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처지 돕는 '회복' 정신장애인…"동료들 '자립' 계기 되길"
같은 처지 돕는 '회복' 정신장애인…"동료들 '자립' 계기 되길"
  • 웰페어이슈(welfareissue)
  • 승인 2021.01.1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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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완씨가 '회복'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스1


(서울=뉴스1) 한유주 기자 = "내가 강연을 하고 동료상담을 하면서 가장 이득을 얻는 건 바로 나예요. 내 말을 듣고 보람을 찾고 회복이 되는 걸 보면 그 자체가 보람이고 행복이거든요."

지난 연말 서울 송파구 송파정신건강동료지원센터에서 열린 '동료상담' 스터디 마지막 시간. 수업을 진행한 김재완씨는 이렇게 말했다. 재완씨는 조현병 3급 판정을 받은 정신장애 당사자다. 현재 센터활동가로 일하며 동료상담 경험을 나누는 강연을 하고 있다.

동료상담은 정신장애를 겪는 당사자가 다른 정신장애 당사자와 상담하며 회복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 스터디에 참석한 활동가들 역시 대부분이 정신장애 판정을 받은 이들이다. 이들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다시 집 밖을 나오고, 일을 하게 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언젠가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들에게 상담해주기 위해 공부 중이다.

◇"'자립'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삶"

재완씨는 이날 수업에서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언급했다. 이 영화는 '내쉬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수학자 존 내쉬의 생애를 다뤘다. 존 내쉬는 망상장애가 있어 매일 망상과 환시 속에서 살고 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결과를 이룬다.

그는 "정말 죽을 때까지 노력을 해야 한다. 증상이 있고 약을 먹더라고 하더라도 직업도 가지고, 친구도 사귈 수 있는 거다"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결혼을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환(가명)씨가 "맞다"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20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은 성환씨는 자신의 경험담을 끌어 내보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면 병에도 좋지 않아요. 매일매일 성인이라면 일을 해야 하고, 걷기도 꾸준히, 집에선 빨래와 설거지를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아요."

보통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를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완치를 목표로 치료를 하고, 치료 과정에서 사회와 격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날 참석한 당사자들 역시 약물치료를 계속하고 있고, 입원 치료를 받은 이들도 다수였다.

그러나 이들은 '치료'보다 '회복'을 강조한다. 회복의 개념은 명확히 정해진 게 없지만, 증상과 관계없이 당사자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강조한다. 일을 하고, 계속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 명의 사회 일원으로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나의 회복경험이 상대에겐 '롤모델'이 된다"

이날 수업에선 자신의 회복 과정을 큰 소리로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희주(가명)씨도 A4 용지 두 장 분량에 적어온 아르바이트 당시 회복 경험을 읊어나갔다. 그는 대학생 때인 23세 때 조현병 진단을 받은 뒤 3개월간 병동생활을 했고, 이후 복학·졸업의 시간을 거쳐 아르바이트를 한 바 있다.

"편의점에서 일주일을 일했는데 실수를 많이 한다며 그만두게 됐습니다. 다른 곳에서 1달간 일했지만 느리다는 이유로 또 그만두게 됐습니다.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포스(POS·판매관리시스템)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인터넷으로 공부했습니다. '아가씨는 왜 이렇게 계산이 느려'라는 손님의 말에 꾸준히 암산 공부를 했습니다. 3개월, 그다음엔 7개월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니 근무일이 점점 늘었습니다."

희주씨가 말을 마치자 모두가 손뼉을 쳤다. 재완씨도 거들었다. "저는 증세가 악화됐을 때 밖을 못 나갔어요. 어느 날 갑자기 밖에 나가고 싶었는데 첫날에는 2분 밖에 못 나갔어요. 그러고 포기했으면 계속 집 밖을 못 나갔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포기하는 게 아니에요. 다음날엔 3분, 4분 그렇게 늘려서 결국 잘 나가게 됐어요."

정신장애 당사자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재완씨는 증세가 악화됐을 때 어떤 노력으로 극복했는지 얘기하면 특히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동료 상담 때도 '~을 하라'는 조언 대신 직접 겪은 회복 경험을 이야기한다. 나의 회복 경험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상대 당사자에게 응원이 되고, 살아있는 '롤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공감의 힘이다.

 

 

 

 

 

송파정신동료지원센터의 정신장애 인식개선 캠페인 진행 모습(송파정신동료지원센터 제공)© 뉴스1

 

 



◇"정신장애 역시 하나의 '개성'으로 봐야"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사회적 자립을 위해선 이들의 노력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이날 정민(가명)씨는 4년 전 콜센터에서 일할 당시 해고당한 경험을 무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당시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때였다. 경찰은 이 사건을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결론 내리고 언론이 이를 받아적었다. 조현병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와 혐오가 날로 커졌다. 그리고 이 여파는 정민씨의 해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이들의 자립을 어렵게 만든다. 정신장애인의 취업률은 11.6%로 전체 장애인 중 가장 낮다. 최근에는 한 정신장애인이 지자체 공무원 면접에서 정신장애가 있음을 털어놨다가 불합격 처분을 봤다며 시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신석철 송파정신장애인동료지원센터장은 "자립을 위해선 일자리를 얻는 게 가장 기본적인데, 일자리가 부족하다. 차별 때문에 정신 장애를 숨기고 사는 이도 적지않다"고 지적했다. 사회 활동은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사회적으로 일자리가 없으니 개인적으로도 증상이 악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날 모인 참가자들은 장애를 '개성'이라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망상, 환시, 환청 증상에 대해 '너는 우리가 못 듣는 무언가를 듣고, 우리가 못 보는 무언가를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거죠." 재완씨는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장애를 개성이라고 하니 통쾌하더라고요. 막 가슴속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