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는 상호성이 원칙이다
모든 관계는 상호성이 원칙이다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2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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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섰다.

몇 달 만에 하는 운동인가. 나도 이젠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나.
운동을 마치고 핸드폰을 보니 남편의 부재중 전화와 카카오톡 메시지가 한가득이다.

아들의 운전기사 노릇 중인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건 아침 등굣길에 무슨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바탕 난리가 있었다고 한다.
아침부터 이마에 혹이 난 남편은 갈수록 아들을 키우기 힘들어진다며 씩씩대고 있었다. 남편에겐 힘든 시간이었을테지만 내 마음은 남편이 아닌 아들에게로 향했다.

아들에게 박치기당한 남편이 가여운 게 아닌 아빠로부터 마음을 이해받지 못한 아들이 안쓰러웠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말 못하는 발달장애인 아들 탓으로 돌리는 건 사실 쉬운 일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랬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다. 쌍둥이 육아 전쟁으로 힘든 어느 날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오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다음날 남편이 출근하고도 분이 안 풀려 “우워워~” 고릴라가 질렀을 법한 소리를 내지르며 눈앞에 있던 보행기를 집어던지듯 밀쳐버렸다. 고릴라 힘에 의해 쭈욱 밀려간 보행기는 현관 앞 중문을 강타했고 곧이어 와장창하며 유리가 쏟아져 내렸다.

“엄마야. 이게 아닌데.”

아이들이 다칠라 얼른 유리를 치우고 그날 밤 남편에겐 아들이 보행기를 탄 채 중문으로 돌진해 유리가 깨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당신 때문에 열받아서 내가 중문 깼다”고 해봤자 좋을 게 없었기에 말 못하는 아들에게 죄를 덮어씌운 것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이날 남편은 아들이 ‘문제행동’을 일으켜 힘들다고 했다. 그 일이 일어난 원인은 쏙 빼고 결과만을 놓고 아들을 탓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들의 행동은 문제행동이 아니라 ‘반응행동’이다.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일어난 화학작용에 반응하는 방식이 때론 공격적이거나 힘든 방식으로 나타난 것뿐이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겉으로 드러나는 아들의 표현방식이 달라지도록 가르치는 것, 다시 말해 아들이 바뀌도록 주변에서 열심히 가르치는 것이고 둘째는 아들과 관계 맺는 사람들이 아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변화를 위해선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관계 맺기란 언제나 상호성이 기본 원칙이니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어떤 관계는 물에 설탕을 녹인 듯 달콤해지지만 어떤 관계는 고추기름에 고춧가루를 넣은 듯 맵고 눈물이 난다.

류승연<br>(한겨레21 작가 /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류승연
(작가/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만약 누군가와 후자의 관계가 형성돼 있다면 그건 고추기름의 잘못만도, 고춧가루의 잘못만도 아니다. 모든 관계는 상호성이 원칙이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그래야 표현능력이 약한 발달장애인에게, 자기방어를 야무지게 할 줄 모르는 사회적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관계는 상호성이 원칙이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