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변화시키는 아이들
세상을 변화시키는 아이들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1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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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산을 등산할 때 원터골에서 출발해 약 30분 정도 오르면 정자쉼터가 나타나는데 그 정자 옆에 “ㄷ”자 모양으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볼 수 있다. 나무는 땅에 뿌리가 묻혀 있어 자리를 옮길 수 없기 때문에 키가 큰 나무에 햇빛이 가려지면 즉시 방향을 전환하여 가지를 해가 비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바꾼다. 나무 의사 우종영은 그의 저서 “나는 나무에서 인생을 배웠다”에서 이러한 나무의 방향 선택을 우듬지의 생존전략이라고 했다. 나무의 맨 꼭대기 성장점인 우듬지가 자라는데 장애물이 나타나면 즉시 방향을 바꾼다는 것이다.

 사람들도 인생을 살아가는 도중에 중대한 변곡점이 생기면 스스로 판단하고 대응하는 적응력을 발휘하여 슬기롭게 어려움을 극복해나간다. 그러기에 인간의 적응력은 이 세상의 그 어느 것에 비하여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은 자녀가 태어나면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서 부모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교육자를 만나고 아동심리 전문가와 상담하며 다양한 노력을 한다. 만약 장애자녀가 태어나거나 중도에 장애가 발생하여 가정이 위기에 처하거나 혼란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더구나 24시간을 잠시도 옆에 보호자가 없으면 안 되는 중증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어떨까.....

 내가 그동안 만나 왔던 장애인 부모들은 어림잡아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에 달할지도 모르겠다. 그 부모들은 비장애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에 비해 몇 십 배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여 자녀를 키우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중에는 자녀의 교육과 치료를 위해 자신의 전공분야를 바꾼 교수나 의사도 있었고 이사를 하거나 직업을 바꾼 부모들은 더 많다. 어떤 부모는 평생을 자녀가 일하고 생활하고 쉴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만들고 거기에 다른 이들의 자녀까지 맡아서 오로지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들도 있다.

 부모들은 자신의 인생항로를 바꾸다 못해 이제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기꺼이 나서고 있다. 자녀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법과 제도를 바꾸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고 그 힘은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서서히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국회의원으로 열심히 입법 활동을 하는 장모 의원은 장애가 있는 동생의 자유로운 영혼과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도 버리고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는 동생을 데리고 나와서 함께 살며 세상살이를 가르치며 살아간다.

 김용직 변호사(법무법인 KCL)도 그런 사람 중에 한분이다.

 큰 아들이 자폐성장애 진단을 받은 후 그의 인생 여정은 법조인에서 사회운동가로 자폐성장애연구자로, 사회복지사로 변신하며 자녀가 살아가기에 불편함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쳐 일하고 있다. 마치 청계산의 “ㄷ”자 소나무처럼 그의 인생여정은 그야말로 굴곡진 삶의 연속이다.

 나는 현직에서 은퇴한 후 그분과 잠시 함께 일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그분의 자녀에 대한 양육자로서의 책임감, 장애자녀를 가진 더 많은 부모들에 대한 연대감과 동지애, 그리고 자녀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길을 바꾸려는 불타는 의지를 보면서 참으로 어버이의 위대한 힘과 참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열정과 집념 그리고 계획한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 신념으로 가득 찬 언행의 일치를 읽어내곤 했다.

 그래서 오늘날 전국조직으로 발전한 자폐인사랑협회를 탄생시켰고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하는데 중심역할을 했고 지금은 부모사후에 대비한 장애인특별수요신탁을 법제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분의 의지로 볼 때 얼마 안 있으면 발달장애인신탁법이 제정되는 날도 이제 시간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 부모의 이러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장애인의 부모이기 때문에, 형제자매이기 때문에 하느님이나 조물주가 특별히 힘을 주신 걸까.....?”

이종길<br>사회복지동행경영연구소 대표 / 누림센터 비상임연구위원
이종길
사회복지동행경영연구소 대표 / 누림센터 비상임연구위원

다시 우종영 나무 의사가 말한 우듬지의 선택을 떠올려 본다.

 그렇다. 우리 부모들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끝없는 도전 정신을 심어주어서 부모와 형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것은 바로 장애자녀였던 것이다. 그 자녀가 우듬지가 되어 부모의 인생을 좌우상하로 운전하며 “ㄱ”에서 “ㄴ”으로 때로는 “ㄷ”자로 조종하며 동반자로 변화시키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아니, 어쩌면 우리를 이 지구에 보낸 저 하늘의 별이 우듬지가 아닐까....?”

 예쁜 아이들을 이 세상에 보내고 다음으로 든든한 어버이를 보내서 우리 모두를 이곳에 살아오게 하면서 저 별들은 우리네 삶의 우듬지가 되어 “ㅁ”자로 그리고 “♡”로 세상 사람들의 삶을 아름답게 운전하는 게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