선택지와 공간에 대해 이해심이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강제입원 조건의 완화는 또 다시 한 사람의 동등한 시민인 정신장애인의 인권 침해를 초래할 것이다.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할수록 당사자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해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과 대화하려는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만 입원도 치료도, 당사자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해, 타해의 현저한 위험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입원을 간청하는 것은 인권침해의 가해자 집단이나 하는 일이지,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로서는 도저히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의 성명은 정신장애인을 학대하는 성명일 뿐이다. 한 인간으로서 정신장애인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하는 마음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정신장애인을 더 이상 가족이 돌보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정신장애인은 자신을 이해해 주는 동료와 지역단체와 연계하여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대부분의 정신장애인은 학대, 유기, 방임, 폭력피해, 실직, 배제 등 우리 사회의 모순의 희생자이다. 사회의 희생자인 정신장애인의 돌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정신장애인의 돌봄은 사회가 맡아야 한다.

우리는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자해, 타해의 현저한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의 응급입원 이외에는 모든 강제입원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응급입원의 상황에서조차 정신장애인을 존엄한 한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입원한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지원할 수 있는 절차보조사업을 전면적으로 실시하여야 한다고.

이런 비극적 사건처럼 가족이 정신장애인을 살해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한다.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상호 연결될 수 있도록 동료지원가 활동을 지역서비스로 도입해야 한다. 또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로 조속히 퇴원하여 서로 연결되어 생활할 수 있도록 절차보조서비스를 전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이는 정신건강복지법에 규정된 복지서비스의 시행으로 실시하여야 한다. 2016년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정신장애인과 가족에게 제공해야 할 복지서비스가 법적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이에 국가는 "복지서비스를 개발"하고, "고용 및 직업재활 지원", "평생교육 지원", "문화·예술·여가·체육활동 지원", "지역사회 거주·치료·재활 등 통합 지원", "가족에 대한 정보제공과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주어졌다.

하지만 정신건강복지법이 통과된 지 5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현실에서 정신장애인과 가족은 이러한 복지서비스를 경험할 수 없다. 이는 국가가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고 계획, 예산, 공급방식도 고민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동료지원가 양성과정을 구축하여,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재활시설, 정신요양시설, 정신의료기관 등에 채용되어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1. 정신장애인 자기결정권 행사지원을 위한 권익옹호 서비스를 구축하라!

병원과 시설의 대안으로 정신장애인이 위기상황에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삶을 위한 위기쉼터 및 일상쉼터를 운영하라!

1. 국가와 지자체는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삶을 위한 주거서비스(지원주택, 자립생활주택 등)를 확충하라!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유지할 수 있는 고용 및 사회적 기회의 확대에 앞장서라!

정신장애인 응급상황 개입을 위한 인권기반 대응체계를 도입하라!

위의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정신장애인 자조단체, 자립생활센터(센터 소장 및 활동가를 정신장애인 당사자로 구성) 등과 같은 대안적 조직체계를 구축하라!

정신장애인 커뮤니티케어를 실현할 수 있는 정신장애인복지관(정신장애인종합지원센터)을 설치하라!

2020. 11. 17.

제1회 전국 정신장애인 당사자 컨퍼런스 공동의장단과 주최기관 공동의장단, (사)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마인드포스트 사회적협동조합, 수원마음사랑, 부산침묵의소리, 사회적협동조합 우리다움,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한울정신장애인권익옹호사업단, 청주정신건강센터, (사)한국정신건강전문요원협회

* 본 성명서/논평은 웰페어이슈의 편집 방향과 무관하며, 모든 책임은 성명서/논평을 작성한 정보 제공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