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방학이 시작되면서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긴급돌봄도 종료됐다.
마지막 날 돌봄 선생님에게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하고 가려는데 선생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또 볼 거라는 말을 어렵게 꺼낸다.
“네? 새 학기가 시작되면 긴급돌봄도 운영 안 하는 거 아닌가요?”
교육부 방침에 따라 초등학교 1, 2학년만 매일 등교를 할 거라고. 나머지 학년은 작년처럼 격주 등교를 하게 될 거라는 말에 무력함과 분노가 동시에 솟구쳐 올랐다.
특수학교다. 다름 아닌 특수학교다.
초등 1, 2학년의 학습 격차보다 발달장애 학생들의 ‘학습 단절’이 더 큰 문제였고, 초등 1, 2학년의 사회성 발달보다 발달장애 학생들의 ‘사회성 단절’이 더 큰 문제가 된 1년을 이미 경험했다.
교육부에서 학생들의 학습 격차와 사회성 발달을 우려했다면 가장 먼저 눈여겨봤어야 할 대상은 특수교육대상자여야 했다.
그런데 초등 1, 2학년만 등교라니….
특수학교는 학교장 재량에 맡긴다니….
특수교육대상자는 교육부 안중에도 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등교 문제가 학교장 재량에 맡겨졌을 때 학생들을 위해 매일 등교를 선택할 ‘용감한’ 학교장은 많지 않다. 혹시라도 집단감염이 발생할 경우 “매일 등교를 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학부모의 거센 항의를 감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단지 학습을 위한 공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코로나보다 무서운 학부모들에게 흠 잡힐 게 두려워 아예 학교 문을 좁히는 방식을 선택하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그래서 교육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만에 하나라도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학교 대신 책임을 물어줄 상위 기관. 교육부에서 구체적 지침을 내려야 발달장애 학생들이, 내 아들이 매일 학교에 나갈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아들은 참 많이도 퇴행했다. 엄마랑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올해 열 세 살이 된 아들은 다시 두 세 살 어린아이가 됐다.
엄마에 대한 의존도가 부쩍 늘었고 다 큰 녀석이 늘 안겨있으려고만 한다. 엄마와의 관계에만 익숙해져 엄마 외의 다른 관계에서도 ‘엄마처럼’을 원하니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울고 불며 뒤집어지는 일도 많아졌다.
느리게 배우고 성장하는 아들이 학교에서 지낼 시간은 앞으로 7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 7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사회성으로 아들은 남은 한평생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 귀한 시간의 1년을 잃어버린 것도 모자라 올 한해도 ‘상실의 시대’를 보내야 한다니. 나는 누구에게 호소해야 하는 걸까?
오늘도 안아달라 보채는 다 큰 아들을 품에 안고서 긴 한숨으로 잠 못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