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 나눔과나눔 기자
  • 승인 2021.03.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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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2월 장례이야기
(공영장례 빈소에 놓인 마음꽃 영정사진)
(공영장례 빈소에 놓인 마음꽃 영정사진)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 만났던 어르신

2016년 5월 서울시의 한 전통문화공간에서 행사가 열렸습니다. 벽 한 쪽에 마련된 거울과 의자 앞으로 젊은 미용사들이 모여 각자 들고 온 가방에서 각종 미용재료들을 꺼내며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고, 반대쪽에서는 한 무리의 여인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앉아있는 이들의 눈가에는 세월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깊게 패인 주름이 자리잡았고, 애써 웃는 표정으로 말없이 옆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는 이들의 눈가에는 뜻 모를 이슬이 맺혀 있었습니다.

“눈만 보는데도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네.”

한 여성의 이야기에 덩달아 “나도 그러네.”하는 이가 등장하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사이 어색함 대신 애틋한 감정이 교차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나눔과나눔이 서울시의 한 지자체와 함께 기획한 ‘마음꽃’행사는 홀로 거주하는 여성 어르신을 대상으로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담아 꽃처럼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긴장을 풀어주는 몸놀이 시간이 지나면 어르신들은 순서대로 거울 앞 의자에 앉고 대기중이던 미용사들과 편안한 대화를 나누고 나면 이내 곧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신을 하게 됩니다. 참가한 어르신들 중에는 생전 처음으로 화장을 한다고 밝힌 분도 계셨고, 곱게 변한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신기한 듯 거울 앞을 떠나지 못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윽고 볕이 잘 드는 뒷마당에 나가면 환하게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는 시간이 이어졌고, 몇 주 뒤 생애 가장 행복한 사진을 받은 어르신들은 여배우처럼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 마디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영정사진으로 쓰기에는 너무 아깝네.”

2021년 2월 한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 지인들이 참석했고, 준비해온 영정사진을 꺼내었습니다. 어색한 듯 웃고 있는 얼굴 속 행복한 표정의 고인의 얼굴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마음꽃” 행사에서 뵈었던 분이었습니다.

행사 내내 들뜨지 않고 조용하지만 말에 무게가 느껴졌던 어르신.

“나이 든 노인네들 챙기느라 애 많이 쓰는 것 알아요. 우리는 행복하니까 너무 애 쓰지 않아도 돼. 고마워요.”

5년 전 그 눈빛 그대로 어르신은 인사를 건넸습니다. 혼자 외롭게 살다 무연고 사망자가 되어 다시 만난 어르신의 눈을 말없이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보냈습니다. “잘 가세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남편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삿말을 걸고 있는 ‘ㄱ’님의 아내)
(남편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삿말을 걸고 있는 ‘ㄱ’님의 아내)

“끝까지 보살펴주지 못해 미안해”

2월 초 치른 무연고 사망자 ㄱ님의 장례일정이 확정되고 나눔과나눔은 연고자에게 장례일정을 알리는 부고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답변이 왔습니다.

“제가 거길 가도 되는 건가요?”

가족관계 단절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시신인수를 포기한 연고자들은 가족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이유로 많은 고통을 경험합니다. 사망 이후 무연고자로 확정되기까지 장례식장과 지자체로부터 시신위임 여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다 보면 스스로 가족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죄책감이 들고, 혹시나 누가 이런 사정을 알게 될까봐 걱정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무연고자로 확정된 후 화장일정에 대해 문의하면 지자체로부터 공영장례에 대한 안내를 받기도 하지만, 이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하는 장례식장 등으로부터 엉뚱한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장례식장에 가는 건 상관없지만 가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복도로 지나가는 것만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서울시립승화원 공영장례 전용빈소에서 만난 연고자에게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아직도 공영장례에 무지한 사람들이 많음을 절감합니다.

ㄱ님은 생전에 외국계 회사에 다니던 엘리트였습니다. 하지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갑자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순한 인상의 고인은 사업 때문에 믿었던 지인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일이 많았고, 괴로운 마음을 술로 달래며 가족들은 힘들어졌습니다.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 일을 겪고 나서 우리를 너무 힘들게 했어요.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죠. 저랑 아이는 살아야 하잖아요.”

헤어져 살며 ㄱ님의 생활은 더욱 망가졌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미 암이 진행되어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장례가 진행되고 고인을 기억하는 카드에 아내는 “끝까지 보살펴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적었습니다.

단란했던 가정은 한 순간 무너졌고, 단절의 시간이 지나 가족은 결국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ㄴ’님에게 전하는 딸의 마지막 인삿말)
(‘ㄴ’님에게 전하는 딸의 마지막 인삿말)

내 뜻대로 장례가 가능했다면……

고인 ‘ㄴ’님은 자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큰딸이 몸이 아파 자신의 장례를 치러줄 수 없다고 생각하셨고 자신의 병간호를 도왔던 지인에게 장례를 부탁하셨습니다.

“당신이 내 장례를 치러주소”

지인에게 장례를 치를 비용과 영정사진을 맡긴 채 ‘ㄴ’님은 세상을 떠나셨고, 장례를 부탁받은 지인은 직접 장례를 치르려고 했지만 시신인수부터 막히고 말았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법적인 가족이 아니었기에 병원에서는 사망진단서 발급을 거부했을 테니까요. 결국 ‘ㄴ’님의 자녀들에게 부고가 알려진 것은 이 모든 일이 지나간 후였습니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나 잔인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생겼는데 딸들한테 연락을 안 했다니까요”

딸로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ㄴ’님의 자녀들은 장례가 진행되는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ㄴ’님의 장례를 약속했던 지인이 부고를 알린 이후로 잠적해버려서 영정도 올리지 못했다고 통탄해하면서요.

아마 ‘ㄴ’님은 몸이 아픈 큰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셨겠지요. 나눔과나눔에 상담을 요청하시는 어르신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죽고 나서 주변 사람들한테 폐끼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막연하게 생각하십니다. ‘사전장례의향서를 써 두면 되지 않을까?’, ‘상조회사의 셀프장례 상품에 가입하면 되지 않을까?’, ‘유서를 써두고 지인에게 돈을 맡겨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 ‘ㄴ’님 또한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지인에게 장례를 부탁하셨을 것입니다. 생전에 내 뜻대로 장례를 준비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있었더라면, 그리고 딸들과 본인의 죽음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셨더라면 이런 안타까움과 슬픔이 조금은 줄어들었겠지요. ‘가족대신장례’지침이 생긴 이후에도 ‘내 뜻대로 장례’를 향한 길은 멀기만 합니다.

 

(산골되기 전 유택동산에 놓인 ‘ㄷ’님과 ‘ㄹ’님의 유골함)
(산골되기 전 유택동산에 놓인 ‘ㄷ’님과 ‘ㄹ’님의 유골함)

원칙마저 무너뜨린 예산

무연고사망자 ‘ㄷ’님의 공문을 받아들고 나눔과나눔의 활동가는 의아했습니다. 공문 속 ‘ㄷ’님의 가족관계를 보니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배우자와 이혼하셨고 아버지는 사망, 어머니는 주민등록상 거주불명자였습니다. 어머니는 1900년대 초반생이셔서 생존이 불확실한 상황이니 결국 ‘ㄷ’님은 시신을 인수받을 가족이 없어서 무연고사망자가 된 케이스입니다. 그렇다면 원칙적으로 ‘ㄷ’님의 유골은 봉안(납골)되는 것이 맞습니다. 서울시 무연고사망자의 유골이 산골(뿌려지는 것)되는 경우는 원칙적으로 법적인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문 속 ‘ㄷ’님의 유골은 화장 후 산골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해당 내용으로 나눔과나눔의 활동가가 구청 주무관에게 연락했습니다. “원칙적으론 화장 후 봉안이 맞는데 산골로 보내셨네요. 이유가 있나요?” 그러자 담당 주무관은 난처해하며 봉안에 대한 예산이 없어서 피치 못하게 산골로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답변했습니다.

같은 날 장례가 치러진 ‘ㄹ’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ㄹ’님은 거주하시던 곳에서 고립사 하신 채 발견되셨고 때문에 사망진단서가 아닌 검안서를 통해 행정업무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검안서 속 주소와 공문에 기록된 주소가 서로 달라 화장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장례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말았습니다. 구청에서 검안서를 재발급 받을 예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고인을 안치실에 계속 모셔둘 수는 없는 상황이니 나눔과나눔의 활동가가 해당 구청의 담당주무관에게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문의했습니다. 그러자 담당 주무관은 ‘ㄹ’님의 시신을 위임한 가족들에게 검안서 발급 비용을 부담해 달라 요청했다고 답변했습니다.

두 분의 장례를 치르며 나눔과나눔은 깊은 고민에 잠겼습니다. 이번엔 ‘ㄹ’님에게 검안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가족들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법적인 가족이 없는 고인의 경우엔 이런 식의 해결도 불가능 합니다. ‘ㄷ’님도 원칙상 봉안이 맞지만 봉안 이후 공고를 할 예산이 없어서 유골이 뿌려졌습니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공영장례 행정상의 원칙들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예산 편성이 이루어지거나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어느덧 2021년의 두 번째 달이 지났습니다. 무연고 공영장례는 올해에도 그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 2월에 나눔과나눔이 배웅한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는 총 51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엔 설 연휴로 인해 5일간 공영장례가 없었음에도 59분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봄에 대한 간절함이 매년 더 짙어지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추운 겨울이 가고 따듯한 봄이 오길 바랍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의 활동을 지지하는 부용구 활동가와 나눔과나눔의 그루잠이 함께 썼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2월 무연고 사망자(기초생활수급자 41명 포함)
신태숙, 박상운, 남궁흥석, 윤상덕, 남서량, 구명창, 이용철, 박문선, 김성태, 전창기, 양승호, 이원이, 이순인, 김연수, 성명미상, 최기성, 문광수, 김창기, 이금매, 강호국, 강수창, 서정주, 김진성, 엄수웅, 이병화, 이등선, 김숙자, 서윤영, 박승관, 김경용, 박태만, 손옥영, 임선빈, 김용환, 김원배, 이용운, 홍택기, 박용천, 이희석, 최용규, 최진순, 임창수, 불상아기, 배순자, 김영복, 차승철, 변왕석, 강용배, 김중호, 김순애, 이종은, 임재현, 조대환, 맹옥례, 박금옥, 윤종화, 노이조, 이성덕, 박인숙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쉰한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