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질문
세 가지 질문
  • 이혜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0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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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맞이하는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진 속 책은 레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을 존 무스가 개작(改作)한 그림책입니다. 주인공 니콜라이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위의 세 가지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으면 그 비밀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네요. 소년 니콜라이는 늙은 거북이 레오를 통해 그 답을 찾습니다.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란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거란다."

레오를 통해 알게 된 이 비밀을 2021년 계획을 세우는 우리에게도 적용해 보기를 제안합니다.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조직의 유연함 필요한 시기

작년에 세운 사업계획서, 올해 모두 수행하셨나요?

많은 복지기관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업무전환이 일어나는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지요.
대면활동, 비대면활동 등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용어들이 등장했고, 당사자분들이 복지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현장에서도 혼란과 고민이 많았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4차 산업혁명이 당장 오늘 이루어진 것처럼 SNS, 유튜브 활용 및 온라인 회의 등 새로운 플랫폼에 익숙해져야 했으며, 정부의 사회적거리두기 단계별 지침에 따라 우리 현장도 재난에 대응하는 각종 매뉴얼들이 쏟아졌습니다. 작년에 세운 사업계획서의 수많은 사업들은 정지되었습니다.

연간사업계획서, 올해도 준비하실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으로 계획서를 작성하는 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무기력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간사업계획서를 세우되 유연하게 변동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겠습니다.

1, 반기, 분기, 월별, 주간, 매일 등으로 사업단위를 쪼개고, 집중해야할 것을 선택하여 집중하며, 미리 세운 계획이 '지금'을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면 미련 없이 내려놓는 조직의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어제의 우선순위가 오늘 밀려날 수도 있음에 당황하지 않습니다. 지금 더 중요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매일이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있는 사람' 

사회복지사인 우리에게 함께 있는 사람은 당사자입니다. 복지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시기에 홀로 사시는 어르신,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 장애를 가진 분들 어떻게 지내셨을까요?

필자가 운영하는 노인주간보호센터에 독거어르신들이 계십니다. 코로나19의 공포가 한창이던 3~4, 마스크 구입은 어려웠고 이에 공적마스크 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또한 아동, 장애인, 독거어르신 등 사회적 약자가 있는 가정에 주민자치센터, 보건소 등에서 마스크 지원도 있었습니다. 센터의 한 독거어르신도 당시 공공기관에서 마스크 30여장을 지원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동네 이웃이 그 어르신의 마스크를 모두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이웃에게 전화를 했고, 돌려주시라 말씀 드렸습니다. 또한 이 어르신이 누군가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며, 그 누군가가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 드렸습니다. 이후 공공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독거 어르신께 지원되는 마스크가 있을 때 모두 제가 수령하여 센터에서 관리해 드렸습니다.

내년에도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 사회복지시설의 대면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못하는 시기가 있을 것입니다.
당사자는 우리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람' 입니다. 시설로 찾아오지 못하면 우리가 찾아가야 합니다. 그 방법이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개인이든 소규모 그룹이든 각 시설의 상황과 역량에 맞게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아울러 '나 자신' 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나와 있는 사람'은 '나'이기도 합니다.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에 그래도 최선을 다해 견디느라 애쓴 '나'입니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채송화(전미도)가 친구 이익준(조정석)에게 질문합니다. "익준아, 요즘 넌 널 위해 뭘 해주니?" 바쁘게 열심히 사는 의사 채송화는 캠핑이 유일한 낙입니다. 캠핑관련 물품을 살 때 정말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스스로를 위해 무엇을 해주고 계신가요?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 

좋은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섬세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스크 지원에서 끝나지 않고 마스크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살피는 것처럼 말이죠. 주말이 지나고 주간보호센터에 오시는 독거어르신들 중 몇몇 어르신의 일회용 마스크에 보풀이 생겼습니다. 집에서 마스크 손빨래를 하신 겁니다. 또는 음식물이 묻은 마스크를 그대로 하고 오시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마스크 위생 체크는 물론이고 새것으로 교체도 해드리고, 어떻게 관리하면 되는지 알려 드립니다. , 댁에 방문하여 마스크가 제대로 있는지, 어르신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 살펴보기도 합니다. 우리 센터에서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마스크 관리가 최고로 중요한 사업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단위가 큰 사업, 실적을 통해 우리의 존재 당위성을 입증해야 하는 사업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2021년에도 코로나와 함께 해야 하는 우리 현장이 그 무엇보다 섬세한 사업을 통해 한분 한분을 소중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늙은 거북이 레오는 세 가지 질문의 답을 하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합니다.

"그게 우리가 세상에 있는 이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