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된 코로나19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이 악한 것 때문일까. TV나 인터넷 기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가슴아픈 정인이 이야기를 한다.
코로나19가 시작되는 시기에 국회 아동관련 간담회에서 필자는 코로나19가 장기화 될수록 학대의 수치가 증가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사회의 약자들이 고통받고 핍박받는 일들이 더욱 빈번해 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동뿐만 아니라 노인, 여성, 장애인 등 우리사회의 취약하고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이들이 다양한 폭력으로 인해 몸과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을 것이며, 또 어딘가에서 눈물을 훔치며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절대 그런일들이 없었으면 바람으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꼭 불길한 일들은 잘 맞는 현실이....)
며칠동안 계속해서 뉴스도 보고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가 잘못했다', '누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라는 원색적인 비난과 투사의 대상을 찾기에 혈안이 된 듯한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또한 복지 현장을 전혀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에게도 '왜 거기는 잘못한거야?', '왜 복지사가 그런걸 몰라?'라며 사회복지 기관들과 실무자들의 잘못들을 알고 싶어하는 모습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필자가 이야기하는 잘못의 대상, 즉 부모의 기본적 양심과 도덕을 망각한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잘못한 대상이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느끼기엔 지금 사회와 언론은 우리 모두의 분노와 화가 풀리기 전까지 일벌백개(一罰百戒) 하고 누군가에게 투사의 대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모습이 더 큰 것 같이 보인다.
지금 우리사회는 "내가 너를 단죄한다"는 마음을 가지기 보다 우리 모두 주변에서 몸과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이들을 일상속에서 돌보지 못한 '죄인'임과 동시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임을 인정하고, 트라우마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다른 사람을 돌봄으로써 회복하는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복지 현장의 구조적 시스템을 안정화하는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마음과 마을 중심의 공동체에 대해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어떤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였으니 마을이지 않냐고 하지만 필자는 사람이 모였다고 마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을 즉 우리동네라고 이야기를 하려면 '마음을 잇는 마을'이어야 진정한 우리동네이지 않을까.
또 누군가는 "요즘 젊은 친구들은.....", 또 누군가는 "나이든 사람들은..."이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마음을 잇기 위한 노력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세대만을 탓할 필요도 없고 꼰대여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고만 이야기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된다.
누가 바라보느냐의 관점에 따라 그 또한 나이고, 나 또한 그이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우리들이 중요하게 생각해봐야할 것은 마음이 아픈 사람은 많은데 아픈 마음을 돌봐줄 사람이 주변에 없을 때 우리는 더욱 큰 상처에 아파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특정한 기관이나 특정한 실무자들만이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관심을 가지며 살펴봐야 할 사항이다.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모든게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정인이를 떠나보내고 모두 상처받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상처도 잘 아물도록 하고 사회의 상처도 잘 보살 필 수 있도록 우리사회의 차별받고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과 사회적 편견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돌보는 시작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시작이 힘들다면 지금 내 마음이 이야기하는 감정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부터 하나씩 해보길 희망해 본다. 시간만 흐른다고 치유되는것이 아니기에...
" 정인아! 그리고 또 다른 정인아! 평소에 관심있게 잘 살펴보지 못해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