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배신’과 만나다
‘디지털의 배신’과 만나다
  •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20.11.3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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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주제의 책을 정말로 어렵게 읽었다. 디지털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다룬 책이다.

책의 전반적인 흐름은 그림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디지털 기기와 인간의 비극적 관계가 많이 언급되었다. 내용 중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이었다.

오히려 인간이 과학기술 자체에 예속되고 심지어는 과학기술의 산물인 플랫폼이 인간의 생활과 삶을 지배하는 현실을 개탄하기도 했다. 끝부분에 총론적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인간과 자연과 기술이 공존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책의 제목은 ‘디지털의 배신’이다.
목차는 호기심을 확 끌어당기는 내용들도 가득했다. 그런데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부터 후회와 원망이 치솟아 올랐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겠는데, 낯선 용어와 특이한 서술방식 그리고 난해한 사례 등이 책 읽는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책을 덮어버리자니 모든 직원들의 학습도서라서 그럴 수도 없고, 계속 읽자니 터덕거려서 며칠을 두고 마음고생이 많았다. 그러다가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을 일일이 찾아가면서 입을 앙다물고 읽기 시작했다. 눈이 서서히 열리고 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디지털 시대가 인간의 노동을 어떻게 통제하고 압박하는지, 첨단 신기술이 어떻게 반생명과 반인권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지, 화석연료와 관련이 없는 듯이 보이는 디지털 산업이 얼마나 자연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는지를 생경한 용어들과 함께 설명해 주었다. 특히 인간의 무제한적 성장추구와 발전욕망이 디지털 산업과 결합하면서 기술숭배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경고했다. 그 사례로 정보의 무차별적인 채집과 그것이 빅데이터로 가공되어 소위 인공지능으로 작동하면서 인간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과정이 다소 충격적으로 묘사되었다.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br>
 최주환 (대전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리터러시(literacy)’였다. 리터러시는 여러 가지 의미를 품고 있지만 대체로 ‘이해하는 능력이나 표현하는 능력’으로 사용된다. 디지털 산업의 광폭질주와 탈진실의 질서, 가짜의 범람과 인간소외의 가속화가 압도적으로 진행되는 이 시대를 바르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이 ‘리터러시 역량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같은 가짜’들의 공습으로 현실을 판단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음을 저자는 지적했다. ‘걸러내는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